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오랜만에 그림을 보러 나갔다. 신문에 몇 번 소개된 천경자 화백 전시회, 노화랑의 기획전, 그리고 학고재의 강요배 작품전을 한꺼번에 다 보면 좋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품고서.
오늘은 친구가 동행했다. 옆에 짝꿍이 있으니 좋다. 혼자서 식당에 들어가 밥을 먹지 않아도 되므로. 가끔 혼자 다니는 나를 보고 친구들은 말한다. 자기에게 왜 연락하지 않았느냐고. 하지만 전시회에 가자고 연락을 하면 거리가 너무 멀다느니, 시간이 없다느니 하고, 함께 가더라도 전시회에 가서 그림은 안 보고 쓸데없는 이야기만 한다. 나는 진짜 그림을 보고 함께 얘기할 수 있는 동행이 아쉽다. 주위에 그런 친구가 많았으면 좋겠다.
첫번째로 '갤러리 현대'에서 하는 '내 생애 아름다운 82페이지'를 감상하러 사간동으로 발길을 옮겼다. 올해 82살이 되신, 현대 미술사에 뚜렷한 足跡 을 남긴 천경자 화백의 작품전이다. 천화백은 자신의 작품 僞作 논란 이후 미국 장녀에게 가서 몸을 의탁하고 있다. 충격이 아주 심했다고 한다. 나는 그런 일련의 사태를 보면서 의아한 것이 있다. 아무렴, 화가가 자기의 분신, 아니면 자식 같은 자신의 작품을 몰라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 말이다. 다행히 진위가 가려졌지만 우리의 미술계 풍토를 보는 것 같아서 씁쓸했다.
이번 전시회에는 미공개작과 미완성작 그리고 소장품 등이 다양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20대 때부터 그림을 보러 다녔던가. 그 때는 그저 강렬한 색채에 꽃과 여인을 주로 그리는 화가, 게다가 얼굴에서 강한 인상이 묻어나는 화가라는 인식을 단순히 했다. 그런데 작품을 보고 조금씩 알게 되면서 그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1974년 그녀는 가르치던 일을 그만두고 아프리카로 여행을 떠난다. 아프리카에서 원색적인 자연, 그리고 광활한 자연에서 그녀는 무엇을 얻었을까? 아프리카, 베트남, 하와이 등지를 여행하면서 그린 작품들을 보면 강렬함이 묻어난다. 그런데 거기에 나오는 대부분의 여인 모습에 화가의 얼굴이 겹쳐지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화려한 색채로 표현되었으면서도 작품 속 인물들은 한결 같이 깊은 슬픔을 간직하고 있는 듯이 느껴진다. 자신의 파란만장한 삶이 반영되었다고나 할까?
지하층에서 1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참 벽에 이어져 있는 띠글씨가 눈길을 끈다. 자신은 별나라에서 온 소녀이고 싶었다던가. 자신이 과거를 살 수 있게 한 것은 꿈, 사랑, 모정이었다는 표현에서는 어떤 절절함이 배어 나온다. 확고하게 자신의 세계를 구축한 작가에게서 느껴지는 자신만만함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그들의 삶이 작품 속에 녹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 미완성작이라고 되어 있는 작품들조차 내게는 완성작으로 보인다. 붓질 하나하나, 드로잉 선 하나하나를 보면서 이렇게 세세하고 꼼꼼한 관찰과 묘사가 진정 작품의 기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지금까지 정신이 들면 스케치를 한다는 노대가의 면모에 찬사를 보내며 자신의 작품을 소장가에게 사서까지 기증하는 모습에도 하염없는 존경의 염을 갖게 된다.
두지헌 화랑으로도 이어진다는데 그만 그 부분을 놓쳤다. 이런 덜렁거림이라니... 그래도 이 정도를 보았다는 것만으로 오늘은 충분히 만족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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