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형!
가야 할 길이 멉니다.
다시 무거운 몸을 일으켜 발걸음을 옮깁니다.
힘든 걸 잊으려고 주변 풍경에 눈을 줍니다.
기기묘묘한 모습의 고목들이 많아서 눈이 즐거운 길이군요.
사진을 찍느라 자꾸 속도가 느려집니다.
제가 사진 찍는 걸 본 김PD가 주로 어떤 사진을 찍는지 물어봅니다.
고목 사진을 찍는다고 하니 왜 고목에 관심이 가느냐고 묻는군요.
연륜이 느껴져서 그렇다고 대답을 하면서 어디선가 읽은 구절이 떠오릅니다.
늙어서 아름다운 건 나무밖에 없다고 했던가요.
오동은 고목이 되어갈수록
제 중심에 구멍을 기른다
오동뿐이랴 느티나무가 그렇고 대나무가 그렇다
잘 마른 텅 빈 육신의 나무는
바람을 제 구멍에 연주한다
어느 누구의 삶인들 아니랴
수많은 구멍으로 빚어진 삶의 빈 고목에
어느 날
지나는 바람 한 줄기에서 거문고 소리 들리리니
거문고 소리가 아닌들 또 어떠랴
고뇌의 피리새라도 한 마리 세 들어 새끼칠 수 있다면
텅 빈 누구의의 삶인들 향기롭지 않으랴
바람은 쉼없이 상처를 후비고 백금칼날처럼
햇볕 뜨거워 이승의 한낮은
육탈하기 좋은 때
잘 마른 구멍 하나 가꾸고 싶다
복효근의 < 고목 > 전문
여기는 식물들의 천국입니다.
키 큰 나무, 키 작은 나무, 고사리 같은 양치류에 이끼까지 정말 한 치 양보가 없으면서도 사이좋게 공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식물들이 잘 살 수 있는 곳에서는 사람도 잘 살 수 있지 않을까요?
어제 오제누마 호수 트레킹에 이어 오늘 히우치다케 산행까지 힘들지만 행복한 시간입니다.
이번에는 앞에서 올라가던 김PD가 넘어졌습니다.
어제 차에서 내릴 때 카메라가 떨어져 깨진 부분이 생겼는데 이번에는 괜찮을까요?
김 PD는 얼른 일어나 카메라부터 살펴 봅니다.
직업상 어쩔 수 없겠지요.
카메라에 문제가 생기면 오늘 일정이 그대로 수포로 돌아가니까요.
김PD가 가져온 장비를 보니 희한한 것들이 있습니다.
손에 긴 장대 같은 걸 들고 다니는데 360도 돌아가면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장비라고 하더라고요.
그러니 들고만 있어도 본인 사진까지 찍힌다고 하네요.
어제는 드론으로 사진을 찍지 않았습니다.
오제는 드론을 이용해 촬영하는데 허락을 받아야 한답니다.
그런데 허가를 받지 않은 모양입니다.
방문자센터가 가까이 있어서 사방으로 트인 공간에서 드론을 띄우면 금세 사람들의 눈에 띄니 드론을 띄울 수 없었겠지요.
가는 길에는 굵은 나뭇가지가 시야를 방해합니다.
그런 곳마다 어김없이 '頭像 注意!'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습니다.
우리 같으면 '머리 조심!'이라고 하겠지요.
앞에서 가는 분들이 큰 소리로 머리를 조심하라고 일러줍니다.
키가 커서 자기는 앞을 잘 본다며 큰소리치던 친구가 나뭇가지에 부딪혔습니다.
아이쿠! 아프겠는걸요.
걷다 보니 강선생님 부인이 뒤로 처지셨네요.
이런 산행을 하는 줄 모르고 따라왔다고 투덜거리십니다.
댁 근처 광교산에서 연습 산행을 서너 번 했다고 하시는데 가볍게 목도 걷는 생각만 했다는군요.
저는 산행이 있는 줄은 알았지만 난이도가 이 정도인 줄은 몰랐습니다.
그러니 급경사길에 스틱도 없이 선두에서 씩씩하게 가는 최대표와 강선생님은 정말 대단하십니다.
가는 길 옆에 눈길을 사로잡는 것이 있습니다.
빨간 열매입니다.
눈에 잘 띄어 새들이 좋아하겠네요.
산사나무 빨간 열매를 새들이 좋아한다는 말을 들었거든요.
물론 식물도 새들 눈에 잘 띄어 번식이 잘 되도록 진화를 했겠지만요.
어제부터 유독 빨간 열매가 많이 달린 나무가 계속 보이는군요.
마가목인가 하고 보니 잎사귀가 다릅니다.
비슷한 나무가 워낙 많아서 식물에 대한 내공이 깊은 사람이 아니면 알기 쉽지 않습니다.
게다가 여기는 우리나라에는 없는 고산지대이고 화산지형에 늪지이니까요.
옆 나라이기는 하지만 기후도 다르고요.
12월이 되면 가슴에 다는 '사랑의 열매'처럼 생긴 열매도 있군요.
정말 빨간 구슬 같아 보입니다.
초록 이파리 가운데 꽃대를 올리고 열매가 맺혀 있네요.
저는 처음 보는 식물입니다.
확실히 우리나라와는 식생이 다르다는 생각이 듭니다.
얼마나 갔을까요?
가끔 전망이 좋은 곳에서는 오제누마 호수가 한눈에 보입니다.
최대표가 쉬자고 자리를 잡기에 호수 사진을 찍고 있는데 김PD가 드론을 날립니다.
금방 '이잉' 소리를 내던 드론이 사라졌습니다.
눈을 들어 바라보니 드론이 높이 떠 있습니다.
꼭 잠자리만해 보이는군요.
드론은 보통 드론을 날린 시작점으로 되돌아옵니다.
원점회귀를 하는 것이지요.
아주 가끔 배터리가 방전되면 엉뚱한데 떨어져 망가지는 경우도 있다고는 하네요.
드론은 한동안 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더니 차츰 소리가 커지다가 김PD 손에 사뿐히 내려앉는군요.
신기합니다.
한참 촬영을 하던 김PD가 장비를 챙기는 걸 보고 우리도 일어섭니다.
아직도 갈 길이 많이 남았습니다.
가야 할 길을 보니 역시나 된비알인데 돌이 많습니다.
5합목을 지나니 길이 험해지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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