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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오제 트레킹 (11) - 오제가하라 습원

솔뫼들 2023. 11. 6.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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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형!
 
 어제 초저녁에 잠들어서 그런지 일찍 잠이 깨었습니다.
숙면을 취해서 몸이 개운합니다.
세수를 하려고 아래층으로 내려가는데 계단이 왜 그렇게 야속한지요.
난간을 잡고 엉금엉금 기다시피 내려갑니다.
힘든 산행 후 근육통은 항상 다음날이 더 심하지요.
 
 대충 정리를 하고 새벽 산책을 나갑니다.
아침 기온은 싸늘한데 도리어 상쾌하게 느껴집니다.
이러저리 걷다 보니 부지런한 트레커들이 산장 앞마당에서 아침을 먹거나 커피를 마시는 모습이 보입니다.
아직 아침 6시도 안 되었는데 말이지요.
히우치다케 산행을 하거나 오제누마 호수까지 걸을 예정인 사람들일까요?
아니면 우리처럼 오제가하라 습원을 걸을 예정일까요?
오제누마 호수까지는 2시간 남짓 걸리는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아침 산책을 마치고 들어가니 일행들도 모두 일어났더군요.
어제 넘어진 강선생님 부인 팔을 보니 부기가 많이 빠졌습니다.
열심히 냉찜질을 하시더니 효과가 있었나 봅니다.
다행입니다.
강선생님 부부는 선생님이 있어서 든든했다고 친구에게 연신 이야기를 합니다.
아무래도 한 분야 전문가가 있으면 마음이 좀 놓이기는 하지요.
친구는 뼈에 이상이 있는 것 같지는 않지만 혹시 모르니 귀국하면 엑스레이를 찍어보는 것이 좋겠다는 조언을 합니다.
 
 오전 6시에 아침 식사를 하고 배낭을 멥니다.
오늘은 편하게 오제가하라 습원을 걸어 하토마치 고개까지 가는 일정입니다.
지도에는 3시간 30분 걸리는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오전 7시, 다같이 모여 시작을 알리는 구호를 외치고 걷기 시작합니다.
아무도 없는 목도를 따라 걷자니 솔솔 불어오는 바람이 그지없이 달콤하게 느껴집니다.
춥지도 않고, 덥지도 않은 날씨가 감사할 뿐이지요.
 

 
 어제 걸었던 히우치다케를 한번 돌아보고 앞에 떡 하니 버티고 있는 시부츠산도 바라봅니다.
마주 보고 있는 두 산 사이에 오제가하라 습원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오제가하라 습원은 많은 동식물을 품어 키우고 있지요.
고마운 일입니다.
 
 목도 옆의 식물들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물매화, 산오이풀도 보이지만 낯선 식물도 꽤 보입니다.
고산 습지라는 특별한 환경 덕분이겠지요.
성능이 안 좋은 스마트폰 카메라로 사진을 찍으니 사진이 제대로 안 나옵니다.
어쩔 수 없지요.
 
 비로용담이 보입니다.
매우 희귀한 식물이라 무척 감격스럽군요.
금강산 비로봉에서 처음 발견되었다고 해서 비로용담이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대암산 용늪에서만 볼 수 있다지요.
저는 식물도감에서만 만난 꽃입니다.
책에서 읽은 비로용담에 관한 설화가 어렴풋이 생각납니다.
 

 
 김PD는 여기에서도 드론을 띄웁니다.
드론이 담아내는 습원은 어떤 모습일까요?
어제 일찌감치 잠드는 바람에 히우치다케에서 촬영한 영상을 저만 못 본 것이 몹시 아쉽네요.
나중에 마운틴 TV에서 방영되면 꼭 찾아보아야겠다 생각합니다.
그래도 잠이 보약이라고 몸이 가벼워 기분 좋은 아침입니다.
 
 타시로 십자가를 지납니다.
어제 산장에 도착하기 전에 미하라시 십자가를 지났지요.
그때는 아무 생각 없이 걷기 바빴는데 일본에서는 교차로를 십자가라고 부르나 봅니다.
우리는 교차로나 사거리 정도로 부르는 곳이겠지요.
 

 
  습원을 걷는 중간중간 작은 연못이 보입니다.
치토우(池塘)라고 하는데 오제국립공원에 무려 1800개나 된다고 하네요.
이런 연못이 많은 건 오제에 물이 많다는 것인데 겨울에 2m 정도 내리는 눈이 녹아 만드는 것이라고 하지요.
사실 만물의 근원은 물이지요.
그러니 오제가 얼마나 많은 생명을 키우는지는 두말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요?
 
 치토우에 담긴 하늘은 그야말로 수채화 같습니다.
아니 파스텔화라고 해야 할까요?
몽글몽글한 구름이 손에 잡힐 듯이 들어가 뜻밖의 무늬를 만들고 있군요.
손으로 떠내면 얇고 흰 그물이 걸릴 것 같아 보입니다.
근사한 한 폭의 추상화입니다.
 

 
  오제는 선물입니다.
거기에 금상첨화로 날씨까지 좋으니 무얼 더 바랄까요?
1시간쯤 걷다가 쉼터에 걸터 앉아 커피를 마시며 오제의 모든 것을 만끽합니다.
파란 하늘에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구름,
바람에 간지럽다는 듯 몸을 뒤채는 자작나무,
낯설어 더욱 귀하게 여겨지는 들꽃들,
치토우에 어린 풍경 등등.
무엇 하나 놓치고 싶지 않은 시간입니다.
 
 쉼터에서 쉬다가 그대로 하늘을 보고 눕고 싶어졌습니다.
여기 누워 하늘을 보고 있으면 저절로 명상이 되지 않을까 싶어지네요.
사람들이 보통 '힐링'이라는 단어를 많이 쓰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할 것 같습니다.
갑자기 오제를 통째로 가슴에 안은 부자가 된 느낌입니다.
 

 
 오제가하라 습원이 벌써 누르스름한 빛으로 물들어가고 있습니다.
가다가 물억새를 만났습니다.
이제 억새와 갈대를 구별할 정도는 되지요.
억새는 대부분 산에 있지만 물억새는 물가에 자랍니다.
물론 갈대도 물가에 자라고 있지요.
 
흐르는 것 어이 강물뿐이랴.
계곡의
굽이치는 억새꽃밭 보노라면
꽃들도 강물임을 이제 알겠다.
갈바람 불어
석양에 반짝이는 은빛
물결의 일렁임,
억새꽃은 흘러흘러
어디를 가나.
위로위로 거슬러 산등성 올라
어디를 가나.
물의 아름다움이 환생해 꽃이라면
억새꽃은 정녕
하늘로 흐르는 강물이다.
 
 오세영의 <억새꽃 > 전문
 
 9월이 된 지 며칠 안 된 것 같은데 가을이 이만큼 다가왔습니다.
간혹 붉게 물든 잎도 보입니다.
가을을 이곳에서 맞고 있군요.
소슬한 바람에 살랑살랑 걸으며 오제의 자연과 함께 하는 길입니다.
 

 
 시간이 좀 흘러서인지 오가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곤니찌와'라고 인사를 하면서 가다 보니 우리말이 들립니다.
알고 보니 한국 여행객이었습니다.
그 팀은 인원이 꽤 많군요.
최대표는 그 여행사 대표와 아는 사이인지 한참 이야기를 나눕니다.
최대표한테 물어 보니 제가 오제 관련 자료를 찾다가 알게 된 일본 전문 여행사에서 온 팀이었네요.
 
 설렁설렁 바람 따라 콧노래를 부르며 걷는 길이 이어집니다.
개천을 지나니 곰에게 경고하는 종이 매달려 있습니다.
근처에 곰이 세번 나타났고 한번은 사람을 공격했다고 합니다.
이번에는 저도 종을 '뎅그렁' 한번 울려주고 지나갑니다.
곰이 이곳 자연의 강력한 주인일지라도 불청객일 망정 손님 예우 차원에서 조금만 참아달라고 하면서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