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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의 위대한 영혼

솔뫼들 2012. 4. 6.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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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큐멘터리 제작자가 쓴 책이라고 했다.

한반도에서 사라진 호랑이를 찾아 시베리아를 누빈 저자의 발품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책이라는 소개도 읽었다.

무조건 괜찮은 책이겠거니 하는 신뢰가 갔다.

책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아껴서 천천히 읽고 싶기도 했고, 다음 일이 궁금해서 초조해지기도 했다.

그러면서 훌륭한 다큐멘터리 한 편이 제작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노고가 들어가는지 새삼스럽게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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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처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나무처럼 한 곳에서 가만히 침묵하고 기다리면 자연의 내밀한 곳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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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송이가 똑바로 떨어져 내리면 고요다. 눈송이가 나풀나풀 떨어지면 실바람이다. 얼굴에 바람이 느껴지고 눈송

이가 비켜 내리면 남실바람이다. 참나무에 매달린 마른 나뭇잎이 살랑살랑 흔들리며 눈송이가 휘날리면 산들바람

이고, 마른 나뭇잎뿐 아니라 작은 가지까지 흔들리고 바닥에 내린 눈송이가 다시 날아오르면 건들바람이다. 작은

나무 전체가 흔들리며 그 우듬지에 쌓인 눈더미가 날아가면 들바람이고, 큰 가지가 흔들리며 숲이 전깃줄처럼 울

면 된바람이다. 큰 나무 전체가 흔들리고 눈이 수평으로 내리면 센바람이고, 가느다란 가지들이 부러져 날아가고

바닥에서 눈가루가 온통 날아올라 시계가 짧아지면 큰바람이다. 큰 가지가 부러져 날아가고 바다에서 용오름이

일어나면 큰센바람이고, 나무가 뿌리째 뽑히고 숲이 뒤집히면 노대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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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복은 인생에서 중요한 것과 사소한 것을 구분해 준다. 세상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여기서는 사소하고,

세상이 사소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여기서는 중요하다. 본질적인 것과 표피적인 것, 알맹이와 껍데기, 논픽션과

픽션의 차이를 알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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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아도 감지 않은 듯 의식이 또렷하다. 날이 밝으려면 아직 멀었다. 나갈 수만 있다면 바다 속에라도 뛰어 들

어가 엉엉 울고 싶었다. 얼어붙은 비트 안에서 나를 얼어붙게 만드는 것은 맹수나 절대온도 같은 물리적인 것에 대

한 두려움이 아니라 홀로 있다는 고독감이었다. 호랑이라는 종족은 어찌 저리도 고독을 즐기며 홀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인지... 고독을 이기지 못하는 데서 오는 불안과 호랑이를 기다리고 싶은 열망 사이에서 나는 갈팡질팡했다. 이 고

독이 누구를 위한 고독이며 무엇을 위한 고독인지, 비트를 뛰쳐나가 세상으로 나가면 그 세상의 고독은 또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 나는 생각하고 달래며 나 자신을 추슬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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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도, 호랑이를 기다리는 사람도 감동적이다.

그런 노력이 있었기에 신출귀몰하는 호랑이의 모습을 담을 수 있었으리라.

게다가 저자의 필력 또한 사람을 빨아들이게 하는 매력이 있다.

이래저래 며칠 푹 빠지게 한 책 덕분에 행복했다.

이런 사람의 열정과 노력에 힘입어 시베리아의 호랑이가 수를 늘려나가고 머지 않은 미래에 우리 한반도에서도

그 우렁찬 포효소리를 들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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