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가끔씩 학창시절 친구 이야기를 하셨다. 방앗간을 했더랬지. 그래서 친구 집에 놀러 가면 방앗간이 소란스러워 늘 밖으로 불러내어 이야기를 하곤 했다고. 그 친구를 나이가 들수록 더 보고 싶다고.
어떻게 하면 어머니 친구분을 찾을 수 있을까 고민을 하다가 또 어렵사리 아는 분께 부탁을 드렸다. 성함과 연세, 고향 등등 간단한 사항만 알려드리고 연락을 기다렸다. 고맙게도 바로 다음날 비슷한 분의 주소를 알아냈다는 연락이 왔다. 며칠만 더 기다리면 당사자인지 알 수 있으니 우리 어머니 성함을 알려주면 확인이 가능할 것 같다는 말과 함께.
며칠을 기다렸다. 아직 확인된 것은 아니니 어머니께 말씀을 드리지 않은 채. 기다리라고 했으니 답답해도 재촉을 할 수도 없고 부탁을 한 처지에 무작정 기다리는 수밖에 다른 수가 없겠다 싶어서 그렇게 며칠을 보냈다. 그러다가 생각해 보니 주소가 있으면 요즘 같은 시대에 웬만하면 찾을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주소도 알았는데 그저 기다리기만 하고 다른 사람 손을 비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고.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판다고 지난 월요일 마음을 먹고 주소를 쓴 종이와 어머니 친구분 성함을 적은 메모지 달랑 한 장 들고 수원으로 갔다. 오다가다 들른 적은 있지만 수원과 특별한 연고가 없어 나는 수원 지리를 모른다. 지도에서 확인한 바에 따르면 그 동네가 수원역 근처에 자리잡고 있으니 멀지 않아서 다행이다 싶기도 했다.
수원역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그곳으로 가는 버스 노선을 물으니 걸어서 갈 수 있다는 답변이 돌아온다. 20여 분 정도 걸려 그 동네 입구에 도착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부동산에 들어가 주소를 대니 요즘은 산 번지가 없단다. 어디가 전에 산 번지였는지 자신들도 모른다고. 생각해 보니 아무래도 동사무소를 찾는 것이 빠를 것 같아 동사무소 위치를 확인하고 무작정 걸었다. 버스 노선도 없고, 택시도 눈에 안 띄는 이상한 동네라는 생각을 하면서.
땀을 비질비질 흘리며 동사무소를 들어가니 이런 사실을 어디에 문의해야 할 지 알 수가 없다. 대부분의 공무원들이 친절해졌으니 산 번지가 어떻게 변했는지 정도는 쉽사리 알 수 있겠다 싶었는데 자기네도 모른단다. 아니 알면서도 가르쳐주지 않는다는 인상이 들었다. 그렇지만 어쩌랴. 이쪽저쪽 기웃대며 조금이라도 인상이 좋아보이는 사람을 찾아서 사정 이야기를 하니 도와주고 싶은 기색은 엿보인다. 사실 마음 먹고 알려주려면 알려 줄 수 있는 상황 아닌가. 60년 전 어머니의 학창시절 친구를 찾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함께 안타까워해 주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뿐이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개인정보 유출이라는 불법 행위가 되기 때문에 마음은 있어도 쉽게 도와줄 수가 없단다. 겨우 지도 한 장 확대 복사한 것을 들고 예전 산 번지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지역으로 또 걷는다. 날씨는 5월인데도 무자비하게 덥다. 거기에 생각보다 일이 안 풀리고 지친 상황이니 더욱 덥게 느껴질 밖에. 단독주택과 다세대주택이 밀집한 곳으로 가니 그 동네엔 무슨 일인지 부동산 업소도 없다. 아무래도 골목으로 들어가 그 동네에 오래 살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노인을 만날 수 있으면 다행이겠다 싶어 골목으로 접어드는 순간 내가 일을 부탁해서 연결된 분이 바로 같은 일로 어떤 집에서 나오고 있었다. 참 우연의 일치였다. 그 시간, 그 골목에서 만나다니...
반갑게 그간 사정 이야기를 듣고 알아온 주소로 찾아가니 굳게 문이 닫혀 있고 개만 요란하게 짖어댄다. 조그맣게 대문 기둥에 번지와 성함이 씌어 있는데 어머니 친구분 성함이 맞았다. 휴! 한숨이 나온다. 일단 집을 알았으니 나머지는 시간 문제이다. 잠깐 외출하셨으면 저녁에는 들어오실 테니까. 도와주시는 분께서 낯선 동네에서 헤매느라고 고생했겠다고 이제는 마음 편히 돌아가서 기다리라고 했다. 오래 걸은 데다 더위 때문에 지쳐서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래도 이 동네라는 사실을 알려준 동사무소 직원들이 고마워서 음료수 몇 개 사서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하루가 무척이나 길게 느껴졌지만 한 가지 숙제를 한 느낌으로 홀가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