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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자

by 솔뫼들 2009. 9.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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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대 사람들이 아무도 그에 대해 정확히 아는 사람이 없는데다가 평생 그 시대로부터 따돌림당했으니 그는 고산자( 孤山子 )요,

아무도 가지 않은 길, 나라가 독점한 지도를 백성에게 돌려주고자 하는 그 뜻이 드높았으니 그는 고산자( 高山子 )요,

사람으로서 그의 염원이 최종적으로 고요하고 자애로운 옛산을 닮고, 그 옛산에 기대어 살고 싶어 했으니,

그는 고산자( 古山子 )라고도 했다.

 

 그의 이름이 김정호( 金正浩 )다.

 

 박범신의 소설 '고산자' 앞부분에 나오는 말이다. 우리에게 대동여지도를 만든 위인으로 알려진 김정호에 대한 소설 '고산자'.

 잘못 알려진 부분을 바로 잡으며 우리가 알고 있는 대동여지도가 어떤 과정을 통해 완성되었는지, 그리고 어떤 목적으로 만들어졌는지, 또한 어떤 동기에서 김정호는 지도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 숨을 참기 바쁘게 책장을 넘기며 따라가게  된다.

 

 조선은 전제주의 국가였다. 권력이 오로지 왕권에 있는 나라로서 지도는 국가만 만들 수 있고 국가 차원에서 일반인에게 허락해야만 접근 가능한 물건이었다. 인쇄의 한계 때문에 필사본으로 할 수밖에 없는 측면도 있었고 제대로 발품을 팔아 만든 지도가 아니라 관리들이 물어물어 대충 넘어가는 측면도 많았다. 홍경래 난을 평정하는 지원대에 나선 김정호의 아버지가 그런 지도를 믿었다가 길을 잃고 산에서 죽음을 맞았다. 그것을 계기로 김정호는 정확한 지도를 만들기 위해 전국을 발로 뛰며 지도를 만들기에 일생을 바치게 된다.

 

 아무리 김정호의 열정과 노력이 대단했다고 해도 대동여지도를 만드는데 혼자만의 힘으로는 어려운 면이 많았을 것이다. 무관이었지만 지도에 관심이 많았던 위당 신헌의 도움으로 상민은 볼 수 없었던 자료를 본 것도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게다가 길에서 길로 떠다니며 장사를 하는 보부상들의 도움이야말로 지도를 만드는데 실질적이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보통 사람들은 알기 어려운 샛길이나 산길까지 꿰고 있는 사람들이고 또 그만큼 지도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이었을테니까 말이다.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대동여지도가 나오기 전에 청구도나 동여도를 만들면서 전국을 샅샅이 다니고 나중에는 심지어 간도까지 갔다가 역적으로 몰려 고초를 겪기도 하는 등 온갖 고생을 자초하면서도 끝내 지도 만들기를 포기하지 않은 인물 김정호. 책을 읽는 내내 막연히 생각했던 김정호가 아니라 진짜 김정호라는 사람에 대해서 존경하는 마음이 생겼다. 자기의 목숨을 걸고 무엇을 하려는 의지를 갖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지 않는가. 게다가 그것으로 인해 자신에게 커다란 이득이 있는 것도 아닌데...

 

 책의 재미를 위해 비구니와의 인연을 넣은 것도 읽는 이를 배려한 작가의 의도라는 생각이 드니 더욱 흥미진진하다. 물론 역사적인 사실을 따라 전개해서 그 과정에 자연스럽게 끼워 넣은 점도 돋보이고. 무게감 있는 작품으로 독자를 찾는 작가의 모습이 든든해 아무래도 한동안 이 작가의 책을 찾아서 읽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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