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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산행기

야쿠시마 트레킹 5 - 조몬스기 & 윌슨 그루터기 (1)

by 솔뫼들 2025. 10.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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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 3시 40분, 짐을 챙겨 로비로 나왔다.

바깥은 동틀 기미도 없이 깜깜하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깜깜한 시간에 움직인다.

정말 내가 좋아하지 않는 일이면 절대로 못 할 일이겠지.

 

 지금 가장 궁금한 건  조몬스기 트레킹을 하는 동안의 날씨이다.

비상시를 대비해 우산은 물론 우비와 방수바지까지 꼼꼼하게 배낭에 챙기기는 했다.

웰리 매니저에 따르면 야쿠시마에 우천 예보는 없다고 하는데  산악 날씨는 예측할 수가 없지.

제주도 한라산이나 중산간도 그렇지 않은가.

 

  일행이 모두 모여 바로 차에 오른다.

야쿠스기 자연관에서 셔틀버스를 이용해 아라카와 입구까지 가야 한단다.

1시간 간격으로 다니는 셔틀버스 첫차를 타기 위해 이렇게 서두르는 것이다.

아라카와 입구에서 조몬스기까지 거리도 멀고, 시간도 오래 걸리니 가능하면 일찍 출발하는 것이 좋기는 하겠지.

 

 

 야쿠스기 자연관에 도착해 산림보호기금으로 1000엔과 왕복 버스비 2000엔을 내고 줄을 선다.

여기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아침을 먹으라고 한다.

주먹밥과 장아찌로 이루어진 도시락을 열었는데 시간이 일러서인지 밥이 넘어가지 않는다.

오늘 일정이 에너지를 많이 필요로 하지만 억지로 먹으면 탈이 날 수 있으니 그만 넣어 두자.

 

 아침밥을 먹고 조금 기다려 오전 5시 첫 버스를 탄다.

30분 정도 구불구불한 산길을 올라 아라카와 트레일 입구에 도착했다.

오늘 우리가 걸을 거리는 23km이다.

거리는 길지만 삼림 철도로 이루어진 길이 왕복 16km 정도 되니 지구력이 있고 어느 정도 체력이 뒷받침되면 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한다.

 

 최근 체력이 떨어져 있는 스스로에게 최면을 건다.

'넌 할 수 있어.'

사실 힘든 산행 일정을 소화하다 보면 체력도 중요하지만 정신력이 반 이상 차지한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껏 그래왔으니 오늘도 잘 해낼 거야.

 

 오전 5시 45분, 운전기사이자 일본인 가이드를 선두로 산길로 들어선다.

가능하면 철로를 벗어나지 말라는 주의를 듣고 앞사람 뒤를 따라 걷는다.

사진 한 장 찍다 보면 일행은 금방 눈앞에서 사라진다.

그러면 마음이 좀 바빠지기는 하지.

 

 

 가다가 밑동을 남기고 잘려 나간 삼나무 앞에 섰다.

이런 나무들이 에도시대 잘린 나무들이라고 한다.

에도시대, 그러니까 16C경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을 통일하고 교토에 사찰을 짓기 위해 수천년씩 자란 야쿠시마 삼나무를 베어냈다고 한다.

그 이후 잘 썩지 않는 삼나무의 특성 때문에 고급 주택 지붕 재료로 쓰이면서 대량의 벌목이 이루어졌고.

그때 삼나무를 베어 실어나르던 철로 위를 우리가 지금 걷고 있는 것이다.

 

 삼림 철도 생각을 하니 오래 전 다녀온 삼척과 울진에 걸쳐 있는 응봉산 생각이 난다.

응봉산은 매우 오지에 있는 산인데 덕풍계곡과 용소 주변에 녹슨 철로가 있는 걸 보았다.

어떤 이유로 여기 철로가 있을까 궁금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일제강점기 금강송을 베어내 반출하려는목적으로 일본이 만든 철로였다고 한다.

얼마나 많은 금강송들이 베어졌을까?

얼마나 오래된 나무들이었을까?

그 지역은 조선시대  封山으로 지정해 관리하던 곳이었는데 말이다.

오늘 일본에서 삼림철도 위를 걸으며 새삼스럽게 씁쓸하다.

 

 

 하늘이 환하게 밝아온다.

이제 해가 떴다.

햇살이 비치는 야쿠시마를 사진에 담고 싶은데 시간에 쫓기는군.

다들 왜 그리 바쁜지...

 

 다리를 건너자 오른편으로 너른 공간이 보인다.

오래된 학교 운동장 같아 보이는 곳이다.

예전에 마을이 있던 곳이라고 한다.

 

 목재 반출을 위해 만들었다는 오스기야 이시즈카 마을에 1960년에는 500명이 넘게 살았다고 한다.

이 산중에 우체국, 상점, 초등학교와 중학교까지 있었단다.

지금은 마을이 있었다는 흔적만 남아 있다.

나는 마을 입구 시멘트 기둥에 자리를 잡은 콩짜개덩굴에 카메라를 갖다 댄다.

 

 

 여기도 곳곳에 이끼가 제세상이다.

일본에 서식하는 이끼가 1600종쯤 된다고 하는데 야쿠시마에 600종 이상 산단다.

어제 시라타니 운수협곡 이끼도 장관이었는데 오늘 만나는 이끼도 눈길을 잡아끌기에 부족함이 없다.

 

 다시 걸음을 재촉한다.

똑같은 길을 걸으려니 좀 지루한 느낌이 든다.

평지와 다름 없다고 해도 바닥에 깔린 이끼와 물기 때문에 미끄러질까 좀 신경이 쓰이기도 하고.

 

 가는 동안 날벌레가 한 마리도 달려들지 않는다.

벌레퇴치제를 가져오지 않아 습한 날끼에 벌레와 싸움을 해야 하나 고민을 했는데 기우였다.

날벌레들도 먹을 것이 있어야 하는데 이곳 환경이 그렇지 못해 벌레가 거의 없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새 한 마리 보이지 않고, 새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벌레가 없으니 벌레를 잡아먹고 사는 새도 없다는 소리에 고개를 주억거리게 된다.

 

 가이드가 선두에서 잠시 멈춰 섰다.

길가에 있는 작은 삼나무를 가리키며 26년 되었다고 한다.

내 손으로 두 뼘쯤 되는 나무인데 26년이나 되었다고?

20년 전 자신이 가이드를 시작하고 난 후 매년 보는데 거의 변함이 없다고 한다.

그만큼 야쿠시마에서는 삼나무가 척박한 환경 때문에 천천히 자란다는 말이겠지.

놀랍기는 하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야쿠스기'라고 부르는 삼나무는 樹齡이 천년 이상 된 나무라고 한다.

그보다 작은 나무는 '고스기'라고 부른다고 하네.

이 신령스러운 숲에서 나는 저절로 미미한 존재가 되는 경험을 한다.

야쿠스기가 즐비한 곳에서 수십 년 인생이 가볍고 우습게 여겨진다고나 할까.

 

 

 트레킹을 시작한 지 1시간 30분쯤 지나 식수를 보충하고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는 곳에서 제대로 쉰다.

중간에 이런 곳이 있으니 숙소에서 무겁게 물을 갖고 올 필요가 없었다.

사실 이 물이 우리가 사 먹는 생수보다 더 좋은 물일 것이다.

산꾼들은 보통 '산삼 썩은 물'이라거나 '보약'이라고 하곤 한다.

 

 나무 사이로 햇볕이 거의 들어오지 않지만 하늘은 맑다.

야쿠시마가 아열대기후이기는 하지만 9월 하순이고 해발고도가 높을테니 긴 팔 셔츠를 준비했는데 생각보다 덥다.

긴팔 셔츠를 준비한 게 실수였네.

어제도 땀을 많이 흘렸는데 오늘도 역시 땀 범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