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산행기

영덕에서 - 영양 자작나무숲 (1)

솔뫼들 2022. 2. 3. 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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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형!

 

 오늘은 영양 자작나무숲으로 떠납니다.

영양 자작나무숲은 최근 알려져서 안내산악회에서 많이 가는 곳이지요.

인제 원대리 자작나무숲만 알다가 원대리 자작나무숲보다 더 크다는 이곳 영양 자작나무숲은 어떤지 궁금했습니다.

아직 정식 개장을 한 것은 아니라고 하는데도 사람들 사이에 입소문이 많이 났나 봅니다.

어젯밤 친구가 산림청에 근무하는 동생에게 자세한 정보를 알아보며 준비를 하더군요.

친구도 아직 못 가 봤다고 하면서 말입니다.

 

 청송, 영양은 경북에서도 진짜 시골이라고 합니다.

그만큼 오지라는 말이겠지요.

저는 어디가 어디인지도 모르는 상태로 친구가 운전하는 차 조수석에 앉아 편안히 주변 경치를 구경하고 있습니다.

영양은 고추 생산지로 알려졌지요.

그래서인지 가는 길에 고추와 관련된 시설이 많이 눈에  띄더군요.

물론 지금이야 계절적으로 고추 농사가 끝난 시기이지만 말입니다.

 

 자작나무숲은 수비면 죽파리에 있다고 합니다.

구불구불한 길을 천천히 가는데 주변 절벽이 정말 아찔하네요.

붉고 푸른 색을 띤 절벽을 옆에 끼고 길이 이어집니다.

한여름에 오면 저절로 피서가 되겠군요.

친구 말에 의하면 여기가 수비계곡이라고 합니다.

심산유곡이라는 말이 딱 맞을 것 같은 곳이네요.

 

 

 그렇게 1시간 30분쯤 달려 장파경로당 앞에 주차를 합니다.

나중에 보니 임시주차장이 만들어져 있더군요.

정자도 있고, 느티나무 보호수도 있고, 성황당도 보입니다.

그야말로 조선시대 양반 마을을 보는 느낌입니다.

 

 주변을 둘러보니 삐뚤빼뚤 마을 사람들이 페인트로 써 놓은 글씨가 보입니다.

'외부차 직진 불과', '영양 자작나무숲 가는 길'.

그 글씨를 보고 친구와 푸훗 웃음을 날렸습니다.

정말 순박해 보이지 않나요?

 

 

  어찌 되었든 글씨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접어듭니다.

친구 동생 말에 의하면 임도를 따라 한참 걸어 들어가야 한다고 합니다.

그래도 계곡을 보며 걷는 길이라 지루하지 않다고 하더라고요.

 

 마을에서부터 개 한 마리가 저를 따라 옵니다.

친구는 개가 무섭다는데 저는 어릴 적 고향집에서 개를 몇 마리씩 길러서인지 그리 무섭지는 않습니다.

풀어놓은 개라면 그리 사납지 않을 것 같아서 '어르는' 소리를 내었더니 좋다고 꼬리까지 흔드는군요.

얼룩 무늬가 있는 개가 먹을 것이 없었는지 좀 말랐습니다.

보기에 안쓰럽네요.

어찌 되었든 졸지에 개와 함께 트레킹을 즐기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가는 길에 문득 고개를 들어 보니 양쪽 산을 사이에 두고 파란 하늘에 걸린 구름이 눈부십니다.

이런 그림을 순식간에 그려낸 12월 하늘이 고맙군요.

혹시나 오지에서 눈이 내리지는 않을까 걱정을 했는데 기우였나 봅니다.

 

 

 얼마쯤 걸었을까요?

자작나무숲을 알리는 안내판이 나오는군요.

자작나무야 익히 알다시피 하얀 수피를 태우면 수피의 기름성분 때문에 자작자작 소리를 낸다고 하여 그런 이름을 얻어다고 하지요.

조직이 단단해 팔만대장경판에도 쓰였다고 하고요.

러시아에는 자작나무 수피에 연애편지를 써서 보내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있다지요.

흰색의 수피가 특이해서 자작나무와 관련된 이야기도 참 많습니다.

 

 가다가 겉옷을 벗을 겸 잠시 쉬기로 합니다.

날씨가 생각보다 포근하네요.

자작나무숲 가는 길을 가로질러 난 길이 있는데 이 길이 낙동정맥인가 봅니다.

낙동정맥을 알리는 안내지도판이 보이네요.

 

 

 계곡을 따라 걷다가 생태매트가 깔린 길에서는 계곡을 건너 갑니다.

정식 개장을 하기 전이니 여기저기 공사중인 곳도 보입니다.

곳곳에 포토존도 만들어 놓았고, 풍경을 즐길 수 있는 벤치도 있고, 색다른 풍광을 위해 생태매트를 깔아 계곡길을 건너게끔 해 놓은 곳도 보입니다.

올라가는 길에는 가능하면 이리저리 구석구석 살펴보기로 했습니다.

임도를 따라가는 길도 의외로 재미있네요.

계곡에 물이 많으면 더 좋겠지만 지금은 갈수기이니 하는 수 없지요.

 

 가다가 내려오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개 '얼룩이'가 그 사람들한테 달려들었습니다.

우리가 데려온 개인줄 아는 사람들이 좋지 않은 눈빛을 보내더군요.

공연히 우리가 데려온 개가 아니라고, 마을에서부터 따라온 개라고 변명 아닌 변명을 하며 '얼룩이'를 불러대니 제 앞으로 쭐레쭐레 앞서갑니다.

내려오던 여자분은 개를 아주 무서워하는지 혼비백산 하더군요.

웃으면 안 되는데 피식 웃음이 났습니다.

 

 '얼룩이'는 눈 사이에 코를 박고 얼음을 꺼내 와작와작 씹어먹기도 하고, 휘익 앞으로 내달려가기도 합니다.

그러고는 우리가 갈 때까지 한곳에 다소곳이 앉아서 기다립니다.

누가 보면 영락없이 말 잘 듣는 우리 개라고 하겠군요.

그래서 수시로 우리 사진 속에 등장을 합니다.

주인공이나 다름이 없지요.

 

 

 중간에 만들어놓은 의자에서 간식을 먹으며 쉽니다.

혹시나 '콩고물'이라도 떨어질까 싶어 고개를 들고 바라보는 '얼룩이'를 외면하는 걸 보면 제가 개를 좋아하는 건 아닌가 봅니다.

'얼룩이'한테 좀 미안하기는 하네요.

물론 개에게 줄 정도로 간식을 많이 싸 가지도 않았지만요.

 

 살짝살짝 경사가 있나 싶더니 멀리 흰빛이 보입니다.

자작나무숲이 멀지 않았군요.

오는 동안 내려오는 사람들 한 팀 만난 것 외에는 우리뿐이네요.

자작나무숲이 온통 우리 차지가 될 것 같은 기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