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산행기

말발굽길에서 ; 남해 바래길 6코스 (2)

솔뫼들 2016. 9. 14. 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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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속 차도가 이어지나 했는데 다시 오르막길로 접어든다.

모상개 해수욕장 가는 길이란다.

시멘트 포장도로를 한참 걷는데 뒤에 오던 친구가 길이 잘못 되었단다.

에구! 그러면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말인가.

'두발로' 앱에는 모상개 해수욕장을 거치지 않고 바로 장포로 가는 모양이다.

하지만 이정표에 그렇게 되어 있으니 일단 가기로 했다.

 

 

강한 햇볕 피할 곳 없는 오르막 포장도로를 걸으려니 짜증이 난다.

왜 이렇게 재미없는 길을 걷게 만들었을까?

바다를 즐기며 근처 골프장을 이용하는 사람들만 다닐 법한 길이다.

 

모상개 해수욕장이라는 곳도 손바닥만한 해변이 고작이다.

일부러 이런 해수욕장을 찾을 사람은 거의 없지 않을까 싶은데...

게다가 바로 해수욕장 코 앞에 양식장이 있으니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아무래도 해수욕객이 몰리면 오염이 되게 마련 아닌가.

 

금방 장포로 가려니 했던 예측이 빗나가 해변 한쪽 소나무 그늘에서 쉬면서

스프와 초콜릿을 챙겨 먹는다.

배를 채워야 걸을 힘이 생기겠지.

 

 

길은 이제 산길로 안내한다.

남해는 본래 섬이지만 생각보다 산이 많다.

걷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이유이다.

 

길은 희미하게 보이는데 어느 순간 길인지 분간이 어려울 정도로 풀이 우거졌다.

벌레가 나를 공격하고 억센 풀들도 내 다리를 후려친다.

허리까지 올라오는 풀에 거미줄까지 더해져 참으로 마음에 안 드는 길이 이어진다.

아! 어쩌란 말이냐?

 

그러다가 바닷길로 내려서니 버려진 어구들이 파도에 밀려든 해안이 나타난다.

결국 어민들 피해가 될텐데 눈앞의 편의를 좇아 무책임하게 어구를 팽개친 사람들의 양심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금세 자신들에게 돌아올 일을 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지?

 

 

그래도 잠깐 바닷물에 손을 담가 본다.

동해안을 따라 걷는 해파랑길이나 한려해상 바다백리길을 걸으면서 한번도 바닷물에 손을 담그지 않았다.

그럴 만한 상황이 안 된 적도 많고.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바닷물이 미지근하다 못해 뜨겁다.

무의식중에 바닷물은 시원할 것이라는 생각이 있어서인지 놀랍기까지 하다.

이러니 양식 어류가 폐사한다는 소리가 나오는 거구나.

 

돌이 제멋대로 놓여서 발바닥이 불편한 해변을 걷다가 마을길로 들어섰다.

어패류를 가공하는 곳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의아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들 눈에는 10kg쯤 되는 배낭을 둘러메고 뚜벅뚜벅 걷는 중년의 여자가 이상해 보이겠지.

 

드디어 장포에 도착했다.

이름에 '長'이 들어가서 그리 멀게 돌아왔을까?

참 힘들고 지루한 길이었다.

 

 

이제부터는 점심 먹을 곳을 찾아야 한다.

걷는 길로 나서면서 부득이한 경우 제대로 끼니를 못 채우는 것도 감수하지만 그래도 오늘 걸을 거리가 만만치 않으니 가능하면 제때 챙겨 먹어야 하리라.

친구를 기다린 후 마을에 유일하게 있는 횟집에서 간단한 식사가 가능한지 물으니 백반만 가능하단다.

다행이다.

 

나온 음식을 싹싹 비우고 일어선다.

주인장 말에 의하면 郡에서 신경을 안 써서 바래길이 풀에 묻혔단다.

주말에는 찾는 사람들이 꽤 많다는 말에 놀라며 길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는 함께 울분을 토한다.

나는 당장 옷이 거미줄 투성이이고 벌레가 달라붙어 목은 부풀어 올랐다.

친구는 성난 풀에 다리가 쓸리는 바람에 덥다고 분리했던 바짓단을 다시 붙이느라 바쁘고.

 

주인장이 설명하기로는 우리가 예상했더 곳에 숙소와 음식점이 하나도 없단다.

'~포'라 이름 붙은 곳은 그냥 시골 마을인 것이다.

그럼 오늘 일정이 달라져야 한다는 말이다.

일단 가는 데까지 가기로 하고 음식점을 나선다.

열량을 보충했으니 부지런히 걸어야지.

 

 

다행인지 불행인지 특별한 볼거리 없는 길이 이어진다.

바닷가를 따라 걷다가 다시 구불구불한 포장도로를 따라 걷다 보니 오후 2시 5분, 적량에 도착했다.

적량에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고려시대 적량에서 군마를 사육하여 이 길 이름이 '말발굽길'이라 명명되었다는데

조선시대에도 군사적 요충지여서 城을 쌓아 남해를 방어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안목은 없지만 주변을 둘러보며 생각에 잠긴다.

 

여기까지가 남해 바래길 6코스 말발굽길이다.

대략 16km 넘게 걸은 것 같다.

만약 고사리길을 다 걸으려면 정말 젖 먹던 힘까지 내야 하는데 정신을 가다듬고 힘을 모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