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추석 송편

솔뫼들 2008. 9. 11.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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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후면 추석이다.

이번에는 추석 연휴가 짧아 구성객이 많지 않으리라는 예상이다.  한참 전부터 우리집은 어머니께서 역귀성을 하신다.  사실 짧은 거리여도 가는데 진을 빼고 나면 집에 도착해서 일을 할 엄두도 나지 않았는데 조금 허전하기는 하지만 그나마 길에서 시간을 허비하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추석은 설보다 더 바쁘다. 손이 많이 가는 송편을 빚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집이 대대로 종가인데다가 송편을 빚는 것도 재미요, 아이들이 보고 배우는 것이라고 남들이 대부분 사서 쓰는 송편을 어머니는 꼭 빚게 하셨다.  하얀 것은 당연하고 봄에 쑥을 뜯어 놓으셨다가 쑥송편을 하기도 하고, 포도즙을 내어 연보라 송편을 만들기도 하고...   물론 조카들이 이런 모양도 만들고, 저런 모양도 만들며 재미있어 하고 찐 다음에는 자기 것을 찾는다고 호들갑을 떠는 것을 보는 것도 즐겁기는 했지만 종일 허리가 꼬부라지도록 송편을 빚고 나면 저녁에는 지쳐서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하는 양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올해는 슬그머니 어머니께 송편 사서 하면 안 되느냐고 여쭈어 보았다.  어머니 건강도 부쩍 안 좋아지셔서 꼼짝 않고 앉아서 송편을 빚을 형편이 되지 않는데 혼자 할 엄두도 나지 않고 꾀도 났기 때문이다.  크게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어머니께서는 며느리가 알아서 할 일이라며 즉답을 피하셨다.  내심 그 말에 서운하셨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나중에 들었다.  시집 오신 후로 50년 이상을 해마다 하신 일 아닌가.

 

 오늘 오전  어머니께 전화가 왔다.  그리고는 대뜸  "네가 원하는 대로 됐다."고 말씀하셨다.  무슨 말씀인가 들어보니 올캐들이 올해는 송편을 맞추어서 쓰자고 조심스럽게 어머니께 말씀드린 모양이었다.  어머니도 눈에 일거리 보고 안 할 수는 없고 하자니 몸이 말을 안 듣고 걱정이 되셨는지 알아서 하라고 반승락을 하셨단다.  그러면서 할 일이 별로 없겠다고 하신다.  그 얘기를 듣는 순간 나도 한시름 놓았다는 생각이 드는 반면 어딘지 모르게 허전했다.  추석의 느낌이 반감되었다고나 할까.  비록 손이 모자라 조카들에게 송편 열심히 빚는 사람 상 준다고 하기도 하고 성화도 하면서 했지만 막상 안 한하고 생각하니 무어라 말할 수 없이 허탈한 느낌이 들었다.  두레상을 거실에 펴 놓고 가족들이 둘러앉아 누가 빚은 것이 더 예쁜가, 어떻게 만들면 모양이 잘 나오나 이야기를 하면서 송편 빚던 일도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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