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시

오늘의 시 - 매미에 대한 예의

솔뫼들 2024. 8. 26.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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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미에 대한 예의

                                             나희덕

 

17년 전 매미 수십억 마리가 이 숲에 묻혔다

그들이 땅을 뚫고 올라오는 해다

 

17년의 어둠을

스무 날의 울음과 바꾸려고

매미들은 일제히 깨어나 나무를 오르기 시작한다

 

그러나 나무에서 나무로 옮겨 앉을 뿐 멀리 날 수도 없어

울음을 무거운 날개로 삼는 수밖에 없다

 

저 먹구름 같은 울음이

사랑의 노래라니

 

땅 속에 묻히기 위해 기어오르는 목숨이라니

 

벌써 소나기처럼 후드득 떨어져내리는 매미도 있다

하늘에는 울음소리 자욱하고

땅에는 부서진 날개들이 수북이 쌓여 간다

 

매미들이 돌아왔다

 

울음 가득한 방문자들 앞에서

인간의 음악은 멈추고

숲에서 백 년 넘게 이어져온 음악제가 문을 닫았다

 

현(絃)도 건반도 기다려주고 있다

매미들이 다시 침묵으로 돌아갈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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