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다 온 모양이다.
협곡이 보이기 시작한다.
평평한 바위 모양이 설교단 같다고 하여 'Pulpit Rock'이라 불리는 프레이케스톨렌.
정말 신기하게도 협곡을 향해 널찍한 바위가 우뚝 솟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지금도 1년에 1cm씩 내려앉고 있단다.
톰 크루즈가 나온 영화 '미션 임파서블 풀아웃'의 마지막 장면을 여기에서 찍기도 했다고.
일단 우리끼리 바위와 협곡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가까이 가면 혹시 위험할까 싶어 발끝이 조마조마하다.
이제는 옷깃을 잡으며 내가 친구를 말리는 상황이 되었네.
우리나라 같으면 이런 곳에 안전에 관한 안내문을 과하게 붙여 놓고 쇠줄로 가까이 가지 못하게 막아 놓았을 것이다.
노르웨이에서도 당연히 사고가 나겠지.
하지만 모든 것은 자신의 책임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말해 주고 있는 것 같다.
바람은 더 거세어졌다.
모자를 쓸 수 없는 상황이 되었고, 슬슬 추위마저 느껴진다.
어쩌다 보니 내 머리는 미친 사람처럼 되었다.
강하게 때론 약하게
함부로 부는 바람인 줄 알아도
아니다! 그런 것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길을
바람은 용케 찾아간다
바람길은 사통팔달(四通八達)이다
나는 비로소 나의 길을 가는데
바람은 바람길을 간다
길은 언제나 어디에나 있다
천상병의 < 바람에게도 길이 있다 > 전문
친구와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있는데 재미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사람들이 갈라진 바위틈 양쪽으로 다리를 벌리고 사진을 찍는 모습이었다.
장난기가 발동해 우리도 한번 해 보기로 했다.
우리가 너무 일찍 도착하는 바람에 '손' 이외에 일행이 없다.
서로 프레이케스톨렌 끝부분에서 사진을 찍어주기로 했다.
바위 끝에서 아슬아슬하게 찍는 사진을 위해 우리도 줄을 선다.
일행들이 모두 와서 사진을 찍는 걸 보고 우리는 바위 봉우리로 더 올라가기로 했다.
친구는 험한 길일까 염려를 하는데 올 때 보니 그리 위험한 길이 아니었다.
바위를 잡고 올라가야 하기는 하지만 우리나라 북한산이나 관악산에 비해서는 수월한 코스이지.
우리와 '손'이 바위 봉우리에 올랐다.
여기에서 보는 풍경은 또 다르다.
압도적인 풍광에 입이 딱 벌어진다.
프레이케스톨렌 곳곳에 있는 사람들이 정말 손톱만하게 보인다.
특별한 자세를 취하고 사진을 찍는 사람, 사진을 찍기 위해 줄을 서 있는 사람, 옹기종기 모여 점심을 먹는 사람 등등.
이런 광경 사진을 드론으로 찍으면 더 멋지지 않을까?
아래쪽 일행들이 모여 점심을 먹는 곳을 보고 손을 흔들었다.
인솔자가 올려다보기에 사진을 찍어달라는 손짓을 했는데 눈치가 없는 인솔자는 마주 손을 흔들곤 점심을 먹기에 바쁘다.
배가 고팠나 보군.
다시 내려가서 바위벽에 기대어 요기를 한다.
시간도 약간 이른데다 날씨도 안 좋아 가져온 견과류와 커피, 사과로 대충 때우고 하산길로 접어든다.
일행들이 다 내려갔으니 우리가 꼴찌가 되었군.
그래도 암봉에 올라갔다 온 건 잘한 일이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내려가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걸음이 빨라졌다.
더구나 날씨도 점점 안 좋아지니 얼른 내려가는 게 좋겠지.
추적추적 내리는 비에 바윗길이 미끄러워졌으니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자.
오늘도 넘어지면 정말 심각해질 수 있다.
중국통 자물통이 잔뜩 매달린 길을 지나갈 즈음 앞에서 오는 낯익은 분을 만났다.
코펜하겐 공항에서 만난 사람이다.
다 노르웨이 3대 트레킹을 하러 왔으니어디선가 만나려니 했더니만 여기에서 만나네.
한 분을 만났으니 다른 분은 뒤에 오고 계시겠군.
어찌 되었든 반갑다.
인사를 나누고 헤어져 걸음을 재촉한다.
날씨 때문에 다른 분들 속도가 늦어졌는지 일행을 모두 추월했다.
이왕 빨리 걷는 것 버스에 가서 쉬는 것이 낫겠다 싶어 앞만 보고 걷는다.
가다가 숨을 돌릴 겸 사방을 둘러보니 늪지에 어린 나뭇가지가 예쁘다.
날씨가 우중충한데도 이런 반영을 만들어내네.
아무리 갈 길이 바빠도 사진 한 장 찍어 줘야지.
내려가는 길에서는 아시아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났다.
산길이 시끌벅적하다.
중국 사람에 한국 사람에...
옷차림을 보니 관광차 왔다가 가장 쉬운 코스를 택해 트레킹을 즐기는 모양이다.
전 세계 언론들이 세계에서 가장 멋진 전망으로 손꼽은 곳을 보는 즐거움을 위해 궂은 날씨에 어려움을 감수하는 것이겠지.
오후 1시 20분, 어찌 되었든 다 내려왔으니 마음이 편안하다.
화장실에 들렀다가 버스에 올라 젖은 겉옷과 배낭을 빈 자리에 놓고 긴장을 푼다.
그러고 보니 배가 고프다.
배낭에서 뒤늦게 샌드위치를 꺼내 음료수와 함께 먹는다.
쉬는 동안 일행이 다 내려왔다.
이제 가이드와 작별할 시간이다.
오늘도 친절한 가이드는 시원한 맥주를 준비해 주었다.
고마운 일이다.
노르웨이에 좋은 인상을 심어준 가이드와 인사를 하고 버스는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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