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어사 입구에서 탄 버스는 오천에서 우리를 내려놓고 총총 떠난다.
여기에서 다시 남부보건소 가는 버스로 갈아타야 한다고 했다.
다행히 오래지 않아 버스가 와서 남부보건소 앞에 내리니 포스코 건너편이다.
매연만 마신다고 투덜거리면서 걸었던 곳이다.
맞은편으로 건너가 다시 버스를 기다린다.
5분여 기다리자 구룡포 가는 버스가 왔다.
사람이 많아 서서 가기는 했지만
50년만에 우연히 버스에서 만났다는 초등학교 동창생 이야기를 넘겨 듣는 맛에 슬며시 웃음을 머금고 다리 아픈 줄도 몰랐다.
인터넷에는 2시간 정도 걸린다고 했는데 버스를 오래 기다리지 않아서인지 1시간 조금 넘겨 구룡포에 도착했다.
지난 번에 구룡포에 왔을 때 근대문화역사관과 적산가옥이 남아 있는 거리만 둘러보고 서둘러 죽도시장으로 이동했는데 구룡포항 주변 풍경을 구경하니 새삼스럽다.
항구라 지저분할 것 같았는데 깨끗하게 정비가 되어서 산책 삼아 걸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구룡포를 대표하는 과메기를 알리는 안내碑도 있고, 그물을 끌어올리는 어부의 모습을 형상화한 작품도 있다.
바다를 터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느껴지는 공간이다.
주변을 한 바퀴 돌아보고 친구가 추천해준 식당을 찾아본다.
'까꾸네 모리국수'라 했던가.
대를 이어서 한다는데 모리 국수라는 이름이 낯설다.
배에서 잡은 생선을 모두(모다; 사투리) 넣고 끓인 것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고, 모두 모여 먹는다는 의미도 있는 모양이다.
좁고 허름한 집이지만 그 분위기와 맛에 반해 시를 써서 노래한 시인도 있으니 한번쯤 가볼 일이다.
골목 어귀 어떤 횟집에서도 사용하고 있는 걸 보면 심지어 '모리국수'가 고유명사가 아닌 일반명사로 변하고 있는 느낌도 든다.
골목을 찾아 들어가자 좁은 공간에 둥근 테이블이 달랑 4개인 식당이 나타났다.
그런데 먼저 와서 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이 있으니 예약하고 기다리는 사람이었다.
문 앞에서 쭈뼛거리고 서 있기를 20분쯤 했을까?
자리가 나서 들어가 앉으니 뒤이어 해병대 대원들이 들어온다.
얼른 합석을 권하고 함께 둘러앉았다.
고문님께서 막걸리를 한 병 시켜 드신 다음 막걸리가 떨어졌다고 해서 소주를 시켜서 한 잔 드시고 해병대 대원들에게 권하셨다.
막 여드름이 들어간 것 같은 어린티가 나는 해병대원들은 국수가 양이 적을 것 같아 그랬는지 김밥을 한 줄 사 가지고 와서 안주 삼아 먹는다.
그러다가 주인장 할머니한테 한 말씀 들었다.
한창 나이 군인들이 오면 발 뻗고 편안하게 사는 게 고마워서 두 사람이 와도 세 사람분을 해 주는데 왜 쓸데없이 김밥을 사 오느냐고.
불친절해 보이던 할머니 속 깊은 말씀이 내게도 감동이다.
모리국수는 여러 가지 해물과 생선을 넣고 고추장을 풀어 얼큰하게 끓인 국수이다.
엄청난 크기의 양푼에 주는데 아무리 먹어도 양이 줄지를 않네그려.
웬만하면 음식 쓰레기는 남기지 않으려 하는데 도무지 안 되겠다.
할머니 손이 너무 크십니다그려.
해병대원들과 저녁을 먹으며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고문님께서 그 친구들의 음식값까지 계산을 해 주셨다.
주인 할머니는 공연히 미안해 하시는데
양에 비해 비싸지 않고 여러 명이 먹을수록 값이 싸지는 - 2인분은 12000원, 3인분은 16000원... - 인간적인 가게이니 이래저래 마음이 푸근해졌다.
저녁을 먹은 후 숙소를 정해 짐을 푼 다음 구룡포 시장 구경을 하기로 했다.
멀 것 같았는데 운동 삼아 걸으니 금방이다.
대부분 가게가 문을 닫아 대충 훑어보고 친구가 이야기해 준 다른 가게를 찾아본다.
단팥죽과 찐빵이 유명하다 했는데 혹시나 배가 부르니 맛만 볼 수 있을까 하고.
그런데 몇 번 갔다가 허탕을 쳤다는 친구 말대로 구룡포초등학교 앞에 있는 '철규분식'은 일찌감치 문을 닫았다.
하기는 까꾸네 모리국수 할머니들도 오후 7시면 문을 닫는다고 했다.
얼마나 인간적인가.
나도 고향 어머니댁에 갔을 때 밤 10시에 저절로 잠자리에 들게 된 걸 생각하면
도시가 사람들을 야행성으로 만들어 놓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여기는 시골이니 우리도 여기 시계에 맞춰 자야 할 시간이다.
그만 들어가 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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