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 땅만 바라보고 걸었다.
걷다 옆을 쳐다보니 여기에도 돌탑이 있네.
돌탑이라고 하기에는 그저 돌을 쌓아 놓은 돌무더기처럼 보이지만 서양에서 보는 돌탑이 낯설다.
그런데도 마음은 푸근해진다.
돌탑을 쌓는 것은 한국적인 정서 아니었나?
중국 쪽에서 백두산에 오르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길 옆에 돌탑을 쌓아 놓는 걸 몹시 싫어한다는 보도를 본 적이 있다.
길 가던 일행 몇몇이 돌을 집어서 그 위에 살며시 올려 놓는다.
그들은 무엇을 기원했을까?
어디선가 서늘한 바람이 불어온다.
멀리 빙하가 흘러내려 길이 되어버린 것이 눈에 들어온다.
냉장고 바람이 바로 저기에서 온 것이었구나.
언제 더웠냐 싶게 시원하다 못해 선선하게 느껴진다.
빙하 위를 걷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미끄러우니 스틱을 힘주어 짚고 발도 꼭꼭 힘주어 내딛는다.
넘어지지 않으려고 애를 쓰면서.
끝없는 오르막길을 오르면서도 어제와 또다른 풍경에 힘든 줄 모르고 걸었다.
빙하가 흘러내리는 작은 계곡을 여러 번 건너고 눈 앞에 보이던 고갯마루에 도착했다.
시간이 꽤 흘러 여기에서 점심을 먹나 싶었는데 잠시 휴식시간인 모양이다.
앉아서 쉬려니 한기가 몰려와 벗었던 겉옷을 꺼내 입는다.
고도도 높아졌고 주변을 돌아보건대 한동안 이런 길이 이어지지 않을까 싶다.
가이드 비의 손짓에 몸을 일으켠다.
넘어가는 길인줄 알았더니 옆으로 가는 길이었네.
TMB 트레킹 중에는 여러 가지 길을 만난다.
우리가 걷는 길 말고도 몽블랑 주위로 갈래길이 많다는 말이겠지.
다른 사람들이 가는 길에는 어떤 풍경이 펼쳐질까 궁금해진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한 호기심이라고 해야 할까?
녹아서 질척거리기도 하고, 사람들의 발자국에 회색으로 변하기도 한 길을 따라 걷는다.
길을 걷다가 가이드 비가 바위로 올라가기에 아무 생각 없이 따라갔더니 거기가 점심을 먹을 장소란다.
하기는 빙하 위보다는 낫겠지.
나름대로 가이드가 고심을 해서 정한 장소인 것 같다.
트레킹 내내 점심을 먹는 장소의 변화를 살펴보는 것도 색다른 재미가 되지 않을까.
오늘도 역시나 가져온 음식을 펼쳐 놓고 오찬이 이어진다.
고문님께서는 화재를 염려해 빙하 위로 자리를 옮겨 버너에 불을 붙이셨다.
몇 가지 음식을 덜어서 고문님이 계신 근처로 이동한 후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붓는다.
그리고 인우씨와 가이드에게는 스프를 타서 건넨다.
두 사람 모두 맛있다고 즐거워 한다.
조금씩 차가운 공기가 느껴지는 시간, 더운 것이 한 몫 제대로 하네.
더운 물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나누어주고 자리를 정리한다.
무겁고 귀찮을 것도 같은데 고문님께서 버너와 코펠을 챙기시는 이유이다.
다시 걸어야 한다.
오후 2시쯤 되었으니 오늘 일정 중 반 이상 걸었겠지.
힘을 내어 배낭을 멘다.
방심하면 미끄러질 것도 같고, 고꾸러질 것도 같은 길을 따라 조심조심 걷는다.
모두들 신경을 쓰다 보니 말이 없어졌다.
그런데 갑자기 여럿이 하는 우리말이 들린다.
무슨 일인가 보니 맞은편에서 오던 사람들이 한국인이었네.
TMB 전 일정을 걷는 사람들인 모양인데 서로 반갑다며 친근감을 표시한다.
한국인들이 해외 트레킹을 많이 다니기는 하지만 그래도 외국 산중에서 한국인을 만나면 반가운 것이 인지상정 아닌가.
서로 안전한 걸음이 되기를 빌어주며 길을 간다.
한동안 발 아래만 보고 걸었다.
넘어질까, 미끄러질까, 아니면 빙하가 녹아 만든 계곡에 빠질까 싶어서.
얼마나 걸었는지조차 생각이 없다.
그래 걷는 것이 우리를 잡념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겠지.
누구는 걷는 동안 철학자가 된다고 하던데 나는 아무리 걸어도 철학자 근처에도 못 갈 것 같고
그저 내 몸의 부름에 충실한 사람이 되지 않나 싶다.
때로는 無念無想 발만 옮겨 놓는 상태에 빠지기도 하고.
저 아래 산장이 보인다.
잠시 쉬어갈 수 있으리라.
산장에는 사람들이 꽤 많다.
두리번거리며 살피니 이곳에서 숙박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다.
궁금해 자세히 보니 숙박비가 꽤 비싸네.
여러 명이 한 방을 쓰는 형태일텐데 개인이 오면 1인당 49유로, 단체일 경우 45유로란다.
물론 고도가 높은데다 샤워를 할 수 있는 시설이 갖추어져 있겠지만 우리나라에 비하면 엄청난 금액이다.
유럽 물가가 비싼 줄은 알았지만 새삼스럽게 놀랍다.
사람들을 피해 바깥에 만들어진 의자에 앉아 취향껏 맥주며 핫쵸코, 커피 등을 마신다.
꽤 내려왔다 싶은데 이곳 해발 고도가 2443m라니 우리가 지나온 최고점은 2500m를 훨씬 넘으리라.
이제는 내려갈 일만 남았겠지.
조금 여유를 가져도 되리라.
가이드 비의 부름에 하산 준비를 한다.
여러 곳에 나뉘어 끼리끼리 즐기던 사람들이 헬기장에 모였다.
가이드 비가 헬기장을 가리키며 이곳 물자를 헬기로 운반한다고 설명을 한다.
그러니 물건값이 비쌀 수밖에.
내가 입맛이 그리 섬세한 편도 아닌데 핫쵸코 맛이 다른데 비해 조금 덜하다 싶었더니 코코아 가루를 타주는 것 아닌가 싶다.
이해가 되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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