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산행기

청산도에서 봄과 놀다 (5)

솔뫼들 2018. 4. 17. 0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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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에서 후배를 만나 내리막길로 들어섰다.

내리막길이니 당연히 걷기 편하고 빠르다.

논길, 밭길을 지나 버스 정류장으로 향한다.

숙소 주인장이 다음에는 목섬으로 가라고 추천을 했지.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길에는 음악소리가 크게 들린다.

장송곡을 마이크에 연결했는지 몇몇 마을에  퍼질 정도네.

아침에 도청항 매표소 사무실에서 누군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리를 얼핏 들었는데 그 집인 모양이다.

버스 정류장으로 가니 삼삼오오 사람들이 검은옷을 입고 장삿집으로 향한다.

장송곡 소리를 들으며 우리는 버스 정류장 의자에 앉아 간식을 먹고.

누가 보면 참으로 우스운 광경이라 하겠구만.



 바로 뒤에서 들리는 장송곡이 궁금해 슬쩍 뒤를 돌아다보니 꽃상여가 보인다.

아직도 여기에서는 상여를 사용하는구나.

후배 말을 들으니 안성에도 종이로 만든 꽃상여를 사용하는 집이 있단다.

가만히 보니 사람들이 꽃상여를 메는 것이 아니라  화물차에 싣는다.

하기는 상여를 멜 만큼 젊은 사람들이 많지도 않겠지.

청산도 인구 중 반 가까이가 65세 이상이라고 했던 것 같으니까.

이런 풍습까지 보게 될 줄 몰랐는데 정말 기억에 남을 여행이 되고 있다.


 한참 쉬다가 하루에 몇 번 운행한다는 버스를 기다리느니 걷는 것이 나을 것 같아 도로를 따라 걷는다.

가다 보니 바로 앞에 느린섬 여행학교.

청산중학교 동분교가 폐교된 곳에 슬로푸드 체험관, 숙박, 홍보관 등을 갖춘 다목적 복합시설로 운영되고 있다고 했다.

여기에서 점심을 먹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시간도 이르고 간식을 먹어 시장하지도 않다.

느린섬 여행학교가 꽤 먼 곳에 있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청산도가 작은 섬이네.



 여기저기 둘러보고 사진을 찍으며 구경을 하는데 어디에서 본 듯한 사람이 보인다.

그러고 보니 어제 완도항에서 내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후배와 이야기를 주고받던 사람이다.

우리가 자신보다 나이가 적다고 생각했는지 아니면 습관적인지 초면에 반쯤 반말을 하는게 거슬려 후배에게 이야기를 하지 말라고 말렸는데 섬이 좁다 보니 여기에서 만나네그려.

어찌 되었든 구면이다 보니 좀 편해졌다.


 숙소 주인이 목섬을 추천했다는 말을 듣고는 바다쪽에서 배를 타고 오다 보면 섬이 새 모가지처럼 생겼다고 해서 '목섬'이고 '새목아지'라고 한다는 말을 하면서 거기에 무얼 보러 가느냐고 한다.

범바위를 다녀왔다는 말에 장기미 해변과 명품길은 안 갔느냐고 하면서 장기미 해변과 명품길 1코스를 추천한다.

도대체 누구 말을 따라야 하는 거야?



그의 설명에 따르면 '기미'는 '품'이라는 뜻이고 '장기미'는 '작은 품', 그 옆에 '큰기미'도 있다고 한다.

품처럼 넒은 해변이라는 뜻이겠지.

유래까지 알려주며 설명하는 걸 들으니 사람이 다시 보이기는 하는데 다짜고짜 '너'라고 하는 건 상당히 거슬린다.

명품길을 따라 걷다 보면 말탄바위가 나오고 거기에서 내려가면 권덕리인데 교통편이 마땅치 않으면 데리러 올 수도 있다는 솔깃한 제안도 하니 믿어볼까나.

향토 사학자인 줄 알았더니 후배가 받은 명함에는 청산도 소설가라 되어 있다.


 정 작가가 워낙 적극적으로 추천하고 시간적으로도 여유가 있을 것 같아 온 길을 거슬러 가기로 했다.

아까는 생각없이 포장도로를 따라 왔는데 이번에는 슬로길을 따라 둑방길을 걷는다.

길이 그리 편하지는 않지만 발바닥에 닿는 느낌이 포장도로와는 천양지차다.

그래, 이 맛이지.



 이리 가다가 저리로 길을 갈아타면서 걷는다.

가다 보니 무슨 안내문이 있네.

'구들장논 통수로'라고 되어 있다.

구들장논은 논바닥에 구들처럼 돌을 깔고 그 위에 흙은 부어 만든 논으로 자투리땅도 놀리지 않았던 청산도 사람들의 지혜가 담겨 있다.

청산도에서는 딸이 시집 갈 때 쌀 서 말만 먹고 가도 부자라고 했다고 한다.

그만큼 가난했다는 말이니 손바닥만한 땅이라도 놀리지 않으려는 자세를 엿볼 수 있겠지.

구들장논은 우리나라 국가중요농업유산 1호로 지정이 되었고 세계중요농업유산으로도 등재가 되어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논과 밭 사이로 왔다갔다 하면서 타박타박 걷는다.

보리밭에 살짝 들어가 사진도 찍고 개천을 조심스럽게 건너기도 한다.

후배는 이번에도 둑방에 난 살진 쑥을 보고는 쑥 타령을 한다.

눈 앞에 쑥개떡이 어른거리는 모양이지.

나는 그런 후배에게 앞으로는 '쑥이'라고 부르겠다고 했다.

이름에 '~숙'자가 들어가니 딱 맞군.



걷다 보니 아까 지났던 갈림길이 나왔다.

아까는 오른쪽 범바위 방향으로 갔는데 이번에는 장기미 해변으로 향한다.

다시 오르막길을 헉헉거리며 오른다.

간혹 관광지만 들렀다 가는 사람들의 자동차가 보일 뿐 사람도 보기 드문 길이다.


 오른편으로 노란 장다리꽃이 가득한 꽃밭을 만났다.

관상용인지 음식 재료로 사용할 것인지는 모르지만 지금 청산도에서는 지난 겨울 혹한으로 죽은 유채꽃 대신 장다리꽃이 한 몫 단단히 한다.

노란빛과 녹색이 적절히 섞여 보기만 해도 기분이 날아오를 것만 같은 봄날의 전형적인 빛깔이다.

주변 공기조차 노란빛으로 물들이는 것 같다고나 할까.



 한동안 발길을 멈추고 장다리꽃과 놀다 발길을 옮긴다.

이번에는 길 옆에 핀 보랏빛 꽃을 발견했다.

작은 꽃송이들이 모여 있는 모습이 앙증맞다.

너 이름이 뭐니?

점점 게을러져 도감도 안 찾아보는 내게 낯선 꽃이다.

南道라 해도 아직 꽃을 피운 것이 많지 않은데 비죽 눈길을 끄는 꽃이 반갑고 고맙다.


숲 속의 봄꽃들

참 작다.

저만 오냐오냐 하고

키우는 손이

없는 탓이다.

꽃색 곱고,

꽃향 짙은게,

그 덕분이겠지.


 이철수의 < 봄꽃 >



 멀리 바다가 보이고 원두막 같은 정자가 하나 서 있다.

이런 곳에서는 쉬었다 가야겠지.

정자에 올라가 편안한 자세로 앉아서 배낭을 연다.

시간도 12시를 막 넘긴데다 산길로 접어들면 상황이 어찌 될지 모르니 간식을 또 챙겨 먹기로 했다.

아무래도 오늘 점심을 못 먹을 것 같은 불길한(?) 느낌이 든다.

비상식량으로 이것저것 챙겨 가지고 다니기는 하지만 끼니도 못 챙겨 먹으며 다니는 건 그리 바람직한 일은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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