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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여행 - 다테야마 쿠로베 알펜루트 (3)

솔뫼들 2025. 5. 23.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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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망대로 향한다.
건물 입구에 보니 다테야마 설벽( 해발2390m )을 나타내는 표지석 옆에 뇌조로 보이는 새 모형을 만들어 놓았다.
기념으로 표지석 앞에서 사진을 찍으려고 하니 줄을 띄워 놓고 돈을 받네.
그런 돈은 아깝지.
그냥 표지석 사진만 얼른 찍고 발길을 돌린다.
 

 
 역 건물 안으로 들어가 3층으로 올라가야 전망대가 나온다.
생각보다 전망대에 사람들이 많다.
여기는 완전히 설국이군.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 나오자 설국이었다. 밤의 끝이 하얘졌다.'
 
일본에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안긴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작품 '설국'의 도입부이다.
'설국'이라는 소설을 제대로 읽지 않은 사람도 이 첫 문장은 기억할 것이다.
그만큼 인상적인 문장이었지.
하얀 세상을 바라보며 그 문장을 떠올려 본다.
 
 전망대에서 설벽을 내려다보니 사람들이 줄을 서서 설벽으로 향한다.
여기에서 보니 설벽이 정말 어마어마하게 느껴지는군.
눈을 치우는데 쓰였을 중장비도 손바닥만해 보이는걸.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안개가 점점 짙어진다.
주변 구경을 하다가 보니 희미하게 길이 보인다.
이 길로 가면 어디가 나올까?
주어진 시간은 넉넉한데 편히 쉴 만한 곳도 없으니 운동 삼아 걷는 것도 좋으리라.
 
눈이 많이 쌓여 걷다 보니 등산화 속으로 눈이 들어간다.
그래도 힘차게 걸으니 기운이 나는 듯하다.
역시 사람은 움직여야 한다니까.
 
 길을 따라 걸으니 멀리 건물이 하나 보인다.
가까이 다가가니 온천이라고 씌어 있네.
숙박도 가능한 곳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드는데 근처에 오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지금 몸 상태로는 온천욕을 하고 따뜻한 차를 한 잔 마시면 더할 나위 없을텐데...
마음은 굴뚝 같지만 그림의 떡 같은 일이다.
 

 
 온천장을 바라보다가 한 바퀴 도는 길로 접어들었다.
이곳에는 키가 작은 나무들이 자라고 있었다.
향나무인가 비바람과 눈에 시달려 키가 못 자란 것인지 수목한계선인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온통 하얀 곳에서 푸르른 나무를 보니 기분이 좋아진다.
 
 친구가 한쪽을 가리키며 사람들이 스키를 탄다고 한다.
고개를 돌려보니 스키를 즐기는 사람들이 여럿 보인다.
공식 스키장은 없는데 자신의 스키를 가지고 와서 신고를 하면 스키를 탈 수 있단다.
여기까지 무겁게 스키를 지고 올라오는 것이 만만하지는 않겠지만 봄에 스키를 타는 맛은 한겨울과 또 다르지 않을까.
4월 하순에 시원스럽게 설원을 달리는 모습이라니...
부럽다.
 

 
 한 바퀴 걷고 나서 장대(?)가 높이 세워진 곳으로 갔다.
주변 지도가 있는 곳이다.
이번에 본격 트레킹을 온 것이 아니지만 이 길을 따라 계속 걸으면 다테야마 정상에 도달하지 않을까 마음은 벌써 길로 나선다.
 
구석구석 돌아보고 역사로 들어가다가 무슨 소리가 나기에 돌아보니 머리에 빨간 훈장을 단 새가 후다닥 날아간다.
눈[雪] 사이에 있으니 눈[目]에 잘 띄었다.
친구 보고 머리에 빨간 점이 있는 저 새가 뇌조 같다고 하면서 사진에 담지 못한 걸 아쉬워 했다.
우리나라에는 뇌조가 살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산악지대에 산다는 뇌조는 보호색을 띠기 때문에 보기 어렵다고 하는데 운이 좋았군.
 

 
  별로 한게 없는 것 같은데 피곤하다.
카페에는 당연히 자리가 없고 앉아서 쉴 만한 공간이 많지 않으니 사람들이 계단에 주욱 앉아 있다.
그런데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우리 앞에서 일어서는 바람에 자리가 났다.
여기에서 얼마나 기다려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앉았으니 고마운 일이지.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고 안개비를 맞으며 계속 돌아다녔더니 바지가 시나브로 젖었다.
몸이 떨린다.
당연히 컨디션이 안 좋다.
축축한 공기, 젖은 몸에 목이 잠기더니만 기침까지 나오네.
에구, 일본에 와서 감기에 걸리면 안 되는데...
 
 자리에 앉아 홍삼캔디를 꺼내 먹는다.
물도 좀 마시면서.
우리 옆에 있는 일본 젊은이들에게도 나누어주고.
서울에서 왔느냐고 서툰 우리말로 물어주는 것이 기분이 좋다.
 

 
 전기버스 시간을 알아보러 오가다 보니 벽에 곰을 주의하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일본에서는 곰이 최상위 포식자이겠지.
오제에서도 곰 주의문을 여러 번 봤던 기억이 난다.
곰 때문에 트레커들이 배낭에 종을 매달고 다니는 광경도 흔하고.
 
 시간표를 꼼꼼히 보고 있자니 성수기에는 시간표가 맞지 않는다고 한다.
임시버스를 보충한다고 하는데도 터미널에 있는 사람들이 줄어드는 것 같지 않다.
지난 주말에 왔던 팀은 이곳에서 무려 4시간이나 기다렸단다.
예약시간보다 1시간 30분이나 늦어지는데도 우리는 거기 비하면 운이 좋은 편이라고 하니 할 말이 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