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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 여행 둘째날 - 여수 금오도 비렁길 4코스 ( 학동~ 심포)

솔뫼들 2022. 3. 30.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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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형!

 

 다시 길로 들어섭니다.

비렁길 4코스는 학동에서 심포까지 3.2km 1시간 30분 걸린다고 합니다.

쉬엄쉬엄 가도 되겠다 싶은데 친구 다리와 제 다리가 말을 듣지 않는군요.

습관적으로 빨리 걷게 됩니다.

 

 3코스보다는 덜하지만 4코스에도 제법 사람들이 있습니다.

3코스를 빨리 걷고 4코스까지 걷는 사람들도 있을테고 4코스 맛만 보는 것처럼 걷는 사람들도 있겠지요.

조금 걸어 오르니 멀리 전망대가 보입니다.

전망대는 사방이 툭 트여 전망이 좋아야 하니 늘 높은 곳에 있지요.

힘들여 올라가야 좋은 풍광을 만난다고 손짓을 하네요.

 

 비렁길을 걸을 때 만나는 전망대마다 좋은 시 한두 편씩이 씌어 있습니다.

그런데 시를 좋아하는 제가 시를 읽지 않고 지나치게 됩니다.

사람이 너무 많은 곳도 있고, 하나씩 음미하며 읽고 있기에 마음이 바쁘기도 합니다.

시를 읽으며 잠시 바다 풍경에 취해 보라는 의미일텐데 아쉽기는 하군요.

 

 

 사다리통 전망대에 올랐습니다.

사람이 적어 여유있게 사진을 찍어 봅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다에 눈길을 주다 발길을 옮깁니다.

 

 사람들에 치이지 않으니 적당한 속도로 걸을 수 있군요.

여전히 먼지는 풀풀 나고, 저는 콧물을 질질 흘리며 걸어갑니다.

나이 탓인지 바람 때문인지 모르겠지만요.

차지는 않지만 종일 바닷바람이 거세거든요.

비렁길 종주 끝내고 나면 코 아래가 벌겋게 헐어 있을 수도 있겠네요.

 

 나뭇가지 사이로 조각난 바다가 보입니다.

가끔 산행시 나무와 나무 사이로 바라보이는 하늘이 몹시 예쁘게 느껴졌었지요.

오늘은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바다가 압권입니다.

어떤 나무냐에 따라 바다 모양도 달라집니다.

나뭇잎 하나 없는 가지 사이로 보이는 바다도 색다른 맛을 주네요.

선과 면으로만 이루어진 한 폭의 추상화입니다.

 

 

 약간 오르락내리락 하는 길이 이어집니다.

산 속에도 돌담이 있군요.

약간 무너져내리기는 했지만 누군가의 손길이 스쳐간 것이겠지요.

말라붙은 덩굴식물로 덮인 돌담에서 세월의 흔적이 느껴집니다.

 

 여전히 바다는 비렁길 오른편에서 굳건히 따라옵니다.

아스라히 섬 끝에 등대도 보이는군요.

역시 파란 바다에 배 한 척이 떠 있고요.

배는 고된 노동의 현장이겠지만 바라보는 풍경만으로는 더없이 평화롭습니다.

사람마다 저마다의 삶의 무게가 있으니까요.

 

 

 이번에는 걷기 좋은 오솔길이 나옵니다.

앞사람 발걸음을 피해 적당한 거리를 두고 걷습니다.

먼지를 피하기 위해 마스크를 써야 하나 싶다니까요.

 

 온금동 전망대를 지나갑니다.

길은 다양한 표정을 하고 있습니다.

대나무가 우거진 길이었다가 동백나무 빽빽한 길이었다가 소나무가 가지를 드리운 길로 안내하기도 합니다.

어떤 길을 걷고 있느냐에 따라 기분도 달라지네요.

 

 

 심포에 얼추 다 왔습니다.

3코스가 유독 힘들어서인지 4코스는 훨씬 수월하게 여겨지네요.

지금 걷는 코스는 전에 왔을 때 반대편에서 걸어서 느낌이 완전히 다릅니다.

생판 다른 길처럼 느껴지기도 하지요.

새로운 길을 걷는다는 생각으로 걷는다고나 할까요.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 

보라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볼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정호승의 <봄길 > 전문

 

 학동에서 심포까지 걷는데 50분 걸렸습니다.

달리기 시합을 한 것도 아닌데 금오도 비렁길 안내도 기준 40분이나 단축했습니다.

장지에 오후 4시까지 가면 시간이 충분한데 그 전에 도착할 수 있겠군요.

마지막 한 코스만 남겼으니 말입니다.

 

 

 기억력이 좋지 않아도 심포마을을 알리는 표지석은 기억이 나는군요.

전에도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납니다.

화강암에 씌인 글씨가 워낙 큼직해서 눈에 확 들어왔거든요.

마을 사람들의 마음이 표현된 것이겠지요.

 

 심포는 돌담이 도드라지게 인상적인 마을입니다.

말끔하게 단장된 마을에서 돌담을 끼고 이어지는 골목길을 바라봅니다.

크고 작은 돌들이 크기 다툼을 하지 않고 잘 어우러져 만들어진 돌담과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거기 순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만든 공간입니다.

그런 공간에 눈길이 한참 머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