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산행기

알프스 TMB를 걷다 ; 셋째날 ( 레 샤삐유 - 쿠르마이어 ) 20160712 (1)

솔뫼들 2016. 8. 3.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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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부터 하늘이 흐릿하다.

내 몸 상태도 흐릿하다.

지난 밤에 이 술, 저 술 마시는 바람에 위장이 요동을 쳤다.

술마다 제가 잘났다고 배 속에서 치고받고 한바탕 싸움이라도 한 게지.

밤새 고생하고 나니 아무 생각이 없다.

이틀 걷고 이렇게 긴장이 풀어지면 안 되는데...

 

 이래저래 오늘 아침과 점심은 누룽지 끓인 것으로 먹어야겠군.

식당에서 운전기사 모건이 준비한 삶은 계란 한 개에 끓인 누룽지로 속을 달랜다.

조금 속이 풀어지는 느낌이다.

각자 배낭에 점심을 챙겨 넣고 산장 앞에서 단체로 기념사진을 한 장 는다.

 

 

 

 오전 8시,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출발한다.

2시간 내리 오르막길이 이어진다고 한다.

급경사는 아니니 다행이라고 생각을 해야겠지.

걷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각자 우비에 고어텍스 재킷 등 중무장하고 걷는데 빗줄기가 굵어진다.

우리가 묵었던 산장 앞 봉우리에 스멀스멀 안개가 피어 오른다.

 

 강박사는 오늘 가져온 무전기를 써 보아야겠다며 앞에 가는 사람에게 하나 건넨다.

그리고는 앞 사람 나오라며 연습을 해 본다.

비는 내리지만 아이들마냥 웃고 즐거워하며 걷는다.

전에는 한동안 산에서 무전기 사용하는 소리를 많이 들었는데 어느 새 슬그머니 사라졌다.

우리나라에서는 대부분 휴대전화가 잘 터지니 필요가 없어진 것이겠지.

 

 세상이 워낙 빠르게 변하니 어떤 사물 하나가 무용지물이 되는 것은 시간 문제이다.

고도계 같은 경우에도 스마트폰에 다 나오니 굳이 무겁게 들고 다닐 필요가 없어졌고

시계도 마찬가지 경우이다.

패션으로 생각해서 착용을 하든 아니면 명품을 차든 두 가지 경우로 나뉜다는 소리를 들은 것 같다.

 

 

 

 길에는 각국 트레커가 줄을 섰다.

나라마다 특색이 있는 건가 아니면 모임마다 특색일까?

까맣게 우비를 입은 사람들을 보고 강박사가 저승사자 같다고 한다.

내가 보기에는 박쥐 같은 걸.

비가 내려 우중충한 날씨에는 알록달록한 우리 팀 색깔이 환하고 좋네.

 

 비는 쉬임없이 내린다.

장비를 갖추었는데도 몸이 축축해지는 느낌이다.

지난 밤에 비가 와서 그런지 계곡물도 불었다.

계곡을 건너다가 방수가 안 되는 가벼운 트레킹화를 신은 인우씨 신발에 물이 들어갔단다.

에구, 그러면 걷는 동안 힘들텐데...

 

 

 

 비가 세차게 퍼붓는다.

최대한 비에 대비를 했지만 굵은 빗줄기를 당한 재간이 없다.

이 정도면 악천후군.

 

 몸이 으슬으슬 추워진다.

아무도 말없이 앞만 보고 걷는다.

체력이 저하되는게 느껴진다고나 할까.

아침을 부실하게 먹어서 간간이 배낭 허리끈 부근의 주머니에서 오래 된 초콜릿과 사탕을 꺼내 먹는다.

그렇게라도 해야 이런 날씨에 힘을 내 걸을 수 있지.

 

 쉴 틈도 없이 걸음을 옮긴다.

하기는 이런 날씨에 앉을 데도 없고 쉬면 더 추워질테니 쉴 수도 없기는 하다.

프랑스와 이태리의 국경인 세뉴고개에 도착할 즈음에는 손도 시리고, 목도 시리다.

국경 넘기 힘드네.

오전 10시 5분, 국경을 표시하는 탑(?)을 보며 가이드 비가 무어라 설명을 하는데 완전히 소 귀에 경 읽기다.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으니 사진 속에 남기는 것으로 만족해야지.

 

 

 가이드가 다운재킷을 꺼내 입는 걸 보고 나도 얼른 따라 한다.

다운 재킷에 방수 재킷을 덧입고 방수는 아니지만 장갑까지 꺼내 낀다.

전문가가 하는 대로 따라 하면 실수는 없겠지.

이렇게 무장을 하니 몸이 풀리면서 좀 낫다.

살 것 같네그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