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형!
초반에는 살짝 오르막길입니다.
아직 목도는 나오지 않습니다.
'오제' 하면 습지 위에 놓인 木道가 먼저 떠오르거든요.
모두들 가볍게 발걸음을 옮깁니다.
대단한 작품 사진을 찍는 것도 아닌데 사진 몇 장 찍고 나면 일행들이 안 보이네요.
다행히 김 PD가 카메라를 들고 뒤처지기도 하고, 순식간에 선두로 치고 나가기도 합니다.
촬영 장비를 들고 왔다갔다 하려면 체력이 좋아야겠군요.
최대표는 그렇다치고, 강선생님도 연세가 있는데 스틱도 없이 잘 걸으십니다.
노부부가 우리보다 연세가 많아 보이니 우리는 걱정할 것 없다고 친구와 이야기를 했는데 두 분이 보기보다 훨씬 고수 같습니다.
오판했습니다.
긴장해야겠는데요.
중간중간 이정표도 나오고, 안내지도판도 보입니다.
어디쯤 왔는지 확인하면서 걸어갑니다.
비교적 평탄한 길이라 속도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됩니다.
숲은 굉장히 울창하군요.
삼나무인지 편백나무인지 하늘을 가릴 정도로 빽빽합니다.
우리는 걸으면서 산림욕을 아주 잘 하고 있는 것이지요.
친구에게 사실 이런 곳에서는 맨 몸을 최대한 노출시켜야 산림욕 효과가 난다고 하면서 웃었습니다.
너는 어떻게 내게 왔던가
오기는 왔던가
마른 흙은 일으키는 빗방울처럼
빗물 고인 웅덩이처럼
젖은 나비 날개의 지분처럼
숲을 향해 너와 나란히 걸었던가
꽃그늘에서 입을 맞추었던가
우리의 열기로 숲은 좀 더 붉어졌던가
그때 너는 들었는지
수천 마리 벌들이 일제히 날개 터는 소리를
그 황홀한 소음을 무어라 불러야 할까
사랑은 소음이라고
네가 웃으며 그렇게 말했던가
정말 그 숲이 있었던가
그런데 웅웅거리던 벌들은 다 어디로 갔지
꽃들은, 너는, 어디에 있지
나는 아직 나에게 돌아오지 못했는데
나희덕의 < 숲에 관한 기억 > 전문
아래쪽은 山竹이 점령을 했군요.
산죽 아래에서는 다른 식물들이 잘 자라지 못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때 산죽을 미워했다는 누군가의 글을 본 적이 있는데 의외로 산죽이 동물들의 서식처 역할을 한다고 해서 마음이 바뀌었다고 했지요.
알고 보면 모든 동식물이 다 존재 가치가 있는 것 아닐까요?
바닥에 목도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가능하면 자연에 손에 대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일본인들이지만 썩어서 자연으로 돌아가는 목도 옆에 새로 목도를 깔고 있더군요.
보행자의 안전과 오제의 자연 보호를 위해서 그것이 최선의 방법이겠지요.
목도를 따라 걸으려니 바닥을 내려다보아야 합니다.
가능하면 흙에 발을 딛지 않으려 노력하는 중이지요.
제 등산화 바닥에 무엇이 묻었을지 모르니까요.
뉴질랜드에 갔을 때 공항에서도 그렇고, 산에 들어가기 전에 등산화를 소독하도록 만들어 놓은 장치를 본 적이 있습니다.
아주 철저하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만큼 뉴질랜드 사람들이 자연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말일 겁니다.
어쩌면 소중하게 보존해야 할 가치가 있는 자연 앞에서는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산페이고개에서 내려서자 1시간 30분만에 오제누마 휴게소에 도착했습니다.
반 넘게 온 셈입니다.
오제누마 호수 앞 나무로 만들어진 의자에 앉아 쉬면서 간식도 먹고, 커피도 마십니다.
어쩌다 보니 가장 마른 제 친구가 보온병 당번이 되었군요.
매번 보온병 무게에 물까지 메고 다녀야 합니다.
평소에 무거운 배낭에 익숙하지 않아 애를 먹는데 말이지요.
한참 쉬다가 다시 배낭을 메었습니다.
여기서부터는오제누마 호수를 따라 걷는 길입니다.
1시간 정도면 충분히 쵸죠산장에 도착하겠군요.
간간이 들꽃이 보입니다.
눈이 사방을 보면서 어떤 꽃이 피었는지 살피느라 바쁩니다.
일단 제 눈을 사로잡은 건 최근 발왕산에서 만났던 투구꽃입니다.
보랏빛 꽃이 아주 기운차 보이는군요.
자연 환경이 들꽃이 살기에 좋다는 말이겠지요.
조금 더 가자 자그마한 흰꽃이 무리지어 있습니다.
앙증맞으면서도 순결해 보여서 그만 넋을 빼앗겼습니다.
무슨 꽃일까요?
이름도 모르면서 그만 반했다고나 할까요?
한여름 싱싱하게 꽃을 피웠을 물파초가 시든 모습도 보입니다.
비록 물파초 흰 꽃을 보지는 못 했어도 사진에서 여러 번 보아서 그런지 넓은 이파리만으로도 본 듯 여겨집니다.
많은 사람들이 물파초를 보러 이 여름 오제를 찾았을 겁니다.
제 친구 한 명도 물파초가 피는 계절에 이곳을 찾고 싶다고 하더군요.
물론 사람들이 몰리는 건 감수해야겠지요.
반면 지금은 한적해서 좋습니다.
곰을 조심하라는 안내문도 보입니다.
워낙 전 세계에 트레킹을 많이 다니셨다는 강선생님 배낭에는 방울이 매달려 있습니다.
걸을 때마다 울리는 방울 소리에 곰이 알아서 피하라는 경고이지요.
오래 전 홋카이도 요테이 국립공원에 갔을 때 일본인 산꾼들이 대부분 방울을 달고 다녀서 왜 그런가 갸우뚱했더니만 곰 때문이라는 소리를 들었었지요.
여기에서도 일본 사람들은 배낭에 방울을 매달고 다닙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조만간 그런 일이 생기지 않을까 싶네요.
지리산에 방사했던 반달가슴곰이 지리산을 넘어 다른 곳으로 넓게 퍼져 나갔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으니까요.
개체수도 꽤 많아졌을 겁니다.
다양한 동식물이 공존하는 것이 좋기는 한데 피해는 없어야 하겠지요.
오전 11시 45분에 쵸죠산장에 도착했습니다.
오후 1시가 되어야 체크인이 가능하니 주변을 둘러보며 쉬기로 했습니다.
최대표가 산장 안을 들여다보다가 달이 그려진 진짜 '달력'이 있다고 합니다.
저도 덩달아 고개를 디밀어 보니 매일 변하는 달의 모습이 날짜와 함께 그려져 있더라고요.
재미있는 달력입니다.
화장실도 이용할 겸 방문자센터를 찾아갑니다.
여러 가지 기념품과 간단한 먹을거리를 판매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해발고도가 높아 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시원합니다.
그 물을 받아 맥주와 음료를 시원하게 보관하고 있군요.
어릴 적 시골에서 시원한 우물물에 수박을 담가 놓았던 기억이 납니다.
시골에 살던 우리 세대에게는 익숙한 풍경 아니었을까요?
화장실은 사용자들이 자율적으로 100엔씩 내게 되어 있습니다.
대신 깨끗하게 관리되기는 하네요.
휴지도 비치되어 있고요.
그러고 보면 무료로 깨끗한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는 나라는 전 세계에 우리나라뿐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익숙하지만 고마운 일이지요.
일본에 올 때도 그런 면에서 어떻게 잔돈을 바꿔야 하나 고민을 했으니까요.
다시 산장 앞으로 가니 일행들이 캔맥주를 사서 더위를 식히고 있군요.
우리나라 산장에서는 酒類 판매를 금지하는데 여기는 원하는 걸 모두 팔아도 되는 모양입니다.
술이란 기분좋게 적당량 마시면 좋은데 과하면 많은 문제를 일으키기도 하지요.
더구나 산에서는 사고의 위험도 있으니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저도 맥주를 한 컵 얻어 마시고 점심 주문을 합니다.
아직 숙박객이 아니라 점심도 마당에서 먹어야 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같으면 사람들의 원성이 자자할 듯합니다.
메뉴에는 주로 소바와 카레가 있습니다.
친구와 하나씩 주문했는데 맛을 보니 국물 없이 뻑뻑한 소바보다는 카레 맛이 낫군요.
소바는 면이 불었습니다.
야박하게 단무지 하나 없는 점심을 몸으로 밀어 넣고 있습니다.
산장에서 잘 먹으려니 기대를 한 건 아니지만 좀 실망스럽습니다.
* 참고로 흰 꽃은 나중에 찾아보니 물매화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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