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듣고, 느끼고...

도마뱀

솔뫼들 2006. 4. 28.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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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들으면 징그러운 파충류가 떠오르는데 영화를 보고 난 후에는 그 속에 담긴 아픈 사연에 가슴이 찡 하다.

 

 예쁜 영화,

아름다운 영화,

슬픈 영화,

애절한 영화,

절절한 영화,

그러면서 따뜻한 영화,

다시 보고 싶은 영화...

 

 영화를 보고 나왔을 때 친구와 나는 얼굴에 잔뜩 얼룩이 져서 화장실을 찾아야만 했다. 한 사람은 사랑한다고 끊임없이 말하고, 다른 한 사람은 미안하다고 끊임없이 말할 수밖에 없는 영화 속 현실이 야속하고 미웠다.

 

 주인공은 차조강과 이아리.

암자에 사는 아리가 시골 초등학교로 전학을 오면서 이야기는 전개된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아리는 해가 쨍쨍한 날에도 노란 우비를 입고 도마뱀을 수호신처럼 가지고 다닌다. 그리고 자기는 저주 받은 아이라 자기를 건드리면 꼭 화가 닥친다고 말한다. 실제로 담임 선생님이 아리를 건드렸다가 자전거를 탄 채 도랑에 처박히기도 하고...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하는 아리와 그것을 믿어주는 짝 조강이는 함께 다니다 정이 드는데 도망간 도마뱀을 찾아주려다 비를 맞고는 조강이가 병이 나고 아리는 한동안 사라진다. 그 후 이사를 가면서 조강이는 그 도마뱀 대신 나무로 도마뱀을 깎아 선물로 준다.

 

 그 후 시간이 흘러 고등학교 2학년이 된 조강이가 여름방학을 맞아 암자에 놀러오고, 아리가 먹고 싶다는 초밥을 위해 밤에 달려가 자기 아버지에게 사정을 해서 분위기있는 숲에 차려 놓은 채 화살표로 유도하는 장면에서는 예쁜 그들의 순수한 사랑에 가슴이 저리기까지 했다.

 

 다시 10년 후 조강이는 아리가 원하는 은행원이 되었는데 아리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찾을 수가 없다. 열병을 앓는 조강이에게 어느 날 아리가 찾아와서는 자기가 다음날 미국에 간다고 하는데...

 

 그러다가 병원에서 자기가 깎아준 도마뱀으로 인해 우연히 아리를 만나게 되고 암자를 찾아가 아리의 삼촌인 스님에게 아리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전형적인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못 하지만 아리는 에이즈 환자였다. 부모님과 차를 타고 가다가 사고를 당해 부모님은 세상을 뜨고 자신만 남았는데 수혈과정에서 에이즈에 감염되었다는 사실. 그제서야 아리가 어려서부터 감염을 피하기 위해 노란 우비를 입고 다니고 다른 사람의 접근을 피하기 위해 도마뱀을 몸에 지니고 다녔다는 사실이 이해가 된다.  그 사실을 알고  어린 마음에 얼마나 외롭고 두렵고 고통스러웠을까? 수시로 사라진 것도 병원에 가기 위해서였던 것을. 자신의 뜻 또는 노력 내지 잘못과는 상관없는 일들이 현실에서도 자주 일어나지만 어린아이에게 일어나는 일은 정말 몇 배로 가슴이 아프다.

 

 생전 처음이자 마지막인 아리의 사진전 제목은 '짝'.  아리 사진 옆 사진액자가 비어 있는데 그곳을 채울 사람은 바로 차조강. 정말 어울리는 한 쌍이다. 그 후 아리는 다시 병원에 들어가고  외계인이라 우주선을 타고 갈 것이라는 아리의 말에 조강이는 사진 작업장 근처에 우주선이 뜰 장소를 만든다. 그리고 아리를 기다린다. 마지막 아리와 꼬마전구 반짝이는 그곳에서 서로를 애타게 찾으면서  "사랑해.", "미안해." 를 연속하는 장면에서는 그만 눈물없이 볼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불빛이 사그러들 때 아리의 죽음을 예고하는 것 같은데...

 

 아리는 그렇게 사라지고 조강이는 아리를 그리며 '아리 조강'이라는 일식집을 운영한다. 그리고는  아리의 예약석을 마련해 놓고 올 수 없는 아리를 한없이 기다린다.

 

 실제로 연인 관계로 알려진 조승우와 강혜정이 열연한 이 영화를 보며 그런 사랑을 할 수 있다면 지금 죽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이 영화가 더욱 애틋한 사랑을 키워가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눈이 오는 마지막 장면에서 조강이 아리의 노란 우비와 하얀 거짓말을 떠올리며 그래도 행복하다고 하는 장면은 사랑이 꼭 곁에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고 가슴에 묻어두고 키워 나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얘기하는 듯하다. '조강'이라는 이름에서 '조강지처'의 조강을 떠올렸다면 지나친 억측일까? 슬프고 아름다운 사랑 얘기를 들으며 나도 더불어 순수해지는 느낌을 맛본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