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는 대중예술이 아니다. 아니 어쩌면 앞으로도 대중이 쉽게 접할 것 같지 않은 예술이다. 사실 나도 발레에 대한 특별한 안목은 없다. 10여 년 전부터 우연한 기회에 보기 시작해서 무대의 화려함이나 발레리나의 기술 등을 보며 감탄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나는 기회가 된다면 어떤 예술 장르이든지 가리지 않고 접하려고 노력한다. 자꾸 보고 듣다 보면 귀도 트이고, 눈도 뜨이지 않을까 하고.
이번에 본 발레는 고전 발레의 정수인 '잠자는 숲 속의 미녀'라는 작품이었다. 크리스마스에 단골로 공연되는 '호두까기 인형', 그리고 '백조의 호수'와 더불어 차이코프스키의 3대 발레로 꼽힌다고 한다. 발레는 이탈리아에서 탄생되어 러시아에서 꽃을 피웠으니 음악과 더불어 러시아는 예술의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품은 3막으로 되어 있는데 1막은 오로라 공주의 탄생을 서막에서 알리고 16번째 생일을 성대하게 치르는데 실수로 마녀에게 알리지 않아 마녀의 저주를 받는다는 내용이다. 마녀의 저주를 받은 오로라 공주는 100년 동안 잠에서 깨어나지 않는다.
2막은 긴 잠에 들어 있는 궁궐에 라일락 요정의 안내를 받아 사냥을 하던 데지레 왕자가 오게 되고, 잠에 든 공주를 발견하곤 공주에게 입을 맞추어 저주에서 깨어나게 한다는 내용이다.
3막은 데지레 왕자와 더불어 성대한 파티를 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 나라 발레계는 국립 발레단과 유니버설 발레단이 양분하고 있다. 이번 작품은 유니버설 발레단의 작품인데 우리 나라에서 몇 년 전 난이도 높은 이 작품을 초연한 후 외국에까지 나가 호평을 받았다고 한다.
요즘 우리 나라에 발레를 하는 사람이 많이 늘었고, 기량이 많이 향상되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수준급 발레리나가 부족한지 외국인이 많이 눈에 띄었다. 몇 년 전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하기는 발레계 뿐만 아니라 클래식 음악 분야에서도 외국인 연주자는 급증했으니 이것도 세계화의 영향이라고 보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하나 느낀점은 우리 나라 발레리나의 신체적 조건이 많이 좋아졌다는 것이다. 전에 어떤 친구는 짧은 다리로 아무리 해도 한계가 있어서 보기에 민망하다고 하더니만 이제 그런 느낌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다. 서양인과 동등한 신체조건으로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발휘하는 모습이 보기에 아주 좋았다. 정말 많이 발전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세계적인 발레단에서 활약하는 발레리나도 많이 배출했으니 우리는 이제 모름지기 문화적으로 선진국가의 문턱에 도달했는가?
그리고 중요한 것은 관객의 다양성이다. 소극장 연극을 보러 가면 관객이 정해져 있다는 느낌이 든다. 주로 여성이고 연령층도 비슷하다. 그러나 이번 공연에서는 유치원 어린이부터 노년층까지 다양한 계층이 발레를 즐기고 있었다. 물론 어린아이들은 발레를 배우는 아이들일테고 직접 보는 것이 큰 도움이 되기에 부모들이 데리고 왔을 것이다. 성인층은 스스로 선택한 것이라면 그것만으로도 이제 어느 정도 문화를 향유하는 계층이 늘어났다는 말이 될 것이다. 게다가 다른 공연 예술 장르와 달리 남성들도 많이 눈에 띄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공연 문화이다. 전에 LG아트홀에서 뮤지컬을 볼 때 5분쯤 늦었나 싶은데 들여보내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그 때는 조금 서운했지만 생각해 보니 그런 문화가 정착되어야 한다. 그 공연장은 그렇다고 소문이 나서 늦는 사람도 드물고, 지금도 절대로 공연 시작 후에는 관객을 입장시키지 않는다고 한다. 공연 시작 후 자리를 찾아 불빛을 들이대며 왔다갔다 하는 것은 다른 관객에게 엄청난 피해이다. 그리고 가끔 아이들이 공연중 일어난다거나 아무 때나 박수를 쳐서 분위기를 맞추지 못 하는 것도 거슬렸다. 제대로 된 공연 문화의 정착이 아쉽다.
오랜만에 눈이 호사를 해서 기분 좋은 하루였다. 황사를 뚫고 나갔다 온 보람이 있을 만큼.
'보고, 듣고, 느끼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연극 '상 당한 가족'을 보고 (0) | 2006.05.02 |
---|---|
도마뱀 (0) | 2006.04.28 |
사간동, 인사동 그리고 관훈동까지(3) (0) | 2006.04.05 |
사간동, 인사동 그리고 관훈동까지(2) (0) | 2006.04.04 |
사간동, 인사동 그리고 관훈동까지 (1) (0) | 2006.04.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