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빌거리다가 정신을 차리고 부지런히 일행을 따라가는데 젊어서 잘 걸을 거라고 예측을 했던
두 사람이 뒤로 처졌다.
그리고는 나보다 훨씬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나만 힘든 건 아니었네.
그걸 보니 조금 긴장이 풀리고 걱정이 덜 된다.
적어도 나 때문에 속도가 느려지지는 않을 것 같아서.
사실 거칠 것 없는 햇볕이 사뭇 내리쬐는 길은 몹시 뜨겁다.
고도가 높아 이렇게 더울 거라고는 생각을 못 했는데 햇볕이 그대로 쏟아진다.
땀이 흐르는 것이 아니라 그냥 뚝뚝 떨어지는군.
이럴 땐 날씨가 좋다고 고마워 해야 하나, 아니면 덥다고 투덜거려야 하나?
가다가 일행이 길이 아닌 곳으로 가는 걸 보고 쫓아간다.
왜 그쪽으로 가나 했더니 그곳에서 점심을 먹는단다.
그나마 그늘을 찾는다고 한 것 같은데 주변에 동물의 배설물 때문에 자리 잡고 앉기도 거북하다.
초원에서의 午餐인데 그리 만족할 만한 공간은 아니군.
겨우 한쪽에 자리를 잡고 나니 작은 바위 위에 각자 배낭에 챙겨온 음식을 꺼내 놓는다.
나도 배낭에서 치즈를 꺼내 잘라 놓고 내가 먹을 만큼 덜어 온다.
바게트 한 쪽에 치즈 한 쪽, 그리고 살구 하나.
곡물이 들어간 빵이 입맛에 맞아 아침을 많이 먹은 것이 힘들게 하는 요인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어 점심은 가볍게 하기로 한다.
가이드 비는 음식을 조금 먹는가 싶더니 저쪽에서 맛나게 담배를 피운다.
우리나라에서는 산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이 금지되었는데 여기는 아닌 모양이네.
의외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도 산길에는 담배꽁초는커녕 초콜릿을 싼 종이 하나 보이지 않는다.
누가 시켜서 되는 것이 아니겠지.
사람들의 의식수준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선진국이 다른게 아닐 것이다.
중국이나 네팔에서 여기저기 보이는 한글이 들어간 쓰레기가 눈에 거슬렸던 기억이 난다.
여기도 한국 사람들이 꽤 오고 여기 오는 사람들도 다 같은 사람들일텐데 확실히 사람은 환경의 지배를 받는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경제학에서 이야기하는 '깨진 유리창' 이론도 비슷한 것 아닐까.
남은 음식은 가이드가 주변에 뿌린다.
짐승들이 먹으니 상관이 없단다.
갑자기 그 음식들이 아깝게 느껴지는데 그것도 한국적인 사고방식이겠지.
다시 몸을 일으킨다.
평탄한 길이 이어진다.
조금 가다가 나오는 산장과 카페 앞에는 사람들이 많다.
가이드가 화장실을 이용하고 물을 담을 시간을 주는데 물은 빙하가 녹아 내려오는 물이다.
그럼 이 물이 바로 '에비앙' 생수 아닌가.
손만 씻어도 정신이 번쩍 날 정도로 시원한 물을 물통에 새로 받아 넣으면서
내일부터는 무거우니 물통에 물을 많이 담아오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금방이라도 주변 모든 걸 삼켜버릴 것 같은 소리를 내며 흐르는 계곡을 건넌다.
물소리가 정말 짐승이 포효하는 소리 같다.
모두들 물소리에 잠시나마 더위를 잊는다.
그리고는 다리를 건너며 사진을 찍고 발길을 옮긴다.
다시 오르막이다.
오는 동안 만났던 사람들과 다시 만나고 헤어지기를 여러 번.
얼굴만 아는데도 반갑다.
이렇게 며칠 지나면 저절로 친구가 되는 것이겠지.
대부분이 서양 사람들인데 우리 보고는 어디에서 왔느냐고 묻는다.
일본인이라는 착각을 하는 사람들도 많고.
우리가 서양 사람들을 보고 잘 구별하지 못 하는 것처럼 그들도 한, 중, 일 3국 사람들 구별을 잘 못하는 것이겠지.
고개 하나를 넘었다.
아까 카페가 있는 곳에서 쉴 틈을 안 주기에 섭섭했는데 여기에서 쉬라고 한다.
그곳도 좋았지만 여기가 더 근사하구만.
시원한 맥주 한 잔 시켜 놓고 앉아 설산과 초록의 조화를 바라보니 천국이 따로 없다.
무얼 더 바랄 것인가.
정말 부러울 것이 없다.
문득 아름다운 것과 마주쳤을 때 지금 곁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면 그대는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그윽한 풍경이나 제대로 맛을 낸 음식 앞에서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 사람 그 사람은 정말 강하거나 아니면 진짜 외로운 사람이다 종소리를 더 멀리 보내기 위해서 종은 더 아파야 한다 이문재의 < 농담 > 전문
살랑거리는 바람을 즐기며 사진을 찍는다.
앞에 보이는 빨간색 파라솔도 주변과 기가 막히게 어울린다.
흰색과 초록에 빨강이라...
거기에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서양 사람들의 모습에 아름답다는 말 외에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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