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산행기

영덕에서 - 영양 자작나무숲 (2)

솔뫼들 2022. 2. 4. 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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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형!

 

 1시간쯤 걸었을까요?

드디어 자작나무숲에 도착했습니다.

여기는 자작나무숲이 경사가 심하네요.

원대리보다 올라가기 힘들겠는걸요.

안내지도가 있는데도 길을 찾기 쉽지 않아 보입니다.

지도를 자세히 보니 길을 따라 계속 오르면 임도와 만나고 다른 지역으로 연결이 되겠군요.

 

 숨을 헐떡이며 자작나무숲을 오릅니다.

여기저기 관리를 위해 잡목을 잘라 놓은 것도 보이고, 길을 만들기 위해 작은 계곡에 징검다리를 놓은 곳도 보입니다.

2023년에 정식 개장을 한다고 하던가요.

그때쯤이면 예쁘게(?) 정비가 되어 있겠지요.

지금은 좀 어수선한 느낌이 들기는 합니다.

그래도 사람들이 없어서 우리들 세상이니 이쪽으로 갔다가 다시 저쪽으로 갔다가 신나서 뛰어다니다시피 합니다.

 

 

 30년 된 자작나무들이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모습은 보기만 해도 좋습니다.

신성한 수도사들의 모습 같기도 하고, 늘씬한 미녀들이 도열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하늘빛을 보건대 지금 기대하는 건 무리이지만 자작나무숲에서 눈을 맞으면 참 낭만적이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면 영화의 한 장면이 연출되지 않을까요?

흰 눈과 자작나무는 정말 잘 어울리지 않나요?

 

 안내지도판에 보이는 중간 정도 높이에서 벤치에 앉아 자작나무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아무 생각이 없어집니다.

자작나무를 바라보며 명상에 잠길 수도 있겠군요.

순간 '멍'!

 

자작나무처럼 나도 추운 데서 자랐다

자작나무처럼 나도 맑지만 창백한 모습이었다

자작나무처럼 나도 꽃은 제대로 피우지 못 하면서

꿈의 키만 높게 키웠다

내가 자라던 곳에는 어려서부터 바람이 차게 불고

나이 들어서도 눈보라가 심했다

그러나 눈보라 북서풍이 아니었다면

곧고 맑은 나무로 자라지 못했을 것이다

단단하면서도 유연한 몸짓 지니지 못했을 것이다

외롭고 깊은 곳에 살면서도

혼자 있을 때보다 숲이 되어 있을 때

더 아름다운 나무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도종환의 < 자작나무 > 전문

 

 

 

 그러다가 정신을 차리고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발치에서 우리를 따라온 '얼룩이'가 무언가와 씨름을 하고 있습니다.

 언뜻 보니 나뭇가지 같았는데 눈을 크게 뜨고 보니 야생동물 머리부분 뼈였습니다.

크기로 보건대 고라니가 아닐까 싶습니다.

개에게 야생성이 남아 있어서 뼈다귀에서 조금이라도 고기를 찾고 있었나 봅니다.

 

 '얼룩이'는 온통 신경이 거기 쏠려 있군요.

생각을 그렇게 해서 그런지 비린내가 나는 것도 같습니다.

저쪽으로 가라고 해도 '얼룩이'는 꼼짝없이 장난감 하나 발견한 듯 해골을 가지고 이리 빨고 저리 핥으며 놀고 있네요.

배가 고팠는지도 모르지요.

 

 

 더 올라갈까 그만 내려갈까 하다가 더 올라가도 특별한 건 없을 것 같다며 하산을 결정했습니다.

오르는 길이 무척 경사가 심해 보이거든요.

내려가는 길은 계곡을 건너 계단길로 가자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쪽도 임도가 나오는군요.

무슨 일인지 지도를 보아도 마구 헷갈립니다.

수십 년 산에 다닌 사람들인데 간단한 지도를 보고 헷갈릴 정도면 지도에 약간 문제가 있는 것 아닐까 친구와 지도 탓을 했습니다.

 

 하늘이 살짝 흐려지네요.

눈이 아니고 비가 흩뿌릴 것 같은 날씨입니다.

몇 번 왔다갔다 하다가 본격적인 하산길로 들어섭니다.

내려가는 길에는 임도를 따라 편하게 걷기로 했습니다.

'얼룩이'는 어느 틈에 해골을 버려두고 우리 앞에 달려갑니다.

 

 

 내려가다 보니 바위 동굴 아래 무속인들이 피웠었는지 검게 그을린 흔적이 보입니다.

친구는 일월산이 음기가 강해서 무속인이 많이 찾는 곳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곳이니 무속인들이 지속적으로 이용하지는 못하겠지만 요즘 같은 시대에도 무속인들이 활동을 많이 하는 걸 보면 사람들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가 생각하게 됩니다.

누군가는 무속인의 말을 듣고 위로를 받기도 하고, 자신의 미래를 점쳐보기도 하면서 말이지요.

 

 내려가는 길은 아무래도 속도가 빠릅니다.

아까 왔던 길이기도 하고, 살짝 내리막 경사가 있으니 걷기에 아주 편한 길이지요.

왁자지껄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만 앞에서 젊은 사람들이 무리지어 올라옵니다.

오늘 자작나무숲 가는 길에 세번째 만나는 사람들입니다.

자작나무숲에 도착했을 때 내려가는 사람들이 서너 명 있었거든요.

 

 그런데 또 '얼룩이'가 말썽을 피웁니다.

참 이상하지요.

개는 꼭 여성 한 명에게 달려드네요.

그 처자는 우는 소리까지 내며 기겁을 합니다.

우리 개가 아닌데도 또 '얼룩이'를 달래어가며 걸음을 재촉합니다.

 

 

 다 내려왔습니다.

주인 없는 개가 아닐까 했더니만 '얼룩이'는 마을 초입에 어르신들이 앉아 계신 곳으로 가서 한 분에게 꼬리를 흔드네요.

누나들(?) 따라 자작나무숲에 가서 바람 잘 쐬고 왔다고 보고라도 하는 것 같습니다.

내려와서는 언제 보았느냐는 듯 본 척도 안 하는 '얼룩이'와 작별 인사를 못 나눈 것이 좀 섭섭하기는 하지만

'얼룩이' 덕분에 우리도 심심치 않은 시간이었군요.

 

 다시 차에 오릅니다.

이리 가나 저리 가나 모르기는 마찬가지인데 친구는 다른 길로 안내를 한다고 합니다.

꼬불꼬불한 길에 속도를 내고 싶은 차가 뒤따라오면 신경이 쓰이는 길을 친구는 묵묵히 운전을 해 갑니다.

정말 영덕 주변 울진에 청송, 영양까지 전부 이런 길이 이어지네요.

청송과 영양이 그 중에서도 오지라 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다 도토리 키재기 같습니다.

오기 쉽지 않은 곳이지요.

 

 12월에 바닷가에 왔으면 방어회를 먹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면서 후포로 향하는 길입니다.

영덕에 올 때마다 회를 먹으러 가는 곳이지요.

친구 말에 따르면 동해안에서 가장 회가 싸다고 합니다.

정말 1인분에 15,000원 정도면 배를 두드리면서 먹을 정도이니 싸기는 합니다.

 

 후포 회센터에서 방어와 광어회를 주문합니다.

회도 기계로 뜨는 것보다 손으로 뜨는 것이 더 맛있다고 하네요.

친구 단골집에서 손으로 뜬 회를 앞에 놓고 보니 참으로 푸짐합니다.

오늘도 또 저녁은 생략하게 생겼지만 말입니다.

배가 부르다고 하면서도 매운탕까지 꼬박 챙겨먹고 일어섭니다.

오늘 하루도 친구와 그리고 '얼룩이'까지 함께 잘 놀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