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댁에 가기 위해 집을 나와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그 순간 엘리베이터 한 구석에 다소곳이 놓여 있는 흰색 스티로폼 상자가 눈에 띈다.
궁금해 들여다 보니 깨끗한 컵이 몇 개 놓여 있었다.
거기에는 한번도 안 쓴 새 컵이라는 내용과 함께 저녁에 이 상자를 치우겠다는 내용의 메모가 붙어 있었다.
자신에게는 소용이 없는 물건이지만 필요한 사람은 가져가라는 배려였다.
자세히 보니 그 옆에 메모지가 한 장 더 붙어 있었다.
자신이 필요한 물건을 몇 개 가져갔다, 잘 쓰겠다, 손글씨로 쓴 메모가 인상적이다, 고맙다는 내용이 적힌 역시 손글씨 메모였다.
두 장의 메모를 보면서 저절로 마음이 훈훈해졌다.
저녁에 집에 돌아오며 보니 상자는 치워져 있었다.
상자 안의 물건들을 사람들이 다 가져갔을까?
궁금해졌다.
사실 살면서 누구나 자신에게 필요 없는 물건이 생긴다.
버리기는 아깝고, 그렇다고 누구에게 주기도 쉽지는 않다.
전에 나도 그런 물건에 메모를 붙여 분리수거 하는 한쪽에 놓아둔 적이 있다.
역시나 한번도 쓴 적이 없는 물건인데 필요한 사람은 가져가라는 내용을 적어서.
그랬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가 가져간 것을 알게 되었다.
그냥 버린 것보다 훨씬 뿌듯하고 기분이 좋았던 기억이 난다.
IMF 경제위기가 닥쳤을 때 '아나바다' 운동이라고 하여 '아껴 쓰고, 나누어 쓰고, 바꾸어 쓰고, 다시 쓰자'는 운동을 벌인 적이 있다.
그 후 위기가 어느 정도 극복되자 언제 그랬느냐 싶게 이 운동이 잊혀졌는데 사실 이런 운동은 일상 생활에서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물건이 넘쳐나는 시대이기는 하지만 시간과 재료, 노력이 들어가지 않은 물건이 어디 있겠는가.
그리고 지구상에 자원은 한정되어 있는데 너도나도 쉽사리 쓰다 버리면 후손들은 어찌 할 것이며 그 쓰레기는 또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런 운동을 통해 소비 만능주의에서 벗어나고 물건의 소중함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유럽에서 일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중고품 교환 같은 행사가 주말마다 이루어진다면 나도 기꺼이 참여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