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기운을 차리고 배낭을 둘러멘다.
천천히 걷고 있는데 뒤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오롯이 우리만 걷고 있었는데 들려오는 발자국 소리는 신경이 쓰인다.
걸음이 빠른 젊은 사람들이라 길을 비켜주고 보니 미륵산에서 보았던 무리 중 두 명이다.
우리를 금세 앞질러 가는 걸 보니 駿族인 모양이지.
열심히 걷는데도 거리는 좀체 줄지 않는다.
중간중간 경치가 좋은 곳에 마련된 전망대에서 앞서간 사람들과 다시 만나고 또 먼저 보내기를 몇 번.
간혹 이 길이 맞나 싶게 이정표가 한동안 나오지 않아 긴장도 하고,
오래 된 대나무숲에서 심호흡을 하면서 폐 청소도 한다.
대나무에서는 음이온이 나온다고 했었지.
음이온의 기능에 대해서는 다 잊었지만 몸에 좋다는 것만 생각난다.
또 다시 전망대에서 만난 두 사람에게 귤 한 조각을 얻어 먹고는 몇 마디 말을 나누었다.
이곳을 몇 번 다녀간 적이 있는 사람인지 멀리 손톱만해 보이는 정자를 가리키며 저기가 망산 같다고 한다.
이제 높은 곳에 올라갈 일은 없으려니 했는데 저기를 어떻게 간담?
거리도 거리지만 높이도 만만치 않아 보인다.
긴장의 끈을 놓지 말라는 얘기네.
갈 일이 막막해 입을 꾹 다물고 거리만 줄인다.
미륵산에서 본 것처럼 여기에도 돌로 쌓은 성이 있군.
사유지도 있나 울타리를 쳐 놓은 곳도 보이네.
몇 번이나 오르락내리락을 했을까?
그렇게 멀고 까마득해 보이던 망산(해발 253m)에 도착했다.
희망봉이 가장 높으리라 생각한 것은 착각이었군.
어제 걸은 한산도 역사길에도 망산이라는 이름을 가진 산이 있었고, 거제도에도 망산이라는 산이 있는데
여기에 있는 산 이름도 망산이다.
望山이란 이름이 왜적의 동정을 살피던 곳이라 그런 이름을 얻었다는데
이제는 전망이 좋은 곳이라 그런 이름을 얻었다고 바꾸는 것이 좋지 않을까 혼자 생각해 본다.
이름도 얻지 못한 정자 하나 우두커니 서 있는데 올라갈 엄두도 안 난다.
정자와 나무를 넣어 사진 한 장 찍고 이제는 정말 내리막길이려니 기대를 걸고 걷는다.
발 아래 달아공원이 내려다보인다.
조금만 내려가면 오늘 일정은 끝이다.
시간이 그리 오래 된 것은 아닌데 종일 걸었다는 느낌이 든다.
가파른 길을 내려서자 달아공원이 코 앞에 다가온다.
꽤 알려진 공원인지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제법 많네.
공원을 따라 오르자 나를 안내하는 건 향기이다.
매화가 화들짝 피어나서 길가를 밝히고 있다.
언제 힘들다고 투덜댔나 싶게 마음까지 밝아지는 느낌이 든다.
감감하던
매화 옛 등걸에
한 송이 예쁜 꽃
아무 쓸모도 없는
등걸인줄 알았는데
절망의 나락에서
희망의
꽃 한 송이
매화(梅花)
너를
닮으리.....
이문조의 < 매화 > 전문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의자에 앉아 잠시 쉰다.
아침에는 차갑던 날씨가 언제 그랬느냐는 듯 푹해져서 이른 꽃구경을 나온 사람들의 표정도 화사하다.
저기 산 위에는 E.S리조트, 저기는 수산과학관...
눈에 보이는 경관을 하나씩 짚어보며 여유를 부린다.
아! 정말 봄볕이 따뜻하네.
멀리까지 봄맞이를 나온 셈이다.
오늘 걸은 거리는 대략 11km 정도이다.
바다백리길 거리가 맞는 곳이 없네.
지금은 모두 GPS로 거리 측정을 하는데
이렇게 거리도, 소요시간도 안 맞으면 어떻게 예측을 하고 계획을 세운담?
한 가지 일을 해도 제대로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쉬면서 간식을 먹고는 달아마을로 발길을 옮긴다.
人道가 없어 車道 가장자리를 걷자니 불편하다.
우리 같은 배낭여행자를 위한 배려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군.
걷는 길을 만들어 놓았으면 거기 걸맞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하는 것 아닌가.
달아마을로 들어서서 일단 숙소부터 알아본다.
짐을 내려 놓고 마음도, 몸도 편하게 움직이고 싶다.
다행히 편의점도, 음식점도 몇 군데 있다.
내일 아침 연대도행 배편을 알아본 후 편의점에서 필요한 물품을 사고
근처 음식점 정보를 물으니 바로 옆 음식점이 괜찮다고 한다.
코다리찜을 맛나게 먹으며 피로를 푼다.
오늘은 일찍 쉬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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