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길로 들어선다.
나무 사이로 내려온 햇살 조각들이 반짝이며 내 얼굴을 간질이는 길이다.
초입이라 그런지 여기는 활엽수와 침엽수가 혼재되어 있다.
그런데도 사이좋게 잘 살고 있고.
가다가 가이드의 발길이 멈추었다.
커다란 안내석이 서 있는 곳이다.
1993년 야쿠시마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가 되었다.
그런데 에도시대 사람들이 삼나무를 베어낸 곳을 제외하고 세계자연유산에 등재가 되었다고 한다.
안내판의 지도를 보니 가운데 부분만 분홍색으로 표시가 되어 있다.
인간에 의해 훼손된 곳은 세계자연유산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말이겠지.

걷는 동안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삼나무도 만난다.
이런 나무들은 조림을 한 것이라고 한다.
자생하는 나무들은 제멋대로 자라는 모양이지.
우리나라에 있는 삼나무들도 대부분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 있다.
다시 발길을 옮긴다.
가다 보면 부부삼나무, 인왕삼나무, 대왕삼나무 등등 이름을 붙여 놓았다.
어제 시라타니 운수협곡에서 '사슴의 집'이나 '구구리스기' 등을 붙여 놓았던 것처럼.
2013년 야쿠시마 세계자연유산 지정 20주년을 기념해 야쿠스기 이름 공모를 했다고 한다.
거기에서 당선된 이름들이 야쿠스기에 붙여졌단다.

드디어 철로가 끝났다.
잠시 쉬면서 물도 보충하고 간식도 먹는다.
여기가 마지막 화장실이라고 한다.
그런데 땀을 많이 흘려서인지 아무 생각이 없다.
잠시 앉아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가이드가 우리를 보고는 한국에 못 갈 수도 있단다.
인천공항에서 파업을 해서 공항이 마비가 되었다고 하네.
우리보다 우리나라 소식을 더 잘 알고 있다.
나는 일단 여행을 오면 한국 뉴스를 거의 안 본다.
국내에 있을 때처럼 온갖 소식을 다 들을 거라면 뭐하러 여행을 오겠는가.
현실에서 벗어나 온전히 자신과 자연에 집중할 수있는 시간을 갖기 위해 트레킹 여행을 오는데 시시콜콜 국내 뉴스를 보고 있을 이유가 있나 싶다.
그 이야기를 듣고 누군가 스마트폰을 살펴보더니 인천공항 파업 사태는 추석 연휴로 일단 미루어졌단다.
추석 연휴에 공항 이용객이 많을테니 파업을 하면 효과가 크겠지.
몸을 일으켠다
이제부터 진짜 산길이다.
초반에는 가파른 계단길이 기다리고 있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헉헉거리며 산길을 올라간다.
이제야 제대로 산행을 하는 맛이 난다.
길은 좁다.
내려오는 사람이 있으면 서서 기다려 주어야 한다.
숲을 보호하기 위해 길을 넓히지 않은 것이리라.
얼마쯤 올랐을까?
가이드가 잠시 멈춰서더니 정해진 길이 아닌 샛길로 들어선다.
그 길로 가면 10분이 단축된단다.
일본 가이드도 그런 꼼수를 쓰는구나.
윌슨 그루터기를 만났다.
윌슨 그루터기라는 이름은 영국 식물학자인 어네스트 헨리 윌슨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야쿠시마를 세계에 알린 공이 인정을 받았다고 하네.
윌슨 그루터기도 에도시대에 오사카성을 짓기 위해 베어진 나무라고 한다.

( 야쿠시마행 비행기에서 받은 엽서 )
윌슨 그루터기는 워낙 커서 여러 명이 들어가 앉을 수 있을 정도이다.
그런데 윌슨 그루터기가 유명해진 건 다른 이유이다.
윌슨 그루터기 안에 들어가서 보면 바깥이 하트 모양으로 보인다.
야쿠시마를 대표하는 사진으로 야쿠시마 오는 비행기에서 준 엽서에도 이 사진이 있었지.
윌슨 그루터기에는 평소에 사진을 찍기 힘들 정도로 사람들이 많다는데 오늘은 여유있게 돌아가며 사진을 찍고 단체 사진까지 찍었다.
산길에도 줄을 선다는데 오는 동안 그런 일도 없었고.
우리가 새벽 첫차를 이용해 그런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어찌 되었든 덕분에 편안한 트레킹을 즐기고 있다.
가다가 나무 사이로 높은 봉우리가 눈에 들어왔다.
토끼 이빨처럼 두 개의 바위(?)가 솟아 있다.
저기가 해발 1900m 넘는다는 야쿠시마 최고봉인 미야노우라다케인가?
나무가 우거져 터널을 이루는 길을 걷다가 만난 조망이 시원스러워 눈을 크게 떠 본다.
이제 조몬스기를 향해서 걷는데 하늘이 무거워지기 시작한다.
여태까지 잘 참아 주었다는 듯이.
금세 비가 뿌릴 듯한 산길을 힘주어 올라간다.
오전 10시, 드디어 조몬스기에 도착했다.
7000년이라는 세월을 살아낸 나무라니...
경이롭다 못해 존경스럽다.

어제에 이어 오늘 야쿠시마 트레킹을 하는 내내 야쿠시마는 신들이 사는 숲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네팔 에베레스트와 안나푸르나, 필리핀의 아리얏산, 말레이시아의 키나발루, 타이완의 설산 등 열대와 아열대 지역 산악 트레킹을 해 보았지만 이곳처럼 신령스럽다는 느낌을 받은 적은 없다.
조몬스기는 신의 다른 이름 아닐까.
나무는 제 몸에 세월을 쌓는다
늙은 나무 아래에 서면
그걸 볼 수 있지
허공 뻗어나가는 가지 밑자리
여기 저기에 스스로 썩으면서
그는 미리 상처를 만들어 놓는다
자기 몸 허물어
먼 길 가는 영혼을 위해 아궁이를
놓아 둔다 젖은 눈빛
그걸 들여다보는 것은
生의 욕망을 내려두는 일이다
몸의 아궁이는 돌아가야 할 門
이종암의 < 노거수 > 전문
가이드는 번갈아가며 기념사진을 찍어준다.
그런데 어떻게 사진을 찍어도 조몬스기는 사진에 다 담기지 않는다.
7000년 넘는 세월을 살아낸 나무를 사진 한 컷에 담으려는 것 자체가 욕심일지도 모르지.
조몬스기를 직접 보며 영접하는 것으로 만족해야겠다.
가이드 말에 따르면 예전에는 조몬스기를 직접 만져보며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사람들의 손을 타면서 나무가 피해를 입어 꽤 넓게 울타리를 쳐 놓았다.
조몬스기 보호를 위해 잘한 조치라는 생각이 든다.
4시간 좀 넘게 걸었을 뿐인데도 너무 지쳤다.
이틀 연속 잠을 제대로 못 잔 영향도 있을 것이다.
가이드가 전망대에 가서 보면 조몬스기의 또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고 알려준다.
그런데 다들 더 이상 걷기 싫다는 듯 데크에 주저앉았다.
그래도 잠깐 쉬고 나니 욕심이 생긴다.
내가 여기 다시 올 일은 없을테니 힘을 내 보자.
데크로 만든 계단길을 올라가면 조몬스기의 옆 모습을 볼 수 있다.
정말 장관이다.
어떻게 저런 가지를 달고 장대한 세월 늠름하게 버틸 수 있을까?
고개를 갸웃거리며 셔터를 누른다.

조금 쉬었다가 정자가 있다는 위쪽으로 올라갔다.
점심을 먹을 시간이다.
모두 의자에 앉아 도시락을 꺼낸다.
아침에 이어 주먹밥을 보고 답답해 하는데 종이컵에 무언가 전달된다.
알고 보니 가이드가 커다란 코펠에 물을 가득 받아가더니만 그 물로 미소 된장국을 끓여 놓았다.
맛은 차치하고 감동이다.
배가 고픈데도 주먹밥이 잘 들어가지 않는다.
아침에 이어 점심에도 밥을 남겼다.
몹시 짜기는 하지만 그래도 된장 국물을 마시니 좀 살 만하다.
오늘은 준비해온 양갱과 사탕으로 열량을 보충하며 하루 버티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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