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가는 산인데도 날씨가 좋아서 그런지 살짝 들뜬다.
버스정류장 앞에는 최근 자주 내린 비에 물고기 비늘 같은 벚꽃잎들이 낙하해 무늬를 이룬다.
하늘을 하얗게 가릴 듯한 벚꽃의 향연뿐 아니라 이것 또한 봄 풍경이지만 쉬이 지나가리니...
아침 9시 30분, 4명으로 예상했던 인원이 3명으로 줄어 관악산 육봉이 아닌 옆 능선을 타기로 했다.
오늘도 봄나들이 나온 것처럼 쉬엄쉬엄 바위에서 봄 햇살을 즐기기도 하고, 새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도 하고,
간혹 물소리도 들으면서.
들머리를 향해 가는 길에는 과천시에서 준비해 놓은 화분에 꽃이 예쁘게 피었다.
자줏빛 튤립이 화사해서 얼른 전화기로 사진을 찍는다.
정말 어디를 보나 참 예쁜 날들이다.
날씨가 좋아서인지 모두들 밖으로 나온 모양이라고 지나는 등산객들을 보면서 내가 한 마디 했다.
사실 이런 날 집에 있으면 억울한 느낌이 들기도 할 거라고.
그러자 박총무는 회사에 갇혀 있으면 더 억울하다고 보탠다.
그래서 회사에서 일을 할 때에도 점심만은 야유회 느낌을 살리러 공원에 가서 먹으려고 노력을 한다고.
그것도 좋은 방법이네.
입구에서 겉옷을 하나씩 벗고, 지팡이를 꺼내고, 눈부신 햇살을 가리려 고글도 준비한다.
기운이 넘치는 사람들은 벌써 반팔 티셔츠 차림이네.
들머리에는 애기똥풀이 노랗게 꽃을 피웠다.
참 생명력이 강한 꽃이다.
봄에 꽃을 피워 여름을 견디고 가을까지 잘 버텨낸다.
독초라고 알려져 있는데 사실 잘 쓰면 약이 된단다.
독초와 약초는 한 끝 차이 아닌가.
보랏빛 제비꽃도 인사를 하고 시나브로 고개를 숙이고 있는 진달래도 많이 보인다.
육봉을 오르는 사람들을 바라보다 우리는 반대편으로 접어든다.
박총무는 처음 가는 코스란다.
이런 날 가기에 참 좋은 코스지요.
그런데 가는 길에 공무원 연수원 담장을 설치하는지 길이 불편하다.
연수원은 그리 비밀문서가 많은 곳도 아닐텐데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곳에 그렇게 높은 담을 하는 이유가 무얼까?
아직도 공무원들이 국민을 '봉'으로 알고 권위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것 같아 씁쓸하다.
투덜거리며 걷는다.
그래도 연수원 안에 핀 꽃들과 연못이 자꾸 시선을 잡아끈다.
계곡을 건너 오르막길로 접어든다.
물이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최근 비가 내려서 물소리가 들린다.
사실 물이 없는 산은 산답지 못하다.
더구나 계절이 봄을 건너 여름으로 갈 때 물구경을 못 하면 얼마나 섭섭한가.
푹푹 쌓인 낙엽이 발에 밟힌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았다는 말이겠지.
오늘은 아직까지 한 사람도 만나지 못 했다.
오롯이 우리만의 산길인걸.
복 받았다.
쉬어가자는 고문님 말씀에 나무 아래 자리를 잡았다.
커피를 한 잔씩 마시며 여유를 부린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주변을 살펴보니 지난 가을 떨어진 도토리에서 싹이 나서 뿌리를 내린 모습이 보인다.
정말 새 생명이군.
저걸 가져다 집에서 화분에 키우면 어떨까 하니 박총무가 얼른 나뭇가지로 참나무 싹을 파낸다.
고문님께서는 지퍼팩을 준비해 주시고.
어차피 키우는 김에 두 그루로 하자고 흙과 더불어 봉지에 넣는다.
잘 키워야 할텐데...
일어나 배낭을 멘다.
아직 반도 못 왔는데 너무 오래 쉬었다.
오르는 길은 부드러운 흙길이 이어지다가 심심해질 만하면 적당한 암릉이 나타난 잔재미를 준다.
위험하지 않을 정도의 바위타기는 정말 기분이 좋다.
옆쪽으로 육봉을 기어오르는 사람들의 무리가 보인다.
육봉으로 갔으면 우리도 저 사람들 사이에 끼어 있겠지.
순간순간 바짝 긴장을 하고서.
가끔 그런 긴장과 스릴이 필요하기는 하다.
감각을 잊지 않기 위해서라도.
가다 보면 쉴 곳이 많다고 이야기를 하면서 손짓을 하니 그러면 또 쉬어가야 한단다.
바위에 앉아 구운계란을 먹으며 새소리를 듣고 있자니 아래에서 사람들 목소리가 들린다.
10여명이 떼를 지어 오는 모양인데 하필 우리가 쉬고 있는 곳에서 멈춘다.
오늘 이 코스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이다.
한두 명이 안내를 해서 온 모양이다.
그 사람들이 먼저 출발하고 가기로 했다.
시끄러운 것을 피해서.
이런 여유 정말 좋다.
이런 날씨에는 산에 오래 있어야 건강이 좋으니까 그렇게 하자고요.
이야기꽃을 피우다가 다시 몸을 일으켠다.
그러고 보니 마당바위도 안 왔다.
적당히 땀을 흘리면서 걷는다.
매주 산에 다녀도 오르막길에서는 다리가 아프고 숨이 차다.
그렇게 열심히 올라갔더니 마당바위에서 단체사진을 찍으려고 앞서간 사람들이 모여 있다.
우리가 오기를 기다렸단다.
플래카드를 앞에 드리웠기에 보았더니 "Since ~~~' 어쩌구저쩌구.
언뜻 보고는 역사가 오래된 산악회인가 보다 했더니만 올해 만든 따끈따끈한 산악회였네.
열의가 팍팍 느껴지는 듯하다.
이번에는 우리가 앞장서 오른다.
바위를 박박 기어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니 많이 올라오기는 했네그려.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이다.
며칠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어서인지 스모그선이 사라졌다.
내일 비가 온다고 해서 날씨가 흐려지고 있으니 전체적으로 뿌옇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만하면 다행이지.
5분 전 12시이다.
육봉능선의 3봉으로 가는 길과 관양능선으로 가는 갈림길이다.
우리는 오늘 '놀멍 걸으멍' 하기로 했으니 관양능선으로 갈 예정이다.
그러면 힘든 길은 다 끝났으니 여기쯤 자리를 잡고 점심을 먹을까나.
주변을 둘러보다 소나무 그늘에 자리를 잡는다.
셋이 오붓하게 모여서 가져온 음식을 꺼내니 술은 비교적 약소한데 다른 음식은 많네.
얌냠쩝쩝, 먹고 마시는 시간은 늘 즐겁지.
물론 운동한 양보다 먹고 마신 양이 더 많으면 문제이기는 하지만.
오후 1시,이제 내려가는 길에 접어들어야지.
관양능선으로 가는 길에 눈으로 보기에는 어마어마한 치마바위(?가) 드리워져 있으니
박총무는 깜짝 놀란다.
그런데 옆으로 술쩍 돌면 되거든요.
관양능선에 접어드니 '아점'을 먹고 삼삼오오 짝을 지어 느지막히 올라오는 사람들이 많다.
그 사람들을 피해 바윗길을 골라 가며 되돌아보면 바로 뒤에 쫓아오는 박총무와 고문님.
배가 나와서, 체중이 늘어서 등등 엄살을 부리는데 다들 잘 오시네요.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기다가 가끔 내가 온 길을 돌아보면 저 바위가 저기 있었나 싶게
우뚝 솟은 바위가 자리하고있다.
늘 내려가는 일에 바빠 제대로 살펴볼 일도 없었던게지.
건너편 능선에도 쌍둥이 같은 바위가 눈길을 끈다.
자주 다니는 관악산이지만 새삼스럽게 멋있다는 생각을 한다.
쉬지 않고 걸어 산길 옆에 자리잡은 노점을 지난다.
노점에서 커피와 막걸리 등을 파는데 노점 이름이 '복다방'이다.
이름은 좋네. 후후
물론 꿍짝꿍짝 틀어놓은 음악은 소음이 되고 있지만.
소음이 싫어 갈림길에서 현대아파트 방향으로 얼른 발걸음을 옮긴다.
너무 빨리 내려와서 숨을 돌릴 겸 나무그늘에 잠시 배낭을 내린다.
정말 물 한 모금 마실 틈도 없이 걸었다.
그늘이 반가운 계절이 돌아왔구나.
시계를 보고 다시 발을 옮긴다.
송회장님께서 뒤풀이에 참석하신다고 했으니 어서 가야지.
산행에 참석하시지 않은 것이 조금 섭섭하기는 하지만 뒤풀이 참석도 정성이다.
여름에는 아이스바를 파는 삼거리에 오늘은 장사가 없다.
오늘 같이 갑자기 더워진 날도 꽤 장사가 잘 되는 날일텐데...
한쪽에 몇 년전부터 자리한 '아무나 정원'은 올해 더 넓어졌다.
누가 가꾸는지는 몰라도 고마운 일이다.
누구든 쉽게 마음을 열도록 이름을 그렇게 지은 것 아닐까.
관양동 산림욕장에 도착하니 여기저기 보랏빛 현호색과 제비꽃이 한창이다.
참 다양한 들꽃들이 우리를 반겨주는 계절이다.
현대아파트로 내려와 입구 편의점에서 더위를 식힐 겸 맥주를 사서 얼른 목을 축이고
택시로 인덕원으로 이동했다.
송회장님께서는 벌써 와서 느긋하게 커피 한 잔을 즐기고 계셨다.
넷이서 근처 '유성통닭'으로 이동해 다시 맥주와 소주에 통닭과 산 이야기를 버무려
토요일을 즐겁게 마무리한다.
늘 그렇듯이 오늘도 잘 보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작은 화분에 어린참나무를 옮겨 심었다.
하하. 이번 가을에는 도토리 주우러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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