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기 유고 소설집 '유리 그림자'를 읽었다. 역시 이윤기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소설을 읽으면서 소설 속 주인공과 작가를 동일시하면 안 되는데 유독 이윤기 작품에서는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작가를 떠올리게 된다. 단편 몇 편을 모은 작품집이지만 이윤기만의 색깔이 선명한 느낌이 들었다. 세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랄까, 나이가 들어가면서 원숙해지고 넉넉해지는 면모할까...
이윤기는 수필을 보아도 느껴지지만 입바른 소리를 하는 성격인 모양이다. 자기가 내뱉은 말 때문에 자신 스스로 감옥에 갇힌 것 같은 느낌을 갖기도 하는지 모르겠다. 그만큼 사람살이가 어렵다는 것을 실감한다고 하니 말이다. '종살이'라고 하는 작품에서는 그런 느낌이 든다.
책의 제목이 된 '유리 그림자'에서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때로는 어떤 실수나 허물이 인간적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너무 잘 닦인 유리창에 새가 부딪혀 죽는 모습을 보고 유리창을 닦지 않기로 한 대목에서는 인간적인 그의 모습이 드러난다. 책을 읽는 동안 한문 문구가 생각났다. '水至淸卽無魚 人至察卽無徒'라는. 사실 그 정도로 완벽할 수는 없고, 또 일부러 실수를 만들어 할 필요는 없겠지만 지나치게 빈틈이 없는 사람을 보면 숨이 막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럴 리가 없지만 나는 어떤 사람인가 생각해 보게 된다.
밖으로 나가 유리 탁자를 긁어보았다. 유리 탁자 위에는 송홧가루가 뽀얗게 앉아 있었다. 봄바람이 불면 산 사면에서 구름처럼 솟아오르던 그 송홧가루였다. 아, 송홧가루가 유리 탁자의 그림자를 만든 것이구나, 싶었다. 사물은 그림자가 있어야 비로소 온전해지는구나, 싶었다. 송홧가루는 우리가 짓는 일상의 작은 허물일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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