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6'을 손에 들었다. 오래 전에 1, 2, 3권을 차례로 찾아 읽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우리가 미처 발견해내지 못한 우리 문화 유산의 아름다움에 눈뜨게 해주는 책이라는 생각에 가슴이 설레기까지 했다. 물론 흡인력 강한 그의 글맛도 책의 장점 중 하나이다. 한때 꿈이 작가였다는 말이 사실임을 충분히 인정할 만하다. 중간에 '북한 문화유산답사기'가 나오기는 했지만 한번 가 보고 책을 쓴다는 것에 대한 약간의 거부감이랄까 하는 것 때문에 읽지 않았다. 전문가이기는 하지만 어떻게 한번 보고 제대로 파악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후일 통일에 된 후 저자가 다시 다듬어 쓴다면 찾아 읽을 용의는 충분히 있지만.
일단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라는 제목을 달고 나온 책은 한창 해외 여행이 봇물을 이룰 시기 많은 사람들이 그간 놓치고 있었거나 또는 폄훼하고 있었던 우리 것에 대한 자부심을 갖게 하기에 충분한 책이었다. 나부터 수박 겉 핥기식으로 둘러보던 우리 나라를 다른 시각으로 보게 되고, 여행을 가기 전 또는 다녀온 후 책을 읽으며 다시 한번 확인하는 습관이 생길 정도였으니까 전국에 책을 손에 든 답사객들이 몰린다는 말이 과장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번 책을 보면서도 늘 그리움에 가보고 싶으면서도 이름만 들었던 선암사며 무량사 등등 가슴에 와 닿는 절집이 손이 잡힐 듯하다. 저자는 답사를 이끌며 또는 개인적으로 절집이나 절터를 찾으면서 느낀 감정이나 상황을 솔직하게 기록해 놓았다. 그래서 더 편안하고 친숙한 느낌이 드는지도 모르겠다. 함께 버스를 타고 움직이며 그의 유머 넘치는 해설을 들으면 저절로 머리 속에 쏙쏙 들어오는 느낌이 들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알게 된 것을 눈으로 확인하면 오래오래 기억될 것이다. 발품을 팔며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몸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많은 것을 우리에게 가져다준다고 하지 않는가.
지난 봄 해남 두륜산을 가면서 대학시절 여행을 갔던 기억보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읽은 내용이 더 선명히 기억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유선여관에서 길렀던 누렁이 이야기까지 더불어서 말이다. 그래서 더 정감이 가는 유서깊은 유선여관을 오가며' 삐꿈히' 들여다보았다. 이렇게 파급력이 크니 이번 책에 대한 기대 또한 크다.
책은 서울에서 출발한다. 늘 스치듯 하면서도 어쩌다 발길을 했던 경복궁을 꼼꼼히 들여다보는 저자의 발길을 따라 나도 덩달아 분주하다. 사진에 관심을 갖고 '똑딱이'나마 들고 다니면서 안목을 키우려고 하다 보니 그나마 배경 지식 없이도 아름다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책을 읽으면서 '박석'이라는 말은 처음 들었다. 무심코 보았던 바닥 돌을 다음 번에 가면 유심히 보리라. 고즈넉하게 비가 내리는 날 책에서 이야기한 대로 혼자 경복궁을 찾아도 좋겠지. 사람들이 드물어서 호젓하게 둘러볼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경복궁에서 한창 놀고 났으니 이제 좀 멀리 떠나볼까나? 다음 행선지는 선암사란다. 여기에서 저자는 불교의 종파라든가 어떻게 해서 갈라졌는지에 대한 이야기까지 소상하게 들려준다. 저절로 공부가 되는 느낌이다. 사실 우리 나라 문화유산 중 불교유적을 빼면 무엇이 남을까 할 정도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거기에 또 건축이 가장 커다란 위치를 차지한다는 것도 이번에 새삼스럽게 알았다. 절집이나 탑, 또는 불상 등등 많은 것들이 우리를 그 시절로 안내한다. 그 유적을 남긴 그 시대 석공의 망치 소리가 어디서 들려올 것만 같다.
합천과 거창도 그는 스쳐가지 않는다. 보통 합천을 떠올리면 해인사만 떠오르는데 저자는 합천과 거창에서 우리가 모르고 있었던 서원과 정자를 찾아 안내한다. 거기에도 나름대로 문벌간의 갈등이 숨어 있고 지금까지 그 흔적이 남아 있다니 어찌 보면 그게 사람살이인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성씨에 얽힌 이야기까지 듣다 보면 시간이 가는 줄을 모른다.
주욱 여기저기를 다니다가 저자는 최근 제2의 고향으로 삼은 부여를 말한다. 부여에 작은 집을 짓고 주말마다 내려가 농사도 짓고 시골살이를 즐기는 '5都2農'이 된 셈이다. 부여를 선택한 이유가 근처에 마음이 가는 절이 있고 문화유산이 가까이 있으며 박물관을 가기 쉬운 곳이라고 하니 직업의식은 버리지 못하는 모양이다. 우리가 은진미륵이라고 알고 있는 꺾다리 보살상이 미학적인 면이 전혀 없는 불상이 아니라는 것, 그것을 차근차근 설명하는데 듣다 보면 나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여진다. 결론은 늘 안목이 없기 때문에 휙 훑어보고 볼 것이 없다는 말을 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또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돌담들... 나도 어느 곳을 가든 아담하게 낮은 돌담이 쌓여 있는 곳을 보면 정감이 간다. 점점 사라져가겠지만 그런 면에서 문화재청장으로 있을 때 돌담을 문화재로 지정한 것은 박수를 받을 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지켜야 하는 것이 돌담만은 아니겠지만 작은 일 하나라도 돌담 쌓는 마음으로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책을 후딱 읽었다. 역시 잘 읽힌다. 공부하듯 꼼꼼히 기억하며 정독하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모르는 것을 알아가고 배우는 기쁨이 크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들려주는 저자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글솜씨, 말솜씨가 좋다는 것은 익히 아는 사실이니 벌써부터 다음 권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