읍내로 들어가서 두리번거리는데 어디쯤이 중심가인지 알 수가 없다.
지나는 사람에게 근처에 맛있는 음식점이 있느냐고 물으니
식당이 몇 개 있는 곳을 가리키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다.
그냥 한 끼 때운다고 생각을 해야 되겠군.
그쪽으로 이동을 해서 적당한 음식점 한 곳에 들어갔다.
김치찜을 시켰더니 전국적으로 소문난 메뉴라며 주인이 자랑을 한다.
그런데 나온 음식은 겨우 먹을 만하다.
길에서 만난 사람의 말이 맞네.
마음을 비우고 배는 채웠다.
어차피 저녁도 작은 마을에서 제대로 먹을지 예측할 수 없으니 먹어 두어야지.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소댕 보고도 놀란다고 비진도에서 밥을 제대로 못 먹어서 신경이 쓰인다고나 할까.
게다가 아직 갈 길도 멀지 않은가.
종일 걷고 혹시 저녁을 못 먹을지도 모르는데...
점심을 먹고 난 후 배낭을 메고 나와 갈림길에 들어서며 사진을 찍으려고 하니 카메라가 없다.
악! 다시 음식점으로 헐레벌떡 뛰어갔다.
이번에 구입한 카메라는 아직 줄을 준비하지 않아 주머니에 넣어 두었는데 겉옷을 입다가 빠진 모양이다.
주인이 카메라를 주워 이리저리 살펴보는 걸 돌려받고 걸음을 늦추며 다시 달아길로 접어든다.
그런데 손님이 떨어뜨린 물건을 보면 얼른 불러 돌려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잃어버린 내 잘못이 크지만 금세 식당에서 나왔는데 돌려줄 생각도 안 하고 물건 구경하고 있던 모습이 영 찜찜하다.
정말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겠다.
평소에는 물건을 잃어버리는 일이 드문데
첫날 주머니 가방에, 아까 산에서 버프, 그리고 새로 산 카메라까지
이번 여행에서 왜 이렇게 술술 흘리고 다니는지 모르겠다.
내가 도대체 정신을 어디에 두고 다니는 거야?
친구도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다.
길 옆으로는 인조잔디가 깔린 운동장이 펼쳐져 있다.
비록 인조잔디일 망정 초록색을 보자 마음도 덩달아 푸르러지는 듯하다.
산양스포츠파크라는데 이곳에서 전국대학축구대항전이 열린단다.
작은 읍내에 훌륭한 시설을 갖춘 스포츠공원이 있군.
산양스포츠파크를 지나자 오르막길이 이어진다.
배가 불러서 그런지 급하지 않은 경사임에도 숨이 턱에 찬다.
동네 뒷산 같은 길에서 앞만 보고 부지런히 발길을 옮기는데 뒤에 오는 친구가 부른다.
'뱀이 자주 출몰하는 곳'이라는 안내문이 있는데 뱀이 나오면 어떻게 하려고 그렇게 빨리 가느냐고.
천천히 가면 뱀이 안 나오나?
그리고 겨울잠을 자는 뱀은 아직 안 나오지 않았을까?
겨울잠에서 깨어 나왔다고 하더라도 겨우내 못 먹었으니 빌빌거릴테고
그런 뱀은 나 같은 질긴 사람은 안 건드릴 거라고 실실 우스갯소리를 해 본다.
우리가 가는 산의 이름이 희망봉이라는데 이렇게 힘들게 찾아야 하는 것이 희망이구나.
겨우 해발 230m 높이를오르면서 절절 맨다.
얕은 산이라고 너무 가볍게 생각하고 시작을 한 게지.
그래도 희망봉에 오르고 나니 이 산에서 더 높은 곳은 없으리라는 생각에 희망이 생기기는 하네.
간간이 이정표만 나오고 아무 것도 눈에 띄는 것이 없는 산길에 어쩌다 눈에 들어온 산악회 리본이 반갑다.
게다가 거기 쓰인 문구도 마음에 드네.
'산은 내 삶의 행복 바이러스'
이런 글을 읽을 때면 잠시 힘든 것을 잊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다닐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게 되곤 하지.
배낭을 내리면 더 힘들어질 것 같아 잠시 숨만 고르고 다시 걷는다.
내리막길이 나오니 마음을 놓고 걷는데 다시 시작되는 오르막길.
소화가 되기도 전에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걸으려니 지쳐서 올라가는 길 중턱에 주저앉았다.
물 한 모금 마시고 하늘을 올려다본다.
하늘을 여러 조각낸 나뭇가지만 눈에 들어온다.
힘이 들어도 잎새를 떨군 나뭇가지가 만든 무늬가 예뻐서 슬며시 웃는다.
특별히 볼거리도 없는 산중에 이런 맛이라도 있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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