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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 여행 둘째날 - 여수 금오도 비렁길 2코스 ( 두포 ~ 직포)

솔뫼들 2022. 3. 26.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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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형!

 

 이제 비렁길 2코스로 접어들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주로 산길이나 생태매트가 깔린 길, 어쩌다 바위가 있는 길이라 걷기 좋았는데 한동안 시멘트로 포장된 길을 올라가야 합니다.

참으로 마음에 안 드는 길이지요.

 

 1코스 5km를 걷는데 꼬박 2시간이 걸렸으니 조금 마음이 불안합니다.

꾀를 부릴 수가 없군요.

재미없는 시멘트길을 허위허위 올라갑니다.

인가도 없는데 개가 짖는 소리가 들립니다.

길 안쪽에 훔쳐갈 것도 없는데 개를 묶어 놓았군요.

할 일 없는 개가 오가는 사람들을 보며 목청이 터져라 짖어댑니다.

힘들어 보이네요.

 

 걷다 보니 길 옆에 방풍 밭이 있습니다.

수확을 해서 내다 팔았는지 밭에 남아 있는 건 싱싱해 보이지 않습니다.

누렇고 붉은 빛을 띠는 잎을 매단 것이 많군요.

본격적인 봄으로 접어들면 방풍은 제철이 끝나는지도 모르지요.

 

 

 포장도로를 따라 걷는 길은 특별한 것이 없습니다.

제법 긴 거리를 이런 길을 따라 걸어야 하지요.

전에 왔을 때는 시간에 쫓겨 달리다시피 했던 기억이 납니다.

직포 가까이 가서는 숲길이 어두워져서 스마트폰 랜턴을 밝히고 걸어야 했지요.

 

 걷는 길이 모두 마음에 들면 좋겠지만 그게 쉽지는 않겠지요.

말없이 거리만 줄이며 걸어갑니다.

마음에 안 드는 길이지만 길이 편하니 속도는 빨라집니다.

 

 굴등펜션이 멀리 보입니다.

제 기억으로는 굴등펜션이 금오도에서 가장 시설이 좋은 숙소 아닐까 싶었습니다.

벌써 한참 되었으니 새로 호화스럽게 지어진 숙소가 있을지도 모르기는 하지만요.

 

 

 굴등펜션 바로 앞에는 조각공원이 있습니다.

개인이 만들어놓은 것 같은데 어찌 되었든 이런 공원이 있으니 보기는 좋군요.

사진 몇 장 찍으며 숨을 돌립니다.

정말 앞만 보고 걸었군요.

 

 조금 가니 굴등전망대가 나옵니다.

전에는 서둘러 가느라 내려가지 않았었지요.

나무계단을 따라 내려갑니다.

올라올 때 힘들 걸 각오하고 내려가니 이곳 물빛은 옥빛을 띠고 있네요.

산과 바다가 어우러진 풍광이 단박에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번갈아 사진을 찍어 주고 다시 목조 계단을 올라갑니다.

 

 

 오래된 집들 사이로 길이 나 있습니다.

사람이 살고 있을까 싶을 정도로 낡은 집인데 바람에 날아갈까 지붕을 줄로 묶어 놓았네요.

안테나까지 설치되어 있는 걸 보면 사람이 산다는 말이겠지요.

 

 그런 집들이 몇 채 있는 길을 지나면 길은 산으로 접어듭니다.

산길이 꽤나 험했던 기억이 나네요.

경사가 심한 너덜이 나오다가 험상궂은 바위를 꺼이꺼이 기어올라가야 하고, 간간이 계단도 나오고...

길은 비교적 관리가 잘 되고 있지만 사실 자칫 발을 잘못 딛으면 바로 바다로 추락할 수 있는 길입니다.

발 아래를 조심해야 하지요.

 

 

  숨이 턱에 차오를 때쯤 촛대바위 전망대에 도착했습니다.

산쪽에 우뚝 솟은 바위가 촛대바위라고 합니다.

촛대처럼 생기지 않았는데 억지스럽게 이름을 붙였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촛대바위 너머로 직포 마을이 보입니다.

바다를 앞에 두고 산자락에 납작하게 엎드린 마을이 평화스러워 보입니다.

옹기종기 집들이 모여 있는 마을이 제법  컸었지요.

전에 직포 마을에서 묵고 비렁길 트레킹을 이어갔습니다.

친절했던 펜션 주인 생각이 나는군요.

 

 

 발길이 저절로 빨라지네요.

역시 마을로 향하는 길은 대숲이 터널을 이루고 있습니다.

신선해진 공기를 마시려고 코를 벌름거려 봅니다.

대나무에서 음이온이 나와 건강에 좋다고 하던가요.

 

 대숲을 벗어나 마을로 접어듭니다.

무슨 나무인지 줄기를 축축 늘어뜨린 나무 아래를 지나니 마을 양지바른 곳에는 동백꽃이 환하게 피어 있군요.

오늘 걷는 길에서 동백나무는 수없이 보았는데 이렇게 활짝 핀 동백꽃은 처음 만납니다.

드디어 할 일을 한 것 같은 느낌마저 듭니다.

 

우수 절기 지나

회색빛 산에 오르면

번들번들한 산동백 푸른 가지마다

붉은 꽃 웃음이 벙글고,

 

산골 바위틈마다 차가운 물 내리는 소리

푸른 가슴으로 돌아와 기쁨 넘치고

 

겨우내 언 땅을 밀치고

솟아오른 복수초 그 힘찬 기운에 

그대의 가슴으로 열리는 따스한 오솔길이

노란 산수유 웃음으로 버무려지는데,

 

오늘은 화사한 봄의 기척을

누구에게 물을까?

 

박종영의 < 봄으로 가는 길을 묻다 > 전문

 

 

 

 보호수로 지정된 노거수 소나무가 떡 하니 마을을 지키고 있는 직포입니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집들 사이에서 7년 전에 묵었던 펜션을 찾아 봅니다.

일찍 어둠이 내린 11월, 지친 몸으로 찾아간 펜션에서 저녁밥이 된다고 하여 얼마나 반갑고 고마웠던지요.

지금도 그 기억이 생생합니다.

 

 이곳에 오니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습니다.

비렁길 중에서 가장 인기가 있는 3코스를 올라가는 길목인데다 마을버스가 바로 오기 때문 아닐까 싶습니다.

낚시꾼도 많이 보이는군요.

여수여객선터미널에서 이곳으로 바로 오는 배도 있습니다.

금오도 내에서 배든 버스든 교통이 좋은 편이라 그럴 겁니다.

 

 3.5km 1시간 걸린다는 2코스를 1시간만에 걸었습니다.

30분을 단축했으니 이제 조금 마음에 여유가 생기는군요.

이런 길은 설렁설렁 걸어야 하는데 마라톤이라도 하는 것처럼 걷고 있는 제가 좀 우습기는 합니다.

금오도 내 불편한 교통편이 발목을 잡아서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