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란의 조금은 특별한 책을 손에 들었다. 신문에 소개된 내용을 보았는데 볼 만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이 아니고 특별히 어떤 장르의 글이라고 단정짓기가 쉽지 않다. 수필에 가까운 산문이라고 보아야 하겠지. 백화점에 드나들며 궁금한 것이나 관심 가는 것에 대한 글인데 현대 사회에서 백화점이 차지하는 영역이 꽤 되는데도 불구하고 여태 이런 책이 없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백화점에 가는 것을 즐기는 모양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물건을 사는 것은 아니고, 관찰하고 그러면서 즐기고, 때로는 쉬기도 하는 공간으로 백화점을 선택한다고 한다. 나도 한때는 그랬다. 친구나 후배와 약속을 하면서 백화점에서 만나자고 했고, 때로는 딱히 살 물건이 없는데도 윈도우 쇼핑을 즐기기도 했다. 지금은 부득이한 상황이 아니면 백화점에 가는 것을 별로 선호하지 않는 편이다. 사람에 치이는 것도 힘들고, 공기도 탁하고, 또 같은 거리를 걸어도 바닥이 미끄러워서 그런지 몹시 피곤하게 느낀다. 하지만 저자는 나와는 영 다른 사람인 모양이다. 어느 장소나 물건을 즐기고 좋아하게 되면 아무래도 알고 싶은 것이 많아지겠지. 그런 차원에서 시작한 것이 책을 쓰겠다고 마음 먹게 되고 그런 다음 본격적인 공부와 취재에 들어간 것 아닌가 싶다.
덕분에 백화점에 대한 여러 가지 공부를 하게 되었다. 유래는 물론 우리나라에 처음 생긴 백화점이며 백화점이 어떻게 변화하면서 사람들을 모으고 있는지 말이다. 식당가를 만들고, 어린이 휴게시설을 만들고, 옥상 정원 및 문화시설까지 갖춘 것은 당연히 사회에 공헌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사람들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불러모으고 백화점에 오래 머물게 하려는 상술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런 상술에 단순히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이용을 하면서 자신의 욕구를 채울 수도 있는 것이다.
1층부터 꼭대기층과 옥상까지 올라가는 동안 거기 진열된 물건들 뿐 아니라 일하는 사람 혹은 숨겨진 방의 모습들까지 비추며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 이면에 힘들게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도 보여주고 물건들이 어떻게 진열디고 포장되고 배송되어 고객의 손에 넘어가는지 하나하나 따라가게 된다. 그리고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로 내려가 식품관까지 꼼꼼히 살핀다. 신문 인터뷰에서 그랬던가. 본인이 운전을 하고 다니지 않아 주차장은 책의 내용에서 빠졌다고. 저자 입장에서는 아쉬운 모양이다. 어쩌면 주차장이 적나라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책을 다 앍고 난 후 가볍게 여기고 손에 잡은 책이 그리 가볍지만은 않은 책이라는 생각을 했다. 가끔 백화점들이 도에 넘는 경쟁을 하다가 문제가 되기도 하고, 지나치게 고가의 명품으로 보통 사람들에게 위화감을 조성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현대가 소비사회라는 것을 인정하면 백화점의 변화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다음에 백화점을 어떤 방식으로 보고 이용하는가 하는 것은 현대를 살아가는 개개인의 선택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