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산행기

오어사 가는 길

솔뫼들 2015. 4. 7. 0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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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오어사 가는 길을 묻는다면
마음이 내어주는 길을 따라가야 한다고 말해주리라

때가 되면 갈아야 하는 소모성 부품처럼
벌써 삶에서 너덜거리는 정체불명의 소리가 들려오고
일박의 한뎃잠으로도 쉽게 저려오는 가장의 등뼈

점점 멀리서 보아야 선명히 보이는 두 눈과
여기저기 돋아나는 불가항력의 흰머리카락
폄이 있으면 굽힘도 있음을 아는 굴신(屈伸)의 세월이 찾
아와
아침 술국의 뜨거움도 가슴속에선 서늘해지는
어느 새 그런 나이에 접어들었네

오래지 않아 불혹의 생이 찾아오려니
벼랑 사이 외줄에도 기우뚱거리지 않고
한 점 미혹 없이 걸어갈 수 있으랴
오전이 다 지나가고 오후의 시간이 시작되는 꽃밭에서
나는 어떤 향기와 색깔로 다시 피어날 수 있으랴

지치고 남루한 육신 자루를 동해 바닷가에 널어놓고
마음의 물고기를 따라 오어사 찾아가는 길

불혹 지나 지천명, 지천명 지나 이순
세월의 물살 유유히 헤엄쳐
저물기 전에 산문에 닿을 수 있다면
오어사 대웅전 빗꽃살 문양의 연꽃처럼
고색과 창연으로 나는 활짝 피어날 수 있으려니

누가 오어사 가는 길을 묻는다면
싱싱히 살아 앞장서는
내 마음의 물고기 한 마리 보여주고 싶네

 

   정일근의 < 누가 오어사 가는 길을 묻는다면> 전문

 

 오어사에 가기로 했다.

해파랑길을 걷는 동안 한번도 옆길로 샌 적이 없는데 이번에는 마음 먹고 오어사에 가 보기로 했다.

포항 지도를 들여다보다가 오어사가 포항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내고는

문득 오어사에 가 보고 싶어졌다.

오래 전 어떤 책에선가 오어사에 관한 전설을 보고는 혼자서 키득키득 웃은 적이 있었지.

그래서 더욱 기억에 남는 절이다.

 

 포항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오천 가는 버스를 타고 시간을 절약하려고 중간에 택시로 갈아탔다.

대중교통으로는 접근성이 떨어지는 것이 단점이구만.

택시를 타니 바로 오어사 앞 주차장에 도착했다.

일요일이라서인지 등산객을 포함해 봄 나들이를 나온 사람들로 인해 그리 넓어보이지 않는 공간이 북적거린다.

나도 슬쩍 사람들 사이에 섞여 든다.

 

 

 吾魚寺는 雲梯山 자락에 자리잡고 있다.

운제산이라는 이름은 원효대사와 자장율사가 포교할 때

계곡을 사이에 두고 두 암자가 기암절벽에 있어서 내왕이 어려우므로

구름다리로 서로 오갔다 하여 붙은 이름이라고도 하고,

신라 제 2대 남해왕비 운제부인의 성모단이 있어서 붙인 이름이라고도 한다.

 

 

 오어사 앞으로는 오어池가 있다.

절 앞을 감돌아가는 계곡물과 절이 어울려 빚어내는 풍경이 사르르 가슴에 안긴다.

출렁다리인 원효교를 건너 오어지 둘레길을 산책하려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연못을 건넌다.

햇살을 받은 오어지 물빛이 금방이라도 통통 튀어오를 것만 같은 날이다.

 

 일단 오어사를 먼저 탐방하기로 했다.

신라 고승 원효(元曉)와 혜공(惠空)이 함께 이곳 계곡에서 물고기를 잡아먹고 방변(放便)하였는데,

물고기 두 마리가 나와서 한 마리는 물을 거슬러올라가고 한 마리는 아래로 내려갔다고 한다.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물고기를 보고 원효와 혜공이 서로 자기 고기라고 하였다는 설화에 의하여 '오어사'라 하였다는 전설이 전해져 온단다.

 

 

 오어사는 생각보다 절이 작고 아담하다.

이름난 절들이 대개 중창불사를 통해 규모를 키운데 반해 운제산 자락에 소박하게 자리잡은 오어사 모습에 더 정감이 있다.

대웅전의 퇴색된 단청이 고색창연한 느낌을 살려주고 마당 한켠에서 금방이라도 종이 뎅뎅 울릴 것만 같은데 천년고찰임에도 사람을 위압하는 느낌이 없다고나 할까.

 

 

 마당에 있는, 스님이 앉아계신 모습의 감로수 내려오는 조각은 털모자에 목도리를 하고 계시네.

봄볕 아래서 보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덥게 느껴져 피식 웃으며 모자를 벗겨 드리고 싶었다.

빨갛게 꽃을 피운 동백이 절집 마당 한쪽을 장식하고 있는 곳에서

몇 발자국만에 오어사를 돌아보고 자장암에 오르기 위해 발길을 돌린다.

  

 

 

 오는 택시 안에서 멋쟁이 여성 택시 기사는 자장암 오르는 길이 가팔라 힘들다고 겁을 주었다.

미리 마음을 굳게 먹어서 그런지 땀을 줄줄 흘리면서도 쉬지 않고 줄곧 오른다.

하기는 거리는 겨우 150m밖에 안 된다고 써 있으니까 잠깐 올라간 것이 맞겠다.

분홍빛 진달래가 환하게 밝혀주는 길에서 기분이 한껏 고조되었다.

 

 자장암은 자장율사가 세운 기도도량이란다.

자장암에서 땀을 식히며 내려다보니 잠깐 올라왔음에도 발 아래 오어지도, 오어사도 까마득하다.

이런 곳에서 수도를 하면 중생과 도리어 멀어지지 않을까 엉뚱한 생각을 한다.

대웅전과 요사채로 이루어진 암자를 둘러보고 부처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다는 곳으로 가서 두 손을 모은다.

마음이 차분해진다.

 

 

 이제는 원효암으로 가기 위해 산길을 내려간다.

올라올 때는 그리 헉헉댔는데 간사하게도 내려갈 때는 숨 몇 번 몰아쉬니 금방이다.

오어사 담장을 따라 걷다가 영 부실해 보이는 다리에 섰다.

물에 비친 바위벽과 자장암의 모습이 사람들을 끌어들여 여기저기서 셔터 누르는 소리가 바쁘다.

나도 물과 나무와 암자가 만들어내는 풍경에 빠져 쉽사리 발길을 옮기지 못 했다.

누가 내 발목을 잡기라도 하는 것처럼.

 

 

 원효암으로 오르는 길도 그리 만만치는 않다.

하기는 원효대사를 만나러 가는 길이 너무 쉬우면 안 되겠지.

그래도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대단한 눈요깃거리 하나 없는 암자를 향해 구슬땀을 흘린다.

가는 동안 약수로 목을 축이면서.

 

 원효암은 자장암보다 더 검박한 느낌이 든다.

맞배지붕을 이고 누구의 글씨인지 한글로 투박하게 원효암이라고 쓰인 현판이 친근하게 다가온다고나 할까.

단청도 안 한 건물에 격자무늬의 유리문으로 이루어진 정면 모습도 군더더기 하나 없이 수수하기 이를데 없다.

오어사나 자장암이나 원효암이나 모두 비슷한 느낌을 주는 것이 바로 그 소박함 때문 아닐까.

 

 

 내려가는 길로 접어들었다.

내려가는 길에 잠시라도 오어지 둘레길을 걸으며 건너편에서 바라보는 자장암과 오어사 풍경을 즐기고 싶어졌다.

오늘은 다른 일정을 포기했으니 운동도 할 겸 계곡을 건너 샛길로 가 보아야지.

 

 그런데 가다 보니 길이 사라졌다.

정신을 차리고 오던 길로 되돌아가 갈림길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에게 물으니

올라가다 보면 내려가는 길이 왼쪽으로 있단다.

등산을 하려던 것은 아닌데 본의 아니게 등산을 하게 되었다.

 

 

 배낭이 무거워 다시 뻘뻘 땀을 흘리며 낯선 산길을 걷는다.

진달래꽃길이 이어지는데 길을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인지 신경이 쓰여 즐길 여유가 없다.

몇 번이나 산길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가며 삼거리 쉼터에서 다시 오어지 옆길로 내려섰다.

오어지 둘레길 안내판을 자세히 살펴보지 않아서 오어지 둘레길은 무조건 오어지 둘레만 따라 걷는 줄 알았는데 일부 구간은 산길을 걷는 길이었다.

결국 다시 출렁다리 원효교를 건너 오어사 주차장에 도착했다.

 

 재미있는 전설을 간직한 운제산, 오어사를 뒤로 한다.

일요일이라 사람들이 많아서 고즈넉한 분위기를 즐기지는 못 했다.

다시 한번 기회가 된다면 가을에 오어사를 찾고 싶다.

오어지에 비친 단풍과 운제산에 깃들인 암자까지 곁들여 저절로 마음이 가라앉을 것 같다.

절집 분위기가 그야말로 요즘 세상과는 멀게 느껴지는 곳이다.

 

 

 이제 버스를 타기 위해 내려가야 한다.

올 때는 택시를 탔으니 쉬웠지만 부지런히 내려가야 어둡기 전에 구룡포로 이동을 한다.

차도를 따라 걷는 길은 그다지 좋지 않다.

좁은 길에 자동차가 지나가면 수시로 비켜 주며 걸어야 하는 길이다.

버스 정류장에서 자동차도 못 올라오게 하면 더 여유있고 한가한 분위기에 젖을 수 있을텐데 자동차 교행도 안 되는 좁은 길 옆으로 주차를  해 놓아 사람 다니기가 여간 불편한게 아니다.

그래도 인공적인 맛이 더해지지 않은 오어지를 바라보며 걷는 길이라 기분이 그리 나쁘지는 않다.

 

 얼마쯤 걸었을까?

버스가 드물게 있다고 해서 혹시나 바로 버스가 출발했을까 봐 노심초사하며 걸음을 재촉했는데

운이 좋게도 시동을 건 버스에서 2분 후에 출발한다는 말이 들려온다.

잠시 화장실에 들렀다가 부리나케 버스에 오른다.

열린 버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봄 바람이 상큼하게 뺨을 간질인다.

성급하게 날리는 벚꽃잎이 아쉬운 봄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