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량 해비치마을에서 고사리밭길이 시작된다.
고사리가 얼마나 많으면 길 이름이 고사리밭길이 되었을까?
그런 의문을 품고 산길로 접어드는데 금세 키가 큰 고사리들이 지천으로 널렸다.
말 그대로 고사리밭이로구만.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마을을 내려다보는 언덕을 올라 임도 같은 길을 따라 걷는다.
길은 평탄한데 비슷비슷한 길이 이어진다.
길 옆으로 고사리가 우거져 있고 멀리 바다 한가운데 커다란 배가 한 척 떠 있는 모습이 계속 보이는 길.
이렇게 고사리가 많은데 봄에 고사리 딴다고 도시에서 대절해 오는 버스가 없을까 했더니만
친구는 도시 여인들은 이런 언덕배기에 올라 고사리를 따라고 하면 다 도망갈 거란다.
하기는 늘 산길을 헤매고 다니는 나도 힘들기는 하다.
참으로 지루하다 못해 지겨울 정도로 단조로운 산길이 이어진다.
해발고도도 꽤 되겠는걸.
오르막길이 끝났나 싶으면 다시 내려갔다 올라가고...
그렇게 몇 번이나 반복했을까?
아침에 출발하기 전에 자주 문제가 생기는 발가락에 물집 방지 패드를 붙였는데 다른 발가락이 신음을 한다.
이 정도로 고통스러우면 또 물집이 심하게 생겼다는 말인데...
등산화 속에서 발가락을 조심하면서 걷노라니 신경이 많이 쓰인다.
1시간 이상 걸었는데 이 길이 언제쯤 끝나려나?
스마트폰에서는 시속 3.3km로 걷고 있다는 소리가 들리는데...
아무래도 무슨 조처를 취해야 앞으로 남은 길을 갈 수 있을 것 같다.
마을이 내려다보인다.
저기가 천포이겠지.
점심을 먹은 장포만 먼 것이 아니라 천포도 참 멀다.
이번에는 '하늘 天'자가 들어간 곳인가?
마을 못 미처 나무 아래에 자리를 잡고 물 한 모금 마시고 발가락을 보기 위해 신발을 벗었다.
아니나 다를까 벌겋게 부어 오르고 잔뜩 성이 나 물집이 잡힌 발가락이 보인다.
불쌍한지고.
얼른 물집 방지 패드를 꺼내 감아 준다.
남은 거리 잘 걸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산불로 폐허가 된 곳
돋아나는 고사리 꺾으며
축축하게 흐르는 땀
개울물에 발을 담그니
뼛속까지 깨달음이 새롭다
태초에 하나님 인간을 만드실 때
두 발로 걸으라고
튼튼하게 만들어 주셨는데
그 뜻 거역하고
자동차만 타고 다니니
이곳저곳 아픈 곳만 늘어난다
이제라도 그분의 뜻 따라
산새들과 들짐승처럼 뛰어다닐 때
지천명의 언덕을 훌쩍 넘을 것이라고
발바닥이 귓속말로 전해 주고 있다
김귀녀의 < 발바닥이 전하는 말 > 전문
천포를 지나니 길은 편안해졌다.
계속 포장도로를 따라 걷는 길이다.
이제 가인을 향해 걷는다.
가인에는 공룡 발자국 화석이 있다고 했다.
공룡 발자국이라는 것이 우리 같은 문외한의 눈에는 바위 위에 파인 작은 웅덩이로 보이기는 하지만.
잠시 공룡발자국 화석을 확인해야 하나 고민을 하다가 발길을 돌린다.
거기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것도 부담스럽다.
앞으로 남은 길이 어떨지 모르고 동대만 휴게소까지 적어도 해가 지기 전에 도착해야 하니까 마음에 여유가 없다.
모자가 순식간에 날아갈 만큼 바람이 거세더니 바야흐로 비가 후두둑 떨어진다.
몇 방울 떨어지는 것이야 시원하니 문제될 것이 없지만 갈 길이 까마득한데 폭우라도 쏟아지면 어쩐다?
구름으로 덮인 하늘을 올려다보며 이쯤에서 그쳐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갖게 된다.
도로를 따라 꼬불꼬불한 길을 오른다.
이럴 때는 포장도로가 도리어 감지덕지할 지경이다.
적량에서 천포까지 오는 4km 넘는 산길에 질렸다고나 할까.
물론 오르막에서는 속도가 떨어지지만 그래도 스틱에 의지해 쉬지 않고 걷는다.
고두에 도착했다.
물통이 거의 비는 바람에 얼른 가게가 있나 마을을 둘러보는데 가게는 없고 보건지소가 보인다.
저기에서 물 보충을 할 수 있겠구나 싶어 부지런히 발길을 옮겼는데
아뿔사,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휴가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고 문이 잠겼네.
보온병에 뜨거운 물이 있기는 하지만 물이 떨어지는 건 낭패인걸.
트레킹을 하면서 물 때문에 고민을 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바람 덕분에 덜 덥고 땀이 안 나니 그나마 다행이기는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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