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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산행기

팔공산에 오르다 (3)

by 솔뫼들 2016. 10.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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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은 평탄하다.

선두에서 걸음을 빨리 옮긴다.

그다지 볼거리도 없고 산길도 걷기 좋고...

 

 이쪽으로는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군.

갓바위에서 올라오는 사람과 은해사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인가 보다.

'늦은 시간인데도...' 하고 생각을 하니 지금은 점심 시간인걸.

늦은 점심 먹고 가볍게 뒷산 오르듯 올라오면 이 시간이 되겠구나.

우리가 아침 일찍 출발해서 오전 내내 걷다 보니 늦은 오후가 된 것으로 순간 착각을 한 것이다.

 

 부지런히 발을 옮기다 보니 뒷사람들이 안 보인다.

하는 수 없이 서서 한참 기다렸다.

내려오는 길이니 다들 긴장이 풀렸나?

일행들 말소리가 두런두런 들리는 걸 보니 가까이 온 모양이다.

 

 

 

 일행을 만나 중암암으로 향한다.

中巖庵은 바위 가운데 암자를 만들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던가.

처음 귀숙씨가 암자 이름을 이야기했을 때 무심코 '중앙암'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지도를 찾아보니 그게 아니었다.

산 중턱 바위 틈에 지어진 암자라...

여수 향일암에서 그 위치에 놀랐었는데 여기도 만만치는 않네그려.

 

 암자 위쪽으로 가는 길을 버리고 극락굴 쪽으로 간다.

이름이 극락굴이라...

이곳에 가면 극락으로 가는 길이 열리나?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이 바위에서 풀리지 않는 의문을 외우고 있던 중 바위가 갈라지면서 의문이 풀렸다는 전설이 전해져 온다고 한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바로 알기만 한다면 이 극락굴은 몸이 아무리 굵다고 해도 통과를 못 하는 사람이 없다 하며 세 번을 돌아야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한다.'고 씌어 있다.

어디를 어떻게 돌아야 하나?

어제 갓바위도 다녀오고 오늘 극락굴에도 왔으니 내가 원하는 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는 말인가?

그렇든 아니든 기분은 나쁘지 않다.

 

 극락굴은 그리 굵지 않은 내 몸도 통과하지 못할 정도로 좁다.

끝까지 갔다가 발길을 돌리니 탑이 보인다.

통일신라시대 형식을 따른 고려 초기 3층석탑이다.

이 작은 암자에 극락굴에, 탑에, 대웅전에, 삼성각에 ...

없는 것이 없네.

 

 

 탑을 돌아보고 내려가니 커다란 바위를 병풍 삼아 노장파 세 분이 점심을 들고 계시다.

점심이 늦으셨네요.

그런데 동봉까지 다녀오시기에는 시간이 빠른 것 같은데 어떻게 중암암까지 이렇게 올라오셨대요?

알고 보니 동봉까지 안 가시고 지도상에는 없는 낙타봉에 올라 동봉을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하셨단다.

그리고는 신사장님 사찰 신도증으로 은해사에서 차량으로 백흥암까지 올라오셨다는 말씀이다.

어쩐지 시간적으로 불가능하다 싶었는데요.

 

 작은 암자를 둘러보고 백흥암으로 내려가는 길로 접어들었다.

포장도로를 따라 걷는 지루한 길이 이어진다고 한다.

그러니까 고문님께서 산길을 따라가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하신다.

나는 귀경하는 길이 밀릴까 걱정이 되어 가능한 한 빨리 내려가는 것이 좋겠다고 하고.

 

 고문님 의견에 따라 산길을 걷는다.

여기도 길은 순하다.

특별할 것 없는 산길에서 타박타박 걸음을 옮긴다.

바닥에는 뱀 한 마리 스르륵 지나가고 도토리가 발길에 채인다.

바야흐로 가을이구나.

 

 예상보다 오래 걸린 산행을 마무리하는 시간이다.

오늘 산행 거리가 무려 12km가 넘고, 시간도 6시간 30분을 넘겼다.

거의 쉬지 않고 걸었으니 만만치 않은 산행에 모두 잘 걸었지.

이제 마음을 놓아도 되겠구나.

낯선 산길을 걸을 때는 늘 더 긴장하게 된다.

무사히 산행을 마친 것에 감사하면서 걸음을 옮긴다.

 

 

 백흥암에 도착했다.

단청도 없는 절집에 인적이 없으니 고즈넉한 분위기가 딴 세상 같다.

외부인 출입이 금지된 절이란다.

살금살금 들어가서 구경을 하고 물 한 모금 마시려는데

건너편 건물 앞에 있던 스님이 말없이 바라보신다.

얼른 합장을 하고 돌아서려는데 스님의 미소가 해맑다.

 

 백흥암이라...

어디선가 귀에 익은 느낌이 들어 생각을 해 보니 석가탄신일에 맞추어 방영된 지상파 텔레비전 다큐에서 들어본 적이 있다.

갓 출가를 한 비구니들을 교육시키는 곳인데 방장스님이던가 아직 계도 받지 않은 사미승을 앞에 두고

머리를 깎아도 사람 사는 곳은 똑같다고 하던 말이 떠오른다.

'不二門'이 뜻하는 것처럼 聖과 俗이 둘이 아니라는 말이겠지.

 

여승은 합장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
나는 불경처럼 서러워졌다.

평안도의 어느 산(山) 깊은 금점판
나는 파리한 여인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여인은 나어린 딸아이를 때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년(十年)이 갔다.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산꿩도 섧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
산 절의 마당귀에 여인이 머리 오리가

눈물 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백석의 < 여승 > 전문

 

 

 백흥암 담장 옆에는 배롱나무 꽃이 한창이다.

백일 동안 핀다고 하여 목백일홍이라 부르지만

초여름부터 뜨거운 여름을 견뎌내고 지금 이 가을을 장식하고 있는 꽃이 새삼스럽게 대견하다.

무채색의 담장 옆에 붉은 배롱나무 꽃이 대비되어 생각을 부른다.

막 머리를 깎고 먹물옷을 입은 사미니들은 이 꽃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곰곰이 생각에 잠기다가 차에 오른다.

차에 올라 신사장님께 어느 절 신도증을 갖고 계시느냐 여쭈니 그냥 무료급식권이라고 하셔서 한바탕 웃었다.

대부분의 사찰에서는 점심 공양시간에 절을 오가는 사람들에게 점심 공양을 제공한다.

어제 파계사에서도 어느 신도가 점심을 먹을 수 있다고 알려 주었지.

나도 가끔 가는 성북동 길상사에서 온갖 나물을 넣은 비빔밥을 먹은 기억이 난다.

신도증이 있으면 아무 사찰에서나 공양을 할 수 있다는 말씀이군. 후후.

 

 

 은해사 계곡 옆에 차를 세우고 은해사를 돌아본다.

생각보다 절이 크다.

신라시대 창건된 절인데 소실되어 조선시대 다시 지었다고 한다.

규모가 큰데도 소란스럽지 않고 마음을 차분하게 해주는 절집이 마음에 들어서 발밤발밤 거닌다.

그런데 평소에도 빠릿빠릿한 종률씨는 어디로 갔지?

정말 여기저기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살피고 카메라에 담는다.

그것도 다 열정이 많다는 말이겠지.

 

 사진 몇 장 찍고 계곡 물소리를 듣는다.

도리어 계곡가에 사람들이 많다.

여름이면 여기도 한바탕 난리가 나겠는걸.

얼마 전 지나간 태풍이 만들어낸 비로 계곡 물소리는 가열차다.

 

 

 계곡 옆을 따라가니 계곡가를 따라 걸어도 좋을 길이 있다.

나중에 다시 한번 와서 여유있게 은해사, 백흥암, 중암암만 둘러보아도 좋으리라.

전국을 많이 다녔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가볼 곳이 참 많구나.

마음과 몸이 허락하는 동안 부지런히 다녀야겠다 다시 한번 생각한다.

 

 오후 3시 40분, 간단히 뒤풀이를 한 후 박팀장과 귀숙씨는 이사장님 차를 타고 각자 차를 가지러 다시 동화사 방향으로 떠나고 우리는 서울을 향해 출발한다.

1박 2일이었음데도 여러 가지를 해서인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난 것처럼 느껴지는 여행이었다.

이제부터는 서울로 올라가는 길이 밀리지 않기를 바라며 기도나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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