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산행기

해파랑길을 걷다 ( 9코스- 울산광역시)

솔뫼들 2015. 4. 19.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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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붕 너머에서 언뜻 두부집을 발견했다.

고문님께 두부전문점이 보이니 찾아보자고 말씀드리고 그쪽 방향 골목으로 들어갔다.

가다 보니 골목이 끝나고 담장 없는 집의 마당이 되었네그려.

우리 같은 사람들이 꽤 있는지 마당에서 해초를 손질하던 어르신께서 개인 집이고 길이 아니라고 한 마디 하신다.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고개를 드니 바로 앞이 우리가 찾던 음식점이다.

두부 전문점이니 오랜만에 두부요리를 맛볼 수 있겠구나 기대가 된다.

 

 

 음식점은 시골 노인들 일자리 창출을 위한 사회적 기업을 표방하고 있었다.

그 지역에서 난 콩으로 두부를 만들어 가족끼리 집에서 운영하는 음식점이다.

안으로 들어가니 세간살이가 눈에 들어오고 부지런히 움직이는 사람들 모습이 보인다.

한눈에도 村婦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모습이다.

 

 오후 1시가 가까워지는 시간임에도 사람들이 꽤 많아 빈 테이블이 거의 없었다.

자리를 잡고 7000원짜리 두부정식과 동동주 반 단지를 시켰다.

맛깔스런 음식이 차려지는데 대부분 주변에서 나는 색재료들로 만들어진 것들이었다.

말 그대로 'local food'구만.

보기만 해도 건강해질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두부도 근래 먹어본 것 중에서 최고였고,

미역 외에는 아무 것도 넣지 않은 것 같은데도 자꾸만 숟가락이 가서 미역국은 두 그릇이나 먹었다.

심지어 남은 음식을 재사용하지 않는다고 조금씩 담는 바람에 부족한 반찬을 여러 번 달라고 하기 미안할 정도였다.

그래도 싫은 내색 한번 없이 가져다주는 친절함은 그곳에 다시 가면 꼭 다시 찾아갈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거기에 또 동동주까지 입에 착 붙으니 어쩐다?

 

 기분좋게 점심을 먹고 나오니 한결 추위도 가신 듯하고 발걸음도 가볍다.

다시 해파랑길 안내 스티커를 따라 해안을 조금 걷자 산으로 오르는 길이 나타난다.

봉대산 산림욕장이다.

산에는 진달래가 한창이고 간혹 성격 급한 철쭉도 사이사이 피어 있다.

들꽃이 순서대로 피지 않는 걸 보면 올해도 계절이 정신없이 돌아간다는 반증이다.

아니 시간이 많이 흐르면 후세대는 본래 그러려니 여길지도 모르겠다.

 

 

 동네 사람들이 약수 뜨러다닐 것 같은 길이 이어진다.

역시나 나즈막한 산인데 계단길이 이어지다가 오래 된 낙엽이 발 밑에서 쿠션이 되어주는 길.

소화도 시킬 겸 가벼운 걸음으로 걷는다.

올라가 보니 예상하지 못한 늪지가 형성되어 있다.

산 위에 있는 연못을 보니 느낌이 다르다.

물 위로 파릇하게 올라온 풀이 싱그럽고, 물 속에서 금방 생명 있는 것이 꼬물꼬물거리고 움직일 것만 같다.

누가 여기까지 올라와서 연못을 훼손을 시키지는 않을테니 자연스럽게 생명이 살아 숨쉬는 생태연못이 되는 셈이네.

 

 

 근처에는 온갖 종류의 동백꽃이 한창이다.

흰색, 흰색과 빨강이 섞인 것, 연분홍빛, 그리고 가장 흔한 빨간색까지 어우러져 그야말로 동백꽃밭이다.

정열적인 빨간색도 좋지만 흰색은 정갈해서 좋고, '얼룩이'는 드문 것이라 또 눈길을 끈다.

연분홍빛 동백은 나도 처음 보는 듯해 반갑고.

 

 고문님께서 빛깔이 섞인 것도 동백인가 물으시다가 갑자기 동박새 이야기를 꺼내셨다.

나는 잊고 있었는데 동백꽃은 鳥媒花라는 사실과 동박새가 중매쟁이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내신 게지.

그러고 보니 이렇게 많은 동백꽃 사이에 작은 동박새 한 마리 보이지 않는다.

공연히 내가 섭섭해진다.

 

 

 

                                         어떻게 견뎌낸 외로움인데
                                         어떻게 다독여온 아픔인데
                                         어떻게 열어놓은 설렘인데
                                         어떻게 펼쳐놓은 그리움인데

 

                                          혼자 깊어지다
                                          뚝
                                          저를 놓아버리는 단음절 첫말이
                                          이렇게 뜨거운데
                                          설마 설마
                                          이게 한 순간일라구

 

                                             신병은의 < 동백꽃 지다> 전문

 

 

 

 

 동백꽃 사진을 찍다가 고개를 들어보니 고문님께서는 저만치 앞서가고 계시다.

앞쪽으로는 '望洋臺'라는 이름의 정자가 있고 정자에 대한 안내문이 붙어 있다.

울산목장지도(1872년, 고종 9년) 라는 고문헌에 과거 봉대산 이 지역을 망양대라 불렀다는 자료가 있어

옛 지명을 계승하고 큰 바다를 바라보는 좋은 명소라는 뜻에서 정자를 짓고 그 이름을 망양대로 칭한다고 했다.

잠시 망양대에 올라 심호흡을 하고 바다를 내려다본다.

 

 이제 주전봉수대를 향해 가는 길이다.

고려시대부터 이용되던 봉수대는 조선 세종 대에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긴박한 상황을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불을 피워 알리는 시설이 봉수대인데 멀리 알리기 위해 산 위에 자리하고 있다.

주전 봉수대는 왜구의 침략을 알리는 목적이 아닐까 짐작을 해 본다.

돌로 둥글게 쌓은 煙臺가 남아 있고, 바로 옆에 있는 봉호寺 자리에 봉수대 부속건물이었던 烽臺舍가 있었다고 한다.

 

 

 주변에서 멀리 바라보니 현대중공업이 한눈에 보인다.

울산 하면 떠오르는 것이 공업도시요, 그 중에서 현대중공업과 현대 자동차가 대표적이다.

두 기업에서 일하는 근로자만으로도 울산을 지탱하기에 충분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이다.

포스코와 더불어 우리나라 중공업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겠지.

마음이 든든해진다.

 

 작고 앙증맞게 서 있는 봉대산(해발 183m) 표지석을 지나 평탄한 길이 이어진다.

남목마성으로 가는 길은 임도이다.

가는 길에는 현대중공업에서 조성한 것으로 보이는 공원길이 이어진다.

아직 나무들 키가 작아서 이 공원도 만들어진지 오래 되지 않았구나 짐작을 하게 만든다.

기업이 자리잡은 지역에 기여를 하는 방법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임도를 따라 한참 걸었다.

그러자 길 한쪽편에 南牧馬城 안내문이 보인다.

馬城이란 말이 도망가는 것을 막기 위해 목장 둘레를 돌로 막아 쌓은 담장을 이른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쓸 말을 기르기 위해 주로 해안가와 섬에 목장을 설치했는데 여기도 그 중 한곳이었다는 것이다.

강화도 등 서해안 몇몇 곳에서도 조선시대 목장이 있었다는 곳을 본 적이 있다.

여기는 지명이 본래 '南木'이었는데 목장이 설치되었기 때문에 '南牧'으로 한자가 바뀌었다고.

 

 

 그래도 눈으로 확인을 해야 한다면서 마성이 있었다는 곳으로 올라간다.

마성이 있었다는 곳은 너른 평지에 쌓았던 돌이 무너져 모르고 본다면 그저 돌무더기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구나 여길 것 같다.

눈앞에 펼쳐지는 장면만으로는 馬城이 있었다고 믿어지지 않지만 머리 속으로 갈기를 날리며 달리는 말을 상상해 본다.

그리고 눈을 가늘게 뜨고는 말이 달릴 수 있을 만큼 널리 시선을 준다.

 

 길이 내리막길이려니 했는데 조금 가다가 다시 본격적인 산길이다.

그리 높지는 않지만 오르락내리락 길이 이어진다.

노래를 들으며 운동 삼아 뛰어 올라오는 사람이 있는 걸 보니 동네가 멀지 않은가 보다.

급경사 내리막길에서 나무 뿌리에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조심을 하면서 내려가니 남목 소공원이 나왔다.

 

 

나즈막한 동네 야산이다 싶었는데 이곳에서도 멧돼지가 출몰하는지 멧돼지를 만났을 때 대처요령이 적힌 안내문이 보인다.

그러고 보니 지난 늦가을 삼척에서 멧돼지 삼형제가 나란히 걸으며 나를 힐끔힐끔 바라보던 기억이 난다.

맹수라도 어리면 귀엽다는 생각이 드는 장면이었지.

 

 여기서부터는 도심길이 이어진다고 한다.

그런데 고문님께서는 오늘 일정을 여기에서 접자고 하신다.

지금 시간이 오후 2시 30분인데 조금 더 가도 되지 않겠느냐고 하니 더 가면 상경하는 대중교통편이 불편해진다고 하신다.

하기는 어제와 그제 이틀 내리 무리를 했으니 오늘은 가볍게 끝내도 되리라.

 

 

 현대아파트를 따라 내려가자 남목시장이 시끌벅적 소란스럽다.

사람 사는 동네라는 느낌이 물씬 든다.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시외버스터미널 가는 버스정류장으로 향한다.

 

 버스를 타고 창 밖을 바라보니 교대 근무를 하러 가는 사람들인지 자전거 무리가 이어진다.

여기는 울산, 명실상부한 '현대'의 도시임을 확인한다.

다음에 울산에서는 질리도록(?) 현대중공업과 현대자동차 관련된 것들을 보면서 걷겠지.

포항에서 포스코 관련된 것들을 한 나절 보았던 것처럼.

자리에 앉아 커다란 배낭을 끌어앉고 꾸벅꾸벅 조는 내 모습이 풍경이 되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