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각적인 매체에 밀려 라디오는 뒷전이 된 지 오래이다. 그나마 운전할 때 많이 듣는 편이었는데 요즘에는 많은 사람들이 자동차 안에서도 텔레비전을 시청하는 추세라 그마저도 시들해지는 상황이다. 어쩌면 음악만 듣거나 이야기를 듣기만 하는 것은 심심하거나 싱겁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 국악방송에 문학작품을 읽어주는 프로그램이 생겼다는 소식을 들었다. 반가웠다. 컴퓨터가 발달하면서 종이에 인쇄된 문자를 멀리하는 세대를 위한 것이거나 시력에 장애를 가진 사람을 위한 것이겠지만 우리 같은 일반인에게도 누군가 읽어주는 책을 듣는다는 것은 또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것 같다.
텔레비전이 광범위하게 보급되기 전 그러니까 초등학교 시절 집에는 트랜지스터 라디오가 있었다. 물론 전파에 따라 가끔 지직거리며 잡음을 내기는 했지만 라디오는 그 당시 우리들의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놀거리가 마땅치 않았던 시절 학교에 다녀오면 우선 씻고 집안에 들어가 숙제를 한 다음 -그래야만 라디오를 듣게 했음 - 라디오에서 나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어린이 시간이 되면 연속극이 방송되고 학교에서 배우지 않는 동요도 많이 나왔다. 작은 라디오에 형제들이 머리를 들이밀고 있는 시간은 끝없는 상상력을 충전하는 시간이었으리라. 그 시간에는 친구들이 담장 너머로 꼬약꼬약 이름을 불러대도 절대로 놀러 나가지 않았다. 어머니가 심부름을 시키려고 부르는 소리도 귀 밖으로 들렸다. 그렇게 라디오를 가까이 두고 지내다가 동네에 전기가 들어오고 텔레비전이 보급되기 시작했으나 우리집은 아이들이 텔레비전에 빠지는 것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텔레비전을 구입하지 않았다.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에는 공부를 한다고 라디오를 가까이 하지 않았던 듯하다. 몇몇 친구들은 그 당시에 팝송에 빠지고 조용필에 빠져서 정신이 없었지만 그럴 만한 여유가 내게는 없었다. 그러다가 시간이 흘러 대학때 서울로 올라왔다. 형제들과 자취를 하면서 저녁이면 라디오의 FM 음악방송을 청취하는 것이 하나의 낙이었다. 그러다가 방송에 사연을 보내고 원고료를 타서 용돈에 보태는 재미도 제법 쏠쏠했다. 꽤 한참 그렇게 지냈던 듯 싶다.
다시 세월이 흘러 시청각적인 것을 모두 갖춘 매체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음을 빼앗겼다. 사실 놀거리가 많다 보니 라디오는 뒷전으로 밀렸다고나 할까. 나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텔레비전을 많이 보는 것은 아니고 컴퓨터를 하는 시간이 는 것이지만. 그런데 어느 순간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사연이나 음악이 나를 다시 사로잡았다. 그러면서 먼 시절로 나를 이끌었다. 라디오와 해후하고 난 후 집안 일을 할 때나 운전을 할 때면 어김없이 라디오 FM 채널로 손이 간다. 정겹게 흘러나오는 구수하고 사람 냄새 나는 음악과 목소리에 빠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