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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돌아보고 포르투갈 찍고 (9) - 스페인 론다 누에보 다리, 토로스 투우장

솔뫼들 2024. 6. 12.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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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텔 방은 방음이 안 되니 새소리도 잘 들린다.

새소리를 알람 소리 삼아 눈을 떴다.

그리고 얼른 세수를 한 후 마당에 나가 정원을 천천히 달려 한 바퀴 돈다.

맨손체조도 몇 가지 하고.

몸이 좀 가뿐해진 느낌이다.

 

 

 오늘은 그라나다에서 론다로 이동하는 날이다.

아침을 먹고 버스에 올랐다.

가이드가 절벽 위의 도시 론다에 대해 열심히 이야기를 해 준다.

헤밍웨이가 론다에서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를 집필했다고 한다.

론다에는 헤밍웨이를 기념하는 무언가 있겠네.

 

 또 스페인을 대표하는 경기인 투우가 바로 론다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론다에 있는 토로스 투우장이 스페인에서 가장 오래된 투우장이라고.

투우는 사람과 소가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경기이기 때문에 동물 보호론자들은 반대를 한다.

그래서 투우 경기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여론도 있는 듯하다.

스페인에서도 일부 지역에서는 그런 이유로 투우 경기를 하지 않는단다.

 

 버스는 버스터미널에 우리를 내려 주었다.

개략적인 설명을 듣고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남는 건 사진밖에 없다며 사진 찍히기를 유난히 좋아하는 지야는 벌써 저만치 간다.

나는 해가 갈수록 키도, 눈꺼풀도, 그리고 입꼬리까지 중력의 법칙을 가혹하게 따르는 느낌에 점점 사진 찍는 것이 즐겁지 않은데...

비까지 부슬부슬 내리는 바람에 선득한 느낌이 드는 날이다.

 

 

 누에보 다리로 먼저 간다.

누에보 다리는 '새 다리'라는 뜻이니 처음 만들었을 적에는 당연히 새 다리였겠지.

우리가 분당이나 평촌이 구도시가 되었는데도 신도시라 부르는 것과 같을 것이다.

 

누에보 다리에서 따호강 절벽 시가지를 바라본다.

이런 아찔한 절벽 위에 처음 다리를 만들 생각을 한 사람은 누구일까?

그리고 절벽 위에 마을을 만들어 사람들이 살다니...

 

사람들이 많아 다리 각도를 맞추어 제대로 사진을 찍기 쉽지 않다.

그냥 눈으로 보는 것에 만족하자.

우산 팽개쳐가면서 비를 맞고 사진을 찍을 일은 아니지.

 

 

 이쪽저쪽 바라보다가 다리 위에 섰다.

반대편에는 돌을 이용해 미로처럼 담을 쌓은 마을이 보인다.

절벽으로 떨어지는 걸 막기 위해 근처에 많은 돌을 이용해 안전 시설물을 만든 모양이다.

 

 절벽을 만나거든 그만 절벽이 되라

절벽 아래로 보이는 바다가 되라

절벽 끝에 튼튼하게 뿌리를 뻗은

저 솔가지 끝에 앉은 새들이 되라

절벽을 만나거든 그만 절벽이 되라

기어이 절벽을 기어오르는 저 개미떼가 되라

그 개미떼들이 망망히 바라보는 수평선이 되라

누구나 가슴 속에 하나씩 절벽은 있다

언젠가는 기어이 올라가야 할

언젠가는 기어이 내려와야 할

외로운 절벽이 하나씩 있다

 

          정호승의 < 절벽 > 전문

 

 한쪽에는 절벽 중간쯤 아스라하게 이어진 좁은 길이 보인다.

오르락내리락 경사가 있지만 한번쯤 걸어보고 싶은 길이네.

시간이 넉넉하다면 내려가보고 싶어진다.

헤밍웨이가 이런 길을 걸으며 작품을 구상하지 않았을까?

 

 

 투우장 앞으로 가니 소 동상이 서 있다.

굉장히 체격이 좋고 우람한 소가 투우를 하겠지.

무게가 600kg 이상 되는 소가 투우를 한다던가.

금세라도 날카롭게 솟은 뿔로 누군가 들이받을 것 같은 자세의 소를 바라본다.

소가 이기면 소가 영웅이 되고, 사람이 이기면 사람이 영웅이 되는 경기 투우.

투우장 앞에 서 있어도 나는 투우를 직접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그러고 보니 건너편에는 전설적인 투우사 동상이 서 있다.

무려 79세까지 투우를 했다는 분의 동상이라고 한다.

말만 들어도 얼마나 강인한 분이었을지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동상이 세워질 만하네.

 

 

 절벽 쪽으로 가까이 가니 소담스럽게 핀 왕벚꽃이 비를 맞고 있다.

스페인에서 왕벚꽃을 보니 새삼스럽게 반갑다.

일본이 전해준 것이라고는 하지만 우리네 마을에서 쉬이 볼 수 있는 정겨운 꽃 아닌가.

 

 이번에는 나무 사이로 난 산책길을 따라간다.

가다 보니 전망대가 나왔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전원 풍경이 평온해 보인다.

비를 맞아 더욱 진해진 초록이 구불구불 이어져 있는 자연 경관이다.

어쩌면 가장 자연스러운 농촌 모습 아닐까.

구름 사이로 살짝 고개를 내미는 빛조차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공간이네.

 

 

  아직 시간 여유가 있어 상점을 둘러보기로 했다.

고급스런 모직 제품이 진열된 상점에 들어갔다.

옷이나 모자, 핸드백의 가격이 고급스러움에 비해 그리 비싸지 않았다.

모자를 유독 좋아하는 나는 모자 몇 개 써 보고 맞는 것 하나를 앞에 두고 고민을 한다.

정말 유혹을 느끼기 좋은 모양과 색깔의 모자인데...

물욕을 떨치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군.

 

 미야는 이것저것 살펴보다가 언니 선물로 적당한 것을 고르느라 애를 쓴다.

어머니를 모시고 산다고 언니가 신경을 쓴 것 같은데 여비를 받으면 부담이 되지.

미야가 고른건 100% 모직에 길이가 적당한 숄이다.

그 가격이면 아주 좋은 상품이라고 이구동성으로 추천을 했다.

하지만 일단 다른 곳에서도 구경을 하고 상품을 비교하자면서 상점을 나왔다.

 

 

 

 다른 상점을 둘러보아도 별달리 눈에 띄는 상품이 없다.

미야가 봐둔 숄을 사러 가려고 하니 모이라는 시간이 다 됐네.

아이쿠! 하는 수 없이 모임 장소로 이동한다.

 

 점심을 먹으러 간단다.

골목을 지나 음식점 안으로 들어간다.

1층은 다른 한국 팀이 자리잡고 있어서 우리는 2층으로 올라간다.

음식점 좌석 사이 공간이 좁아서 통행이 쉽지 않다.

 

오늘 점심은 스페인 와서 처음 먹는 소고기 요리이다.

이베리코 돼지고기보다 훨씬 낫다.

그리고 후식으로 나온 추로스가 내 입맛에 맞는다.

우리나라처럼 설탕을 묻히지 않고 시나몬 가루도 넣지 않는다.

바삭하고 담백한 추로스를 잘라 먹으며 즐거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