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형!
산장에 도착하자마자 누구라고 할 것도 없이 맥주부터 주문합니다.
무더운 날씨에 땀으로 목욕을 했으니 맥주가 술술 들어갑니다.
시원한 마실거리가 그립기도 했지요.
얼마나 진이 빠졌는지 모두 산장 앞 의자에 앉아 움직일 생각을 안 합니다.
넘어지지 않으려고 스틱을 힘주어 짚는 바람에 팔도 아프고,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바람에 다리도 아픕니다.
바지를 걷어 보니 아니나 다를까 여기저기 시퍼렇게 멍이 들고 있습니다.
전치 3주는 되겠는걸요.
근육통이야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지만 정말 오늘 하루 생각보다 어려운 산길에서 헤맸습니다.
최대표도 넘어지고, 김PD도 넘어지고, 친구도 넘어졌다고 합니다.
강선생님 부인은 세 번이나 넘어지셨고요.
저는 넘어지는 대신 머리가 고생을 했고요
강선생님은 넘어지지도 않고, 머리 박치기도 안 하신 것 같네요.
역시 고수는 다르십니다.
농담 삼아 최대표에게 이렇게 힘들 줄 알았으면 안 왔다고, 미리 알려주지 않았다고 뭐라 하니 자기도 몰랐다고 합니다.
답사 삼아 온 셈이니 당연히 몰랐겠지요.
하나도 힘들어 보이지 않던데 자기도 힘들었다네요.
히우치다케는 정말 '악' 소리 나는 '악산'입니다.
처음부터 오르기 어려운 산이라는 걸 예상하고 마음의 준비를 했으면 덜 힘들게 느껴지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마음자세가 많은 걸 좌우하니까요.
본래 계획에는 내일 시부츠산(해발 2228m)에도 오르는 것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최대표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내려가는 길을 통제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시부츠산 산행은 포기하고 여유있게 오제가하라 습원을 걸어서 하토마치 고개까지 가는 것으로 일정이 변경되었지요.
닥치면 어찌어찌 시부츠산을 오르기야 하겠지만 이 상태로는 몸이 무거워 초주검이 되지 않았을까요?
강선생님 부인 팔을 보니 많이 부었습니다.
옷소매를 걷으니 희한하게 달걀 하나 얹어놓은 것처럼 부었더라고요.
둥그렇게 부은 걸 모르고 걷는 동안 손수건 뭉친게 그 안에 있나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하셨다고 합니다.
바보 같은 생각이라고 강선생님께 지청구를 듣기는 하셨네요.
친구가 보더니 안에서 혈관이 터진 것 같다고 합니다.
어딘가 찔리지 않았나 하더군요.
자세히 보니 뾰족한 나뭇가지에 찔린 상처가 보입니다.
냉찜질을 하는게 좋겠다고 하여 산장 주인에게 얼음팩을 부탁했습니다.
더 이상 탈나지 않고 상처가 얼른 아물었으면 좋겠습니다.
힘든게 조금 가시자 등산화도 씻고, 스틱도 씻어 봅니다.
진흙탕을 지나왔으니 씻지 않고는 도저히 실내에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모든게 엉망이지요.
지난 밤 제대로 못 잤으니 몸을 씻고 나면 잠이 쏟아질 것 같기도 하고요.
이 산장에서는 다행히 방을 두 개 배정해 주었습니다.
좁은 방이지만 여자들끼리 사용할 수 있겠네요.
편하게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산장에는 목욕탕이 하나밖에 없습니다.
1시간 간격으로 여자들이 먼저 씻고 난 후 남자들이 사용해야 한다고 합니다.
종일 시달린 몸을 씻으러 가니 5명이 들어가면 꽉 찰 것 같은 공간입니다.
수도 꼭지도 하나밖에 없고 물통도 깊어서 물을 뜨기도 매우 불편합니다.
먼저 온 일본인들이 씻고 나가기를 기다렸다 겨우 씻었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씻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야지요.
씻고 나서 저녁을 먹기 전까지 주변 산책을 합니다.
우리가 히우치다케에서 내려온 길에서 안내지도판을 보며 눈으로 한번 따라가 봅니다.
그 길을 어떻게 걸었나 새삼스럽네요.
한가롭게 걸으면서 보니 근처에 산장이 많군요.
일본 국립공원 산장은 우리나라처럼 국립공원 관리공단에서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국가에서 땅을 장기 임대해 운영한다고 합니다.
그러니 운영방식은 조금씩 다 다르겠지요.
여기는 해발 1420m, 히우치다케에서 900m 넘게 내려왔네요.
우리가 묵는 제2쵸죠산장보다 규모가 큰 산장 앞에 해발고도가 씌어 있습니다.
그 산장에는 기념품 가게도 있군요.
제가 기념 티셔츠에 관심이 있는 걸 아시는 강선생님이 추천을 해 주십니다.
그런데 색깔이 썩 마음에 들지 않는군요.
구경만 하고 그냥 발길을 돌렸습니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산장으로 돌아왔습니다.
저녁 식사 시간은 역시 오후 5시 30분입니다.
저녁을 먹으면서 오늘은 친구가 화이트 와인 한 병을 삽니다.
어제 마신 레드 와인은 일본산이었는데 화이트 와인은 칠레산이네요.
깔끔한 맛이 일본 음식과 잘 어울립니다.
저녁을 먹고 큰 방에 모여 대화를 나눕니다.
오늘 김PD가 찍은 영상이 궁금합니다.
드론이 어떤 풍경을 찍었을까요?
우리가 보는 풍경과 공중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차원이 다르지요.
김PD는 계단 중간참에 있는, 콘센트가 많은 곳에서 편집 작업을 하고 있군요.
편집이 끝나면 보여주겠다고 합니다.
기대가 됩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이 산장은 시설이 열악하다고 강선생님 부인이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목욕탕이 좀 불편하기는 하지요.
그랬다가 가부장적인 강선생님한테 또 한소리 들었습니다.
씻을 수 있기만 해도 고마운 일이지 불만이 많다고 뭐라 하시네요.
좋게 공감해 주실 수도 있는데 말입니다.
요즘 친구들 만나면 남자들 공감능력 떨어지는게 화제인데 강선생님도 논리적으로는 맞지만 공감능력은 좀 떨어지시는 것 아닌가요?
두 분 사랑 싸움은 나가서 하시지요. 후후!
어젯밤 잠을 제대로 못 잔데다 오늘 산행 피로가 겹쳐 저는 일찌감치 우리 방으로 가서 누웠습니다.
오후 8시밖에 안 되었는데 잠이 쏟아지는군요.
물론 복도에서 시끄럽게 오가는 발소리며 말소리가 다 들리기는 하지만요.
여기 역시 소등은 밤 9시입니다.
모든 소리가 가물가물합니다.
달콤한 잠입니다.
지금까지 나는 내 몸뚱이나 달래며 살아왔다
배가 고파 보채면 밥 집어넣고
졸립다고 꾸벅이면 잠이나 퍼담으며
오 척 오 푼의 단구, 그 놈이 시키는 대로
안 들으면 이내 어떻게 될까 보아
차곡차곡 밥 나이 잠 나이만, 그렇게 쌓아 왔다
윤석산의 < 밥 나이, 잠 나이 >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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