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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 여행 둘째날 - 여수 금오도 비렁길 5코스 ( 심포~ 장지)

솔뫼들 2022. 3. 31.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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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형!

 

 이제 마지막 5코스만 걸으면 됩니다.

지금까지 정말 열심히, 그리고 부지런히 걸었습니다.

5코스는 심포에서 장지까지 3.3km 1시간 30분 소요된다고 안내도에 되어 있습니다.

 

 오후 2시 10분 5코스를 향해 걸음을 옮깁니다.

5코스도 초입은 시멘트 도로로 되어 있습니다.

조금은 짜증나는 길이지요.

게다가 오르막길이니 더 힘이 듭니다.

 

 가다가 뒤돌아보니 바다 건너편으로 우리가 걸어온 길이 보입니다.

주로 앞만 보고 걷기는 하지만 산길도 그렇고, 인생길도 그렇고 가다가 한번쯤 뒤돌아보는 여유를 가져야 하지 않을까요?

심포 마을을 낀 바다 풍경은 제게 그렇게 말해주는 듯 합니다.

 

 

 앞에서 걸어가던 친구는 오가는 사람들이 하나도 없으니 이 길이 맞느냐고 의구심을 드러냅니다.

이정표가 가리키는 대로 제대로 걷고 있다고 해도 영 못 믿는 눈치네요.

제가 걷는 길 위에서는 선배라니까요.

가끔 실수를 해서 '알바'를 한 적이 있기는 하지만요.

 

 앞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내려옵니다.

친구가 여기가 비렁길 5코스 맞느냐고 물어보네요.

무리 중 한 명이 맞다고 하면서 5코스는 산길이라 힘들다고 겁을 줍니다.

제가 알기로는 3코스가 가장 난이도가 높은데 말이지요.

길을 물으니 초행이고 5코스를 처음 걷는 줄 알았나 봅니다.

 

 그 사람들과 작별을 하고 내처 시멘트길을 걸어 올라갑니다.

다행히 시멘트길은 금세 끝이 납니다.

이제 시작되는 길은 '따끈따끈한' 생태매트가 깔린 순순한 길입니다.

포장도로가 많지는 않았지만 종일 시달린 발바닥이 좋아라 손뼉이라도 치는 듯 합니다.

오래 걸으면 무릎뿐 아니라 발바닥도 고생이니까요.

 

 

 속도를 늦추고 풍경을 즐기며 걷는 길입니다.

걷다가 문득 앞을 보니 나뭇가지가 이어져 하늘에 동그라미를 만들어 놓았군요.

별 것 아닌데 풍경이 재미있어 사진에 담아 봅니다.

 

 억새가 소나무와 대비되는 분위기 좋은 길도 나오고, 산비탈에 밭을 일구어 돌담으로 경계를 표시한 곳도 나옵니다.

이런 곳에 농사를 지으러 다니려면 무척 힘들겠군요.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밭에 오다가 기운이 다 빠지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땅이 척박하니 심을 수 있는 작물도 몇 가지 안 될 것 같고요.

 

 막개 전망대를 지났습니다.

슬슬 바다 풍경이 다 비슷비슷해 보입니다.

종일 바다를 품에 안고 걸었으니까요.

 

 

 좀 지치기도 해서 타박타박 걷고 있는데 나뭇가지에 달린 리본이 눈에 띄는군요.

리본이 아니라 리본에 씌인 내용이 눈길을 끈 것이지요.

 

'비운 발걸음이래 놓고 왜 이리 무거운 거니...'

저처럼 다리가 천근만근이었을까요?

이 문구 아래에는 '부리나케'라고 낙관처럼 씌인 글씨가 보이네요.

대부분 자연을 접하는 길에서 굳이 '부리나케'라는 단어를 쓰는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부리나케'는 이런 길에서는 어울리지 않는데 말입니다.

 

'혼자 걸으면 나만의 길이 되지만 함께 걸으면 모두의 희망이 됩니다.'

이 글은 사회적 메시지가 강한 문구군요.

리본을 매단 곳도 '백두대간학교'라고 되어 있네요.

그런 이름을 가진 학교가 있는 줄 모르겠지만요.

 

 친구는 한참 앞서 갔습니다.

부지런히 친구를 쫓아가다가 말소리가 들려 뒤돌아보니 5코스 초입에서 만난 사람들이 되돌아오는군요.

우리를 보고는 알은 척을 합니다.

두번째 종주를 하는 중이라고 하니 반가워 하더군요.

우리와 말을 주고받는 사람은 이곳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인가 봅니다.

장지 마을이 꽤 크다, 마을버스가 잘 들어온다 등등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 주네요.

 

 다리가 안 따라주어 뒤로 처져서 가는데 앞서가던 친구가 서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왜 안 가고 기다리느냐고 했더니 아까 간 사람들 중에서 어떤 아주머니에게 한소리 들었다고 합니다.

왜 짝꿍이 힘들어 하는데 혼자만 먼저 가느냐고.

그 사람이 계단 앞에서 까마득한 표정으로 서 있는 저를 본 모양입니다.

힘에 부쳐서 속도는 느리지만 알아서 가고 있는데 그랬군요.

 

 

 걷다 보니 커다란 바위가 흘러내린 곳이 보입니다.

어디에서 이렇게 커다란 바위들이 흘러내렸을까요?

이런 바위들이 많은 곳에는 조상들이 대부분 石城을 쌓았었는데 이곳도 그런 곳일까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둘러봅니다.

 

 오르락내리락 경사가 심한 곳은 항상 산을 끼고 있습니다.

여기도 망산을 끼고 걷는 길입니다.

망산에는 봉수대도 있군요.

봉수대가 축조된 것은 고려시대 말로 당시에 왜구가 많이 출몰해서 이곳에서 봉화를 올리면 고흥의 팔영산을 거쳐 장흥 천관산으로 이어져 한양까지 전달이 되었다고 하네요.

 

 숲구지 전망대에 도착했습니다.

힘이 들어 바닥에 털버덕 주저앉았습니다.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배낭에서 한라봉을 꺼내 껍질을 벗깁니다.

새콤달콤한 과육이 입안에서 터지면서 피로를 날려주는 기분이네요.

우리 외에는 오가는 사람이 없으니 가능한 일입니다.

 

 

 그렇게 잠시 쉬고 마지막 힘을 내어 봅니다.

오늘 친구 따라 걷느라 신기록을 세웠습니다.

무리한 것이지요.

섬에 있는 둘레길이지만 반 이상 경사진 산길에서 말입니다.

 

 발 아래 올망졸망 대부도와 소부도 등 작은 섬이 보이는군요.

섬은 찐빵 모양 같기도 하고, 모자를 벗어 놓은 것 같기도 합니다.

안도로 이어지는 흰색 連島橋도 보이네요.

전에 왔을 때 안도로 가는 다리가 예뻐 보여 다음에 금오도에 오면 저 다리를 걸어 안도까지 가 보고 싶다 생각했었는데

오늘 갈 일은 없겠지요.

산뜻한 안도대교를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겨 봅니다.

 

 

 오후 3시 10분, 드디어 장지 마을에 내려섰습니다.

6시간 35분만에 금오도 비렁길 종주를 했습니다.

전에 7시간 30분 걸렸으니 무려 1시간 가량 시간 단축을 한 것이지요.

냅다 뛰다시피 한 것 같습니다.

휴! 한숨이 나옵니다.

 

 친구는 감개무량한 표정입니다.

금오도 비렁길 종주도 끝내고, 스마트폰으로 듣는 강의도 다 마치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묵직한 숙제 두 가지를 무사히 마친 셈이지요.

정말 박수를 받아 마땅합니다.

사실 이런 길을 달리다시피 하는 건 길에 대해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요. 후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