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산행기

알프스 TMB를 걷다 ; 둘째날 ( 레 꽁따민느 - 레 샤삐유 ) 20160711 (1)

솔뫼들 2016. 7. 30.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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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전 8시 30분 간단히 아침을 먹고 밴에 오른다.

밴에 오르자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검색한 사람들이 프랑스 남부에서 테러가 일어났다는 소식을 전한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그다지 멀지 않다는 말인데...

영국의 브렉시트로 그렇지 않아도 뒤숭숭한 유럽에 자꾸 이런 악재가 발생한다.

트레킹이 끝나고 프랑스 남부를 나흘 더 여행할 거라는 4명의 친구들도 아무래도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다.

세상이 조용할 날이 없네그려.

 

 오늘은 두 대의 밴에 나누어 타고 이동한다.

많이 걷는 날이라는 생각이 머리에 꽉 차서 저절로 긴장이 된다.

오늘 걸어야 할 코스에 대해 가이드 비의 설명을 듣는데 프랑스 지명이 익숙하지 않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다만 해발 고도 1200m 이상 올려야 한다는 것만 귀에 '콱' 박혔다.

마음을 단단히 먹는다.

 

 

 가이드 비는 어제 뒤에 처져서 걷던 여자 친구 두 명을 불러 '넘버 1'과 '넘버 2'라면서 바로 자기 뒤에 따라오라고 한다.

아무래도 먼 거리에 속도가 늦어질까 걱정이 되겠지.

어제는 너무 힘든 나머지 오늘 포기하겠다고 하더니 쉬고 나니 그나마 힘이 난 모양이다.

오늘 가이드 비의 작전이 성공하려나 모르겠네.

그 친구 중 한 명은 발에 물집 정도가 아니라 고름까지 잡혔다고 하던데 고생스럽겠다.

물집이 잡히기 직전에 벌겋게 부어오른 내 발은 거기에 비하면 약과였군.

 

 초반부터 오르막길이다.

길 옆쪽으로 키큰 침엽수가 하늘을 찌르는데 길섶에는 어제와 다른 들꽃이 눈에 띈다.

아는 것이라고는 우리나라에도 흔한 토끼풀과 붉은토끼풀, 그리고 솔체꽃에 마거리트 정도.

작은 꽃 사진을 찍는 걸 보고는 한 친구가 어느 정도 작은지 확인을 위해서는 꽃 옆에 손가락을 함께 찍어야 좋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한다.

무심코 '줌'으로 확대해서 사진을 찍었는데 일리가 있는 이야기이다.

노란색, 보라색, 그리고 흰색에 분홍색까지 다채롭게 수놓인 들판을 지난다.

 

 

춥다 덥다 울지 않는다
배고프다 목마르다 조르지 않는다
못생겼다 가난하다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난초를 꿈꾸지 않는다
벌 나비를 바라지 않는다
태어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사는 것을 버거워하지 않는다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아무도 탓하지 않고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주어진 것만으로 억척으로 산다
버려진 곳 태어난 곳에서 모질게 버틴다
생명은 누구에게나 소중한 것
살기 위해 먹는 수단은 언제나 신성하다
뜯기고 밟히고 채이는 것은 존재의 숙명
살아 있다는 것은 은혜이고
죽는다는 것은 섭리이다
잡초는 결코 죽지 않는다
다만 섭리를 따를 뿐이다

 

김종태의 < 잡초는 > 전문

 

 누가 그랬던가.

잡초는 없다고.

그래, 식물도감을 보면 잡초라는 건 없지.

인간의 필요에 의해 나눈 것일 뿐.

손톱만한 꽃을 사진에 담기 위해 자세를 낮춘다.

저절로 겸손해지는 순간이다.

 

 

 속도를 늦추어 후미를 맡아 천천히 오시는 고문님을 기다린다.

오르막길이다 보니 금세 땀이 난다.

결국 겉옷 하나를 벗어 배낭에 넣는다.

오늘도 날씨가 나를 괴롭히려나?

악천후보다는 낫지만 어제 같은 뜨거운 날씨도 괴롭기는 하지.

 

 뒤에 오시던 고문님께서 부지런히 걷다가 미끄러지신 모양이다.

크게 다치신 것 같지는 않은데 팔에 상처가 났다.

그래도 그만한 게 다행이다.

오래 전 릿지를 한다고 다닐 때 바위를 타다가 그 정도 상처가 나면 '소모품이 나갔다'고 했었지.

약이 필요하지 않은가 강박사는 직업의식을 발휘해 묻는데 그 정도는 그냥 두면 저절로 딱지가 진다.

 

 

 조금 올라가자 젖소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는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가끔 쩔렁거리는 종소리와 되새김질하며 누워 있는 소, 평화스러워 보인다.

사람들이 가까이 가도 별다른 태도를 취하지 않는 그들을 보면서 사람들을 친근하게 느끼는 모양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자세히 보니 목에 종을 매달기 위한 줄이 무척이나 넓게 만들어져 있다.

그리고 종도 생각보다 더 크고.

사람들은 무심코 바라보지만 소들은 불편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풍경 사진을 찍으며 걷는데도 아침부터 땀이 쏟아진다.

힘들다고 느낄 무렵 기다렸다는 듯이 가이드 비가 쉬자고 한다.

어찌나 반갑던지...

빙하가 녹은 물이 쏟아져 내리고 깨끗한 화장실을 만들어 놓은 곳이다.

역시 유럽답게 잘 되어 있구나 싶다.

 

 

 시원한 물을 마시고 가이드 비가 주는 건자두와 비스킷 등 간식을 주워 먹는다.

점심이 늦어진다니 먹어 두어야지.

그리고는 물통에 물을 새로 받고 팔토시에 시원한 물을 끼얹는다.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기화열 때문에 무척이나 시원하다는 사실을 경험상 알고 있으므로.

내가 하는 것을 따라 한 인우씨도 생각보다 시원하다며 씨익 웃는다.

 

 다시 기운을 보충하고 구렁이처럼 구불구불 이어진 길을 따라 걷는다.

서양인들도 줄줄이 걸어 올라온다.

그런데 그들은 대부분 짧은 반바지에 민소매 티셔츠를 입었다.

평소에 해를 볼 일이 많지 않아서 일광욕을 하려는 것인지 가능한 한 몸을 노출시키기로 작정을 한 것 같다.

우리는 반팔 티셔츠를 입어도 팔토시를 한다든가 아니면 자외선 차단 크림을 덕지덕지 바르고 다니는데...

참 다른 문화이다.

 

 

 한참 걷는데 이번에는 강박사가 넘어졌다.

괜찮다고 하는데 표정을 보니 다리 한 곳이 아픈 모양이다.

허벅지에 멍이 들게 생겼군.

그런데 두 분 번갈아가며 왜 그러신대요?

상처가 크든 작든 넘어지면 아픈 건 당연한데 혹시 알프스 트레킹 증거라도 몸에 남기시려는 건가요?

공연히 내가 긴장이 된다.

긴 여정에서 아무래도 조심을 하는 것이 낫겠지.

 

 조금 더 가니까 자전거 부대도 올라온다.

경사가 만만치 않은데 어디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는 걸까?

급경사 구간 자전거를 어깨에 메고 걷는 걸 보면 우리처럼 걷는 사람보다 더 힘들어 보이던데...

산악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을 보면 스릴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위험해 보여서 다시 한번 쳐다보게 된다.

고생을 사서 하는 우리 같은 사람도 있고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한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