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듣고, 느끼고...

사간동, 인사동 그리고 관훈동까지(3)

솔뫼들 2006. 4. 5. 14:34
728x90

 

 학고재는 일단 믿을만한 전시를 기획하고 좋은 책을 펴 낸다는 나름대로의 생각이 내게 자리잡고 있다. 이번에 학고재에서 하는 전시는 제주 출신의 화가 강요배의 '땅 위에 스민 시간'이다. 지금도 제주도에서 제주도의 자연과 제주도 사람들의 삶을 화폭에 담고 있는 화가는 지금까지 역사성 있는 화가로 인식되었다. 그 이유는 제주 4.3 사건을 화폭에 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소 부드럽고 몽환적인 느낌의 대작을 선보였다.

 

 화랑에 들어가기 전에 친구는 화가의 이름이 특이하다고 했다. 특별한 이름을 가진 사람이 많으므로 나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이 이름에는 사연이 있다고 한다. 4.3사건을 겪으면서 同名異人이 아무 죄도 없이 목숨을 잃는 것을 수없이 목격한 부친이 이름을 특이하게 지어 다른 사람과 구별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형은 '강거배', 그는 '강요배'라고 지었다나. 이름에도 슬픈 우리의 역사가 배어 있는 것이다.

 

 일단 그의 작품은 컸다. 그리고 원색이 극히 드물고 파스텔톤의 색을 많이 썼다. 내 키보다 더 큰 작품 앞에 서서 그림을 보면서 '어떻게 이 그림을 그렸을까? 이 그림을 그리는데 얼마나 걸렸을까?  마음이 내킬 때 열정적으로 한꺼번에 작품을 할까, 아니면 차근차근 밑그림 그리고 색을 칠하고 하면서 차분하게 할까?' 모든 것이 궁금했다.  그의 작품은 아주 잘 팔린다고 한다.  이렇게 큰 작품은 사서 어디에 걸까? 아마도 큰 건물의 로비나 걸리거나 대형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지 않을까 싶지만 나는 엄두도 내지 못 하면서 온갖 생각을 다 했다.  

 

 이번 전시에 나온 작품들은 구상이면서 추상의 느낌을 들게 만든다. 주로 하늘과 바다가 그의 작품 속 소재이다. 하늘과 바다는 제주에서 그가 접하는 모든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늘색인지 아니면 바다색인지 구별할 수 없는 몽환적인 색채의 그림 앞에 서 있으면 내가 한없이 둥둥 떠다닐 것 같기도 하고, 그대로 그림 속으로 빨려들어갈 것 같기도 하다. 달이 뜬 밤하늘을 표현한 작품 속에서는 회오리치는 별들이 전 우주를 표현하는 것은 아니었는지...

 나무를 가장자리에 묵직하게 그려 놓고 나머지 공간을 비워 놓았는데도 그림이 꽉 차게 느껴지는 것은 무슨 조화일까? 몇 개의 선만으로 나뭇가지를 표현하고 그것이 전체 공간을 채우도록 하는 구도를 보며 사물을 ,그리고 자연을 보는 화가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어쩌면 화가의 마음이 그곳을 채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눈에는 보이지 않는 사람이 그곳을 채우고 있지는 않을까?

그림 속에 사람이 거의 없다는 표현에 화가는 자신의 화두는 늘 사람이라고 했다던가. '바닷가 아이들'에서 유일하게 사람이 등장하는데 해변에서 아이들이 노는 그림이었다. 그림 속의 아이들은 천진난만해서 금방이라도 까르르 해맑은 웃음 소리가 들려올 것만 같다.

 

 감자나 무를 그린 그림을 빼면 대다수가 모호한 추상과 구상의 중간쯤 되는 작품이다. 그런 작품을 볼 때면 작품을 보기 전에 제목을 보지 말고 스스로 작품을 통해 화가가 표현하려고 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한다.  작품 제목이 내가 생각한 것에 부합하는 것도 있고 전혀 엉뚱한 것도 있었다. 어떠하든 작품을 보면서 생각하고 머리 속에 그려보는 과정 자체가 그림을 이해하고 가까이 다가가는 몸짓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림 속에 파묻혀 행복하게 하루를 보내면서 친구는 아무래도 갑자기 너무 많은 그림을 보아서 체하지(?) 않을까 걱정을 한다. 넉넉하고 때로는 오밀조밀하게,  풍성하게 채워진 화폭만큼 내 삶도 그 넓이와 깊이가 확장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