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산행기

남도 여행 셋째날 - 여수 향일암

솔뫼들 2022. 4. 2.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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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형!

 

 햇살이 밝게 비치는 아침입니다.

늦잠을 자겠다고 별렀는데 저절로 눈이 떠졌습니다.

어젯밤 일찍 잠이 들어서 그렇겠지요.

정말 잡다한 꿈도 없이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잠이 들었습니다.

다리에 근육통이 좀 있기는 하지만 개운하네요.

 

 간단히 아침을 해결하고 짐을 정리합니다.

오늘은 짐을 차에 싣고 다녀야 합니다.

여수 여행은 오늘까지 마무리하기로 했거든요.

 

 

 향일암을 향해 가는 길은 시간이 일러서 그런지 아니면 징검다리 휴일이 끼었다고 해도 월요일이어서 그런지 차량이 거의 없습니다.

주말이나 휴가철이면 편도 1차로인 길이 주차장으로 변한다고 했거든요.

전에는 도로가 무척이나 구불구불해 운전을 하기 싫었는데 오늘 보니 그다지 심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 핑계로 운전대를 친구에게 맡겼는데요.

 

 오전 9시 20분 향일암 주차장에 도착했습니다.

주차장이 널널하네요.

 

 주차를 한 후 해돋이 광장으로 나갑니다.

해를 상징하는 조형물 사진을 찍으며 바다를 내려다봅니다.

자라 머리에 해당하는 곳은 정말 볼수록 신기합니다.

향일암 뒷산이 金鰲山이거든요.

여기도 금빛 자라가 등장을 하지요.

 

 

 아침 햇살에 빛나는 바다를 내려다보다가 향일암으로 향합니다.

길 양쪽 상가에서 아침부터 호객 행위를 하는군요.

갓김치 맛을 한번 보고 가라고요.

마스크 벗기도 귀찮고, 아침부터 갓김치를 먹을 일도 없고 모르는 척 지나칩니다.

친구는 어떻게 향일암 오르는 길목에는 거의 모든 상가가 갓김치를 파느냐고 신기해 합니다.

처음 왔을 때는 저도 몹시 놀랐지요.

아무리 돌산도에서 갓이 많이 난다고 해도 그렇지 어떻게 갓김치만 파는지 말입니다.

 

 입장료를 내고 향일암을 향해 올라갑니다.

향일암은 해돋이 명소로 알려진 곳입니다.

이름부터 '해를 향한 암자'이니 두말할 필요가 없겠지요.

그래서 새해 첫날이 되면 향일암은 새해 첫 해를 보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룬다고 하지요.

 

 

 향일암은 삼국시대에 원효대사가 창건하였다고 합니다.

원효대사가 기도 중 관세음보살을 친견하고 '원통암'이라고 이름하였다가 고려 광종 때 윤필대사가 산의 형세가 마치 금거북이가 불경(경전바위)을 등에 지고 용궁으로 들어가는 것 같다 하여 '금오암'이라 바꿔 불렀답니다.

그 후 조선 숙종 때 인묵대사가 수행정진 중 대웅전을 짓고 금불상을 봉안하면서 처음으로 '해를 향하는 암자'라는 뜻의 '向日庵'이라 이름지어 지금까지 불린다고 하지요.

 

 향일암은 남해 보리암, 강화 보문사, 양양 낙산사 홍련암과 더불어  우리나라 4대 해수관음 성지로 알려졌습니다.

'관세음보살님이 상주하는 성스러운 곳'이라는 뜻이지요.

정성껏 기도를 하면 소원을 성취할 수 있다고 하네요.

마음 속으로 가만히 소원 한 가지 떠올려 봅니다.

친구는 두 가지 소원을 말하네요.

친구에게 욕심이 많으면 안 된다고, 관세음보살님이 너무 바쁘실 것 같으니 우선 순위 정해 하나만 말하라고 하면서 씨익 웃었습니다.

 

 일주문을 지나니 아기동자상 셋이 차례로 줄서 있습니다.

입과 귀, 눈을 막고 말이지요.

나쁜 말을 하지 말고, 나쁜 말을 듣지 말고, 나쁜 것을 보지 말라는 의미이겠지요.

동자상 표정이 귀여워 사진 한 장 찍어봅니다.

 

 

 조금 더 올라가자 바라밀 카페가 나옵니다.

은은한 음악이 흐르는 이곳에서 경치도 즐길 겸 잠깐 쉬었다 갈까요?

친구는 침향쌍화차를, 저는 아메리카노 커피를 주문합니다.

침향쌍화차는 지리산 물에 침향을 넣어 무려 16시간 달였다고 합니다.

침향쌍화차는 완전히 보약이군요.

아메리카노 커피는 발효원두를 사용한다고 하네요.

카페인이 좀 줄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친구의 침향쌍화차를 한 모금 맛보았는데 한약 냄새가 그리 심하지 않네요.

침향이 들어갔다는 한방약 광고를 신문이나 인터넷에서 많이 보았는데 말입니다.

한약 특유의 냄새를 싫어하는 사람도 잘 마실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아메리카노 커피는 순합니다.

기분좋게 차를 마시며 분위기에 취하는 시간입니다.

 

 

  여유를 갖고 둘러보니 난간에 매달린 소원지가 보입니다.

금빛 나뭇잎 모양을 한 소원지 내용을 하나하나 살펴 보았습니다.

가족들의 건강과 무병장수, 행복은 흔한 것이지요.

대학 합격도 그렇고 말입니다.

 

 그런데 생각 외로 로또 당첨도 많습니다.

여기저기 보던 친구 말에 의하면 로또 당첨이 꽤 많다고 하네요.

오래 전 한 후배가 하늘에서 돈벼락 안  떨어지나 하는 소리를 듣고 놀란 기억이 납니다.

사람들이 그런 요행을 바라면서 사는구나 싶어졌지요.

저는 한번도 복권을 사본 적이 없거든요.

어릴 적 어머니께서 아버지 옷을 빨려고 주머니를 비우다가 복권이 나오면 허탈한 웃음을 지으시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면서 싱거운 양반이라고 하셨던가요.

 

 

 슬슬 향일암을 둘러볼까요?

올라가야 할 계단이 많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바위 사이, 경사진 곳에 계단을 만들어가면서 이 험한 곳에 어떻게 암자를 만들었을까 올 때마다 대단하다 싶습니다.

불심이 그만큼 깊었다는 말이겠지요.

 

 바위 사이를 통과합니다.

뚱뚱한 사람은 못 들어간다고 농담을 하면서 말이지요.

解脫門부터 관음전 가는 길까지 몇 번이나 바위 사이를 통과하게 되는군요.

대웅보전 앞에 이르렀습니다.

오늘 법회가 있는 모양이군요.

경건한 자세로 두 손을 모은 불자들이 보이고, 독경을 하는 스님이 계시네요.

오늘 여행객으로 왔으니 우리는 그냥 가기로 합니다.

 

 

 경전바위가 있는 곳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옵니다.

구석구석 바위를 통과하면서 말이지요.

정말 재미있는 술래잡기 같지 않은가요?

 

 안타깝게도 몇 년 전 화재가 발생하긴 했지만 향일암에는 위용을 자랑하는 나무들도 많습니다.

봉오리를 매단 동백나무며 느티나무, 굴피나무를 올려다봅니다.

멋진 모습으로 향일암을 빛내는데 한 몫 하는 듯 합니다.

오래된 나무와 오래된 건물과 엄청난 바위덩어리가 만들어내는 비경에 다시 한번 반하는 시간입니다.

 

 

층층 간절함이다

 

발끝을 세워 하나의 기원이 되기도 하는 탑

자발없이 틈만 보이는 허물의 한 때 같다

 

무너지다 깨금발로 허공을 딛고 올라서는

여기가 마음속 적멸보궁이라는 건지

눈보시도 적선이라는 건지

 

너덜돌 몇 개 괸 소란이 바깥의 욕심 같아서

돌에게 미안했다

 

틈 하나 두어 소란한 침묵을 들이고 싶은데

돌을 잊고 탑의 귀마저 버리면 그냥 풍경인데

 

허투로 여긴 아무거나를 

슬몃 괴어 놓았다

 

낮음에 이를 때까지

 

박위훈의 < 어느 날은 아무거나였다가 >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