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3시 40분, 드디어 호미곶이다.
새천년기념관이 바로 앞에서 맞아준다.
이름만 들어본 호미곶에 오니 감개무량하다.
그런데 손을 들고 있는 조각은 어디 있지?
마음이 먼저 달려간다.
가는 길에는 영일만을 알리는 노래비가 서 있다.
'영일군민의 노래'와 '영일만 친구'가 씌어 있다.
아하! 포항을 대표하는 브랜드 이름이 '영일만 친구'였지.
최백호의 노래 '영일만 친구'를 나도 모르게 입 속으로 중얼거린다.
바닷가에서 오두막집을 짓고
사는 어릴 적 내 친구
푸른 파도 마시며 넓은 바다의
아침을 맞는다
누가 뭐래도 나의 친구는
바다가 고향이란다
갈매기 나래 위에
시를 적어 띄우는
젊은 날 뛰는 가슴 안고
수평선까지 달려나가는
돛을 높이 올리자 거친 바다를
달려라 영일만 친구야
갈매기 나래 위에
시를 적어 띄우는
젊은 날 뛰는 가슴 안고
수평선까지 달려나가는
돛을 높이 올리자 거친 바다를
달려라 영일만 친구야
영일만 친구야
최백호 작사,작곡 < 영일만 친구 >
깔끔하게 포장된 도로를 따라가자 바다와 닿는다.
바다는 어느 때보다도 더 매섭게 파도를 쳐댄다.
정말 무섭다는 말이 실감난다.
바람에 맞서며 길을 걷다 보니 가로등에 호랑이 모양의 한반도 지도를 만들어 붙여 놓았다.
아하! 虎尾串이 호랑이 꼬리를 뜻하는 것이었구나.
한자를 알고 나니 금세 뜻을 알게 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러고 보니 여기저기 호랑이가 눈에 띈다.
금세 호랑이의 포효가 들릴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생각해 보니 내가 호랑이 꼬리에 서 있다는 말이다.
지도를 보면서 새삼스럽게 작은 땅덩이지만 호랑이의 기개가 느껴질 것 같다.
일제강점기 일본이 한반도 모양을 호랑이가 아닌 토끼라고 했다고 했다던가.
우리나라가 호랑이가 아닌 토끼이기를 바라고 한국인에게 약자의 심리를 세뇌시키려 했겠지만
그 모든 것을 이겨내고 지금 우리는 세계로 도약해 일본을 위협하는 나라로 성장했으니 일본인들이 그런 생각을 했을 법도 하다.
여기에서 해파랑길 15코스가 끝나고 14코스가 시작된다.
종일 산길만 걸었는데 여기서부터는 다시 바닷길로 이어지는 모양이다.
참 희한하게도 오랫동안 바다를 만나지 못 하면 허전해지는 증상이 생겼다.
해파랑길 걸으면서 생긴 증상이다.
평소에 바다와 먼 곳에서 살다가 해파랑길 걸으면서 자주 접해서 그만큼 바다와 친해진 것이겠지.
호미곶은 관광지답게 평일임에도 사람들이 꽤 많다.
소년상과 문어상 앞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 사이에 나도 끼어 사진을 찍었다.
가만히 서 있기조차 힘든 바람을 맞으며 이번에는 손 조각이 있는 곳으로 이동한다.
역시나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다.
호미곶을 확실하게 인증하는 것이 바로 이 조각상 아닐까?
조각상에는 '상생의 손'이라는 제목이 붙었다.
손이 안으로 오므려져 있는 모습이 무언가를 감싸안는 느낌이 든다.
새천년기념관 앞에 있는 손 조각상과 마주보고 있는데 서로 짝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언제 또 올까 싶어 여러 번 셔터를 누르느라 바쁘다.
호미곶은 한반도 最東端에 위치하고 있어 우리나라에서 해가 가장 먼저 뜨는 곳이란다.
우리가 걸어온 동해안 여러 도시들이 다 해맞이 명소를 자랑하고 있지만
호미곶이 당연히 우선 순위에 들지 않을까.
해마다 새해 첫날이 되면 일출을 보며 소원을 빌려는 사람들로 붐비는 이유일 것이다.
많이 걷고 바람에 시달려서인지 그만 쉬고 싶다.
바람도 차고 바람을 피할 곳도 마땅치 않아 결국 분위기 좋은 커피숍에 들어갔다.
전망 좋고 친절한 커피숍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며 따뜻한 차를 마시니 한결 피로가 풀린다.
시장기를 달랠 겸 어제 사둔 빵도 우적우적 먹는다.
그렇게라도 보충을 해야 남은 시간 견뎌내겠지.
한동안 쉬고 피로가 좀 풀렸다 싶어 다시 몸을 일으킨다.
바다에는 역시 엄청난 파도가 층층이 몰려온다.
때로는 한 척의 배 모양 같기도 하고,
때로는 갈기를 휘날리며 달리는 白馬 같기도 하고,
때로는 눈보라가 치는 것 같기도 하고...
파도가 이는 모습이 두려우면서도 매혹적이어서 한참 바라보고 서 있었다.
이제 구룡포 방향으로 걷는다.
아무도 걷는 사람 없이 우리만 앞을 보고 걷는다.
파도 소리에 묻혀 다른 소리는 하나도 들리지 않는다.
갈매기조차 험악한 파도를 피해 바닷가에 설치한 난간에 나란히 앉아 있다가 우리가 다가가면 푸드득 날갯짓을 한다.
무심코 걷다 보니 재미있는 안내문이 보인다.
퓨전화장실이란다.
재래식과 현대미를 조화시켰다는 설명에 궁금해 슬쩍 들어가 본다.
다듬지 않은 통나무로 만든 것이 눈에 들어온다.
시골집 나무대문처럼 잠금장치를 밀어서 하는 것 같은데
사진을 찍으려고 하니 카메라에 문제가 생겼다.
아쉬운지고.
날씨가 오후 들어 많이 풀린 듯 싶다.
그러니 마음도 덩달아 여유가 생긴다.
길 옆으로 있는 색색의 멋진 숙소도 볼거리가 되고,
개인 별장으로 보이는 집의 바다로 난 정원도 한번 쳐다보고,
그러다가 다시 무작정 달려오는 파도의 움직임에 눈길을 주고,
파도가 햇빛과 만나 만들어내는 무지개 빛깔을 황홀하게 바라보기도 하고...
가다가 보이는 것들을 이제는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는다.
마을이 나오니 오징어 말리는 모습도 있고, 통발을 높다랗게 쌓아 놓은 모습도 보인다.
바닷물을 끌어들여 물고기를 기르는 양어장도 있네.
언뜻 보면 물을 가두어 놓은 것이 염전 같아 보인다.
눈은 눈대로 바쁘고 발은 발대로 바쁘다.
오후 6시가 훌쩍 넘어 다무포에 도착했다.
여기에서 더 가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이리라.
마을 곳곳을 돌아보며 숙소를 알아보고 한 곳에 짐을 풀었다.
여기에도 숙소는 여러 곳이 있지만 막상 묵으려고 하니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갈 곳은 한 곳밖에 없다.
해파랑길을 걷는 동안 워낙 여러 숙소에 길들여져서 이제는 그저 편히 쉴 수만 있으면 불만을 갖지 않으려고 한다.
숙소 주인에게 음식점을 물어 주유소 인근까지 걷는다.
의외로 메밀국수를 전문으로 하는 음식점이다.
메밀전병과 메밀국수, 감자 옹심이를 시켜 맛있게 먹고 숙소로 돌아왔다.
오늘 생각보다 많이 걸었는데도 다리가 심하게 아프지는 않다.
오늘 걸은 거리가 무려 33km나 된다.
지금까지 걸은 거리 중 하루 걸은 거리로는 최고 기록이다.
무리했네그려.
내일은 조금만 걷자고 하며 잠자리에 든다.
눈이 실실 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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