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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 여행 둘째날 - 여수 금오도 비렁길 1코스 (함구미~ 두포) (2)

솔뫼들 2022. 3. 25.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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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형!

 

 정신없이 걸었습니다.

꽤 많이 걸었다고 생각했는데 이정표를 보니 거리를 반밖에 못 줄였군요.

게으름을 피운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이정표를 본 친구는 다시 속도를 올려 걷습니다.

몸이 가벼워 그런가 날아가는 것 같네요.

 

 부지런히 쫓아서 걷는데 우람한 나무가 보입니다.

비자나무라는 이름표를 붙인 고목이군요.

비자나무는 탄력이 좋아 바둑판으로 이용되는데 값이 아주 비싸다고 하던가요.

이 나무는 수명이 얼마나 되었을까요?

저보다 훨씬 나이를 많이 먹었을 것 같아 새삼스레 올려다보게 됩니다.

비자나무는 함께 살자고 콩난에게 자리를 내어주었군요.

더불어 사는 삶이 무언가를 몸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제 길이 편해졌습니다.

앞서가던 친구가 오전 10시에 알려달라고 합니다.

스마트폰으로 강의를 들어야 한다고 하네요.

한번에 두 가지 일을 하는 '멀티 플레이어'였군요.

그 김에 쉬면서 간식도 먹고 커피도 마시자며 자리를 찾아 봅니다.

 

 쉬었다가 출발하는데 바람이 멎었습니다.

나무 사이로 비치는 노란 햇살이 예쁜 길이 이어집니다.

햇살과 잠깐 숨바꼭질이라도 하고 싶어지는걸요.

 

 

  이번에는 소사나무 군락이 이어집니다.

소사나무는 주로 바닷가에 서식을 하지요.

영흥도에서도, 굴업도에서도 소사나무 군락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척박한 곳에서 바닷바람을 맞고 자라느라 그런지 줄기가 가늘고 약간 비틀렸군요.

힘든 인생살이를 보는 느낌입니다.

 

 바닷물 빛깔은 보는 방향에 따라 달라집니다.

정말 기기묘묘한 빛깔로 우리를 반겨주네요.

에메랄드빛 바닷물 빛깔에 반해 자꾸 눈이 바다로 향하는 길입니다.

 

 가는 중간중간 동백나무도 보이는데 아주 꽃을 피우지 않았군요.

지금쯤이면 한창 붉은 빛을 자랑할 거라 생각했는데 말입니다.

지난 겨울이 유독 추워서 아직 몸을 움츠리고 있는 모양입니다.

좀 아쉽기는 하네요.

 

 

 아! 그런 제 마음을 알았는지 길 한쪽에 민들레가 노랗게 꽃을 피웠네요.

올해 들어 처음 만나는 들꽃입니다.

반가움에 쪼그리고 앉아 민들레를 사진에 담아 봅니다.

마음에 금세 등불 하나 밝힌 듯 합니다.

 

 신선대를 지나고 솔잎이 솔솔 내린 길을 따라 걸어갑니다.

이런 길에서는 어릴 적 부르던 동요 한 자락 흥얼거리게 됩니다.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엄마 생각도 나고, 고향 생각도 나고...

모두 제게서 멀어졌군요.

마음이 조금 쓸쓸해집니다.

 

 친구는 또 저만치 앞서 갑니다.

 '걷기 선배'인 제가 시간이 충분하다고 하는데도 마음이 급해지나 봅니다.

트레킹을 끝내고 제 시간에 맟춰 막배를 탈 수 있을까 사실 저도 약간 걱정이 되기는 합니다.

전보다 7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고 분명히 세월의 무게를 무시할 수 없으니까요.

 

 

 저 아래가 두포 마을이군요.

1코스가 끝나는 지점이 코 앞에 있습니다.

대숲 터널을 지나 마을로 내려가는 길입니다.

 

 발걸음이 가벼워졌습니다.

마을로 내려서면 저를 맞아주는 것이 가지런히 쌓은 돌담입니다.

바람이 지나가라고 길을 만들어주었는지 돌담 중간에 네모난 문을 하나 만들어준 것도 인상적이고요.

 

 

 지나온 길에도 돌담이 많았습니다.

그 돌담이 바람에 수시로 무너지겠지요.

동네 어르신 두 분이 돌담을 새로 쌓고 계시는 걸 보고 이렇게 때때로 관리를 해야 유지가 되는구나 싶었습니다.

그냥 되는게 세상에 하나도 없겠지요.

비렁길 곳곳 돌담들이 그렇게 유지 관리되고 있었습니다.

하루 후딱 와서 걷고 가는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무척이나 고마운 일이지요.

 

굽이진 돌담을 돌아서 돌아서

달이 흐른다 놀이 흐른다

하이얀  그림자

은실을 즈르르 몰아서

꽃밭에 봄마음 가고 가고 또 간다

 

  김영랑의 < 꿈밭에 봄마음 > 전문

 

 오전 10시 35분, 정확하게 2시간 걸려 두포에 도착했습니다.

이정표에 적힌 시간대로 간다면 제 시간에 못 갈 것 같아 약간 긴장이 되는걸요.

잠깐 허리 한번 펴고 바로 2코스로 직행해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