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을 잤는지 말았는지 머리는 띵한데 그렇다고 누워 있을 수만은 없으니 억지로 몸을 일으켠다.
대충 아침을 챙기고 산행 준비를 한다.
귀숙씨 말에 의하면 동봉까지 가장 단거리가 수태골에서 출발하는 것이라고 한다.
거기까지는 차로 이동한 후 산행을 시작하기로 했다.
지도를 펴 놓고 이리저리 보아도 생각보다 시간이 더 걸릴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니
일찍 출발하고 걸음을 빨리 하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
노장파는 어젯밤 의논한 결과 케이블카를 이용해 동봉에 올랐다가 하산 후 거꾸로 은해사에서 중암암까지 오르기로 했으니 제대로 산행을 하는 사람들만 서둘러 출발하면 된다.
오늘 코스는 수태골에서 동봉 찍고 삿갓봉으로 해서 능성재에 내려선 후 중암암과 백흥암을 거쳐 은해사로 내려가는 코스이다.
지도를 보아도 지루하고 만만치 않은 일정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짐작할 수 있다.
뒷정리는 남은 노장파가 한다고 하셔서 산행 준비만 하고 펜션을 나선다.
팔공산은 도립공원으로 지정이 되어 있다.
해발고도가 1000m가 넘는데다 군위와 영천, 칠곡, 그리고 대구와 경산에 이르기까지 무려 5개나 되는 지역에 걸쳐 있는 규모가 꽤 큰 산이다.
칠곡 한티재에서 영천 은해사까지를 종주로 보는 모양인데 대략 8시간 걸린다고 한다.
지도를 보면서 톱날능선이라 씌어 있는 구간을 가 보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 한다.
쉽지는 않겠지만 언젠가 한번 꼭 종주를 해 보고 싶다.
펜션에서 수태골은 금방이다.
이사장님 차로 이동한 후 오전 7시 15분 산행을 시작한다.
예정보다 15분 늦었다.
동봉까지 3.5km라는데 얼마나 걸리려나?
대략 1시간 30분 정도 걸리지 않을까 짐작을 하고 걸음을 옮긴다.
지난 밤의 불면으로 맑지 않은 정신이 아침 공기로 번쩍 깨는 것 같다.
서늘하다고 느꼈는데 오르막길이라 그런지 금세 땀이 나는군.
특히나 몸이 풀리기 전 초반에 줄줄 흘리는 땀은 나를 지치게 만든다.
정말 손수건으로 닦을 엄두도 나지 않을 만큼 땀을 흘리는 걸 보고 부실한 체력 운운 한다.
이렇게 헤매면 어떻게 오늘 일정을 소화하지?
모두 조금씩 걱정하는 눈빛이다.
맨 뒤에서 허우적거리면서 따라가는 나도 스스로 한심하기는 하다.
길은 그다지 험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걸음이 느린 귀숙씨는 다른 사람 쉴 동안 속도를 맞추기 위해 선두에서 걷겠다고 한다.
그래도 그간 함께 다니면서 본 친구의 지구력을 믿으니까 걱정을 하지는 않는다.
걷다 보니 안내문을 붙여 놓은 것이 보인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바위에 '綏陵封山界'라고 바위에 刻字가 된 것이 보인다.
조선시대 조정에서 수릉을 유지하기 위한 산으로 封했다는 말이겠지.
목적이야 여러 가지로 달랐겠지만 조선 팔도에 封山으로 지정된 곳이 생각보다 많았다는 생각이 든다.
산림 관리가 잘 되었다는 말에 다름 아니리라.
고개를 끄덕이며 안내문을 읽어보고 다시 발길을 옮긴다.
가다 보니 이번에는 엄청난 '대슬랩'이 떡 하니 앞에 나타난다.
미친 척 바위와 한바탕 씨름이라도 하고 싶어지는데 신발도 제대로 갖추지 않았으니 객기를 부리면 안 되겠지.
눈을 들어 너른 바위가 뻗어내린 모습을 바라보다 길로 들어선다.
이번에는 옆길로 가면 폭포가 나온단다.
체력이 바닥이라 우회길은 사양이다.
갈림길에서 그렇게 마음먹고 가는데 폭포길로 간 사람들이 바로 아래에 있었군 그래.
그러면 지나칠 수 없지.
아래로 내려가 시원스런 물줄기를 보며 마음의 더위를 씻어 내린다.
태풍 영향으로 얼마 전 내린 비가 水量을 늘려 눈맛을 더해준다.
오르막길이 계속 된다.
산을 울리는 계곡 물소리가 피로를 씻어준다.
여름에도 느끼지 못 했던 청량함이 내 몸을 감싼다.
예상 안 했던 선물에 기운을 얻는다.
얼마나 쉬지 않고 걸었을까?
가다 보니 오른편으로 케이블카를 내리는 곳과 만난다는 이정표가 보인다.
지금쯤 노장파들은 케이블카를 타고 거기 내리셨을까?
살짝 궁금해지는데 박팀장은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못 한다고 갈림길 한 켠에서 막걸리를 파는 노점상에게 막걸리 한 잔을 사서 쭈욱 들이켠다.
산길이 험하지 않으니 괜찮겠지만 술기운에 몸에 열이 나서 더 힘들지는 않을까?
동봉과 비로봉(해발 1193m)으로 갈라지는 갈림길에 도착했다.
귀숙씨와 나는 동봉으로 바로 간다고 하면서 팔공산 정상인 비로봉에 가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15분 시간을 줄테니 서둘러 다녀오라고 했다.
그리고는 동작이 빨라지는 종률씨를 보면서 피식 웃었다.
천천히 동봉을 향해서 걸음을 옮긴다.
세 사람이 아무리 빨리 다녀와도 우리보다는 늦을테니 갑자기 여유로워진 느낌이다.
숨을 몰아쉬면서 계단을 오른다.
여기만 오르면 동봉이었지.
살짝 붉은 빛을 띤 잎새가 화사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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