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주차장에 도착했다.
주차장에 내리니 세계 각국에서 온 트레커들로 붐빈다.
우리는 현지 가이드와 인사를 나누고 트레킹 준비를 한다.
현지 가이드 두 명은 환영한다는 의미로 초콜릿을 하나씩 주네.
인상도 좋고, 인심도 좋구만.
쉐락 볼튼은 절벽 사이에 낀 바위가 명물인 뤼세피오르의 대표 등산코스이다.
피오르는 빙하로 만들어진 좁고 깊은 만을 말한다.
옛날 빙하기 당시 빙하의 침식 장용으로 생긴 U자 모양 골짜기에 빙하기 이후 빙하가 녹아 해안선이 상승하면서 바닷물이 유입되어 생성된 것이다.
피오르가 형성될 때 해수면이 침식 기준면으로 작용하지 못하였으므로 해수면보다 깊이가 깊은 피오르도 있다.
유럽의 노르웨이 해안, 남미 칠레 남부의 해안, 그린란드 해안 등이 유명하다.(위키피디아 참고)

쉐락 볼튼 등산로는 온통 돌로 이루어져 있으니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을 해야 한다.
접지력이 좋은 등산화를 준비하라는 안내를 받았었지.
정상에 도착할 때까지 급경사 오르막길이 세 번 나온단다.
중간에 오두막이 있으니 거기에서 쉬었다 가라고 하는군.
일행이 함께 단체사진을 찍고 오전 11시 10분, 드디어 첫 발을 뗀다.
오늘 걸을 거리는 총 11km로 6~7시간 걸린다고 했다.
난이도가 꽤 높다는 말이다.
속도와 컨디션을 잘 조절해야 하리라.

초반부터 무지막지한 바윗길에 만들어진 계단이 우리를 맞는다.
긴장해야겠는걸.
경사도 만만치는 않다.
크게 숨을 들이쉬고 친구 뒤를 따라 올라간다.
사실 산을 오르면서 늘 느끼는 건 마음가짐이 많은 걸 좌우한다는 것이다.
지난 봄 북한산에 오르면서 절절 매다가 쉬운 길을 찾아 우회했는데 초여름에 설악산 대청봉은 당일치기로 무사히 잘 넘었다.
그런 이야기를 했더니 설악산에 함께 가고 싶어하던 한 친구가 북한산에서 힘들어하던 사람이 설악산은 어떻게 갔느냐고 한다.
모르기는 해도 의지와 마음자세가 다르겠지.
반 이상은 정신자세에 달리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앞만 보고 올라가다가 뒤를 돌아본다.
주차장과 막 산행을 시작한 사람들이 개미만하게 보인다.
벌써 꽤 올라왔군.
오늘 보니 노르웨이에서는 개를 데리고 산에 오는 사람들이 눈에 많이 띈다.
물론 우리나라 같이 작은 애완견이 아니라 덩치가 큰 개들이다.
아파트보다는 단독주택이 많으니 큰 개를 정원에서 키우겠지.
아주 자연스럽게 주인과 산행을 즐기는 개들이 행복해 보이는 건 내 생각일까?
돌로만 이어진 길을 오르면서 여기를 산이라고 부르는 것이 맞을까 생각을 한다.
민둥산도 있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산이라고 하면 나무가 있어야 하는데 나무를 통 볼 수가 없다.
바위 사이에 키를 낮추고 목숨을 이어가는 초본류가 있을 뿐이다.
늘 그렇지만 그런 식물을 보면 생명력에 경의를 표하게 된다.
겨울에 눈이 많이 올 테고, 바람도 거세게 불텐데 그걸 모두 이겨내고 꽃을 피우니 얼마나 강인한가.

얼마쯤 올라갔을까?
이정표가 정확하게 나오니 거리 가늠하기가 쉽다.
그리고 돌에 붉게 'T'자로 등산로를 표시해 놓아 헷갈릴 일이 없다.
사실 돌길은 흙길과 달리 사람이 다닌 흔적 표시가 잘 나지 않아 찾기가 쉽지 않은데 자연물을 이용해 안내를 하고 있군.
공식적인 '트레일' 표시라고 한다.
가는 길에 여기저기 배설물이 보인다.
양과 소의 배설물이다.
그러고 보니 방목하는 양들이 곳곳에서 보이네.
앞서 가던 사람이 풀을 뜯는 양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간다.
친구도 덩달아 양의 머리에 손을 대는데 양이 생각보다 얌전히 있다.
나도 한번 해 보겠다고 손을 대니 양이 고개를 홱 돌려버린다.
왜 나한테만 비싸게 구는 거지?
모델료 안 주고 사진을 찍는다고 화가 났나?

사진도 찍고 풍광도 즐기면서 걷는데 엄청나게 힘들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다만 돌길이라 잘 느끼지는 못 하지만 관절에 가는 충격이 클 거라는 생각은 든다.
돌다리도 건너고, 줄을 잡고 가파른 길을 낑낑 오르기도 하고, 그러다가 땀이 나서 겉옷을 벗어 넣고...
걷다 보니 1시간 10여분만에 오두막에 도착했다.
일행을 기다리며 간식을 먹기로 했다.
몸을 움직이지 않고 있으니 금세 땀이 식으며 한기가 느껴진다.
바람을 피해 오두막 벽에 기대어 앉는다.
체온 조절을 잘 해야겠네.
가이드가 준 초콜릿을 먹으며 에너지를 보충한다.
참, 사과도 있었지.
노르웨이 사과는 그리 크지 않지만 과육이 단단하고 단맛이 강해 맛있다.

일행이 모두 온 다음 가이드와 눈인사를 하고 다시 출발한다.
일행이 단출하니 인원 파악하기도 쉬운 편이다.
여기까지 올 때는 가장 젊은(?) 사람인 '손'이 선두에 왔는데 슬쩍 뒤로 빠져 어쩌다 보니 우리가 선두가 되었다.
길은 외길이니 염려할 건 없고.
여기도 곳곳에 돌탑이 보인다.
돌탑을 보면 왠지 모르게 정감이 간다.
중국 방향에서 백두산 오르는 길에 돌탑이 많은데 한국 사람들이 돌만 보면 탑을 쌓는다고 중국인들이 싫어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런데 뉴질랜드에 보니 많이 알려진 관광지도 아닌데 거기에도 돌탑이 많았다.
이건 한국 사람뿐만 아니라 인류 보편적인 감정 아닐까 싶은 생각이 그때 들었다.
뉴질랜드뿐 아니라 노르웨이까지 한국인들이 와서 돌탑을 쌓았을 리는 만무하니까 말이다.
어찌 되었든 우리나라가 아니니 돌탑 위에 돌 하나 더 얹지는 않고 지나가면서 공연히 마음이 보송보송해진다.
산사에 오르는 길
돌은 바람을 어루만져 흘려보낸다
오가는 이 빌면서 얹어놓은 어린 돌탑
점점 작아진 소원 하나씩
서로의 마음을 떠받치며
위태롭게 쌓여 있다
신기한 일이다
염주 같은 애기 돌탑을
바람은 숨죽여 살며시 피해 간다
이도윤의 < 탑 > 전문

한동안 특별한 볼거리가 없어 앞만 보고 걸었다.
가파른 세번의 오르막길을 진작에 지났다.
우리끼리 번갈아 사진을 찍는데 가이드가 와서 사진을 찍어준단다.
이정표에는 쉐락 볼튼까지 300m 남았다고 되어 있다.
거의 평지나 다름없는 돌길이 이어지고 이제 쉐락 볼튼이 나와야 할 것 같은데 사람들이 앞으로 계속 걷는다.
친구는 우리가 길을 잘못 들었나 보다고 고개를 갸웃 하고, 나는 앞사람들 따라 계속 가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바위에 적힌 'T'자는 여전히 우리에게 따라오라고 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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