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산행기

스페인 돌아보고 포르투갈 찍고 (20) -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솔뫼들 2024. 6. 25.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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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녁을 먹고 나왔는데도 밖은 아직 환하다.

새벽에 출발하기는 했지만 포르투갈에서 톨레도를 거쳐 마드리드까지 왔는데도 해가 늦게 지니 하루가 저물지 않았다.

호텔 가기 전에 스페인광장으로 이동한다.

스페인에는스페인 광장이라는 곳이 여러 곳 있단다.

세비야에도 스페인 광장이 있었지.

 

스페인 광장에는 스페인 하면 떠오르는 작가 세르반테스 사후 300년을 기념하는 기념비가 서 있다.

거기에 세르반테스가 오른손에 책을 들고 앉아 있고.

세르반테스가 한쪽 팔이 없는 장애인이라는 사실은 처음 알았다.

세르반테스 상 앞에는 로시난테를 탄 돈키호테와 산초 판사의 모습이 보인다.

탑의 맨 꼭대기에는 '돈키호테'를 읽은 사람들이 지구를 떠받들고 있는 형상이라고 한다.

 

 

 우리는 '돈키호테'의 내용을 대충 안다.

하지만 제대로 번역된  '돈키호테'를 정독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나도 전에 독서모임을 하면서 읽을 기회가 있었는데 완역된 책이 워낙 두꺼워서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결국 여러 사람들이 고개를 갸우뚱하는 바람에 다른 책을 선정했었지.

우리가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을 제대로 읽지 않고도 내용을 아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세르반테스와 돈키호테에 나오는 인물상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함께 서 있는 일행 중에서 몇 명이나 제대로 '돈키호테'를 읽었을까 하는.

 

 저녁 먹은 걸 소화도 시킬 겸 거리를 걷는다.

선선하니 걷기에 좋다.

녹음과 꽃들이 적당히 어우러진 길이다.

어디를 가도 좋은 계절이기는 하지.

 

 

 이제 버스에 오른다.

호텔로 가는 길이다.

긴 하루가 저물고 있는데 인솔자가 우리가 좋아할 만한 정보를 준다.

내일이면 인천행 비행기를 타는 우리가 쇼핑하기 좋은 슈퍼마켓이 호텔 바로 앞에 있단다.

사람들이 좋아라 박수를 쳤다.

다 비슷한 심정이겠지.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방에 짐을 부려놓고 바로 슈퍼마켓으로 향한다.

슈퍼마켓이 꽤 커서 원하는 물건을 거의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일단 친구들 대부분 발사믹 식초, 와인, 치즈, 말린 과일 등을 산단다.

 

 

 희야는 스페인에 오면서부터 납작복숭아 이야기를 했다.

5월이 본격적으로 납작복숭아가 출하되는 철이기는 하지만 혹시나 먹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과일 매대를 볼 때마다 말을 했다.

그런데 그렇게 생긴 과일은 통 보이지를 않네.

나도 사실 납작복숭아가 어떻게 생긴 과일에 무슨 맛일까 궁금하기는 했는데 아쉽다.

물건을 고르면서도 식품 가격이 그리 비싸지 않아 기분이 좋다.

 

이것저것 고르며 다른 팀이 추천해주는 물건도 살펴보고 하다 보니 시간이 많이 흘렀다.

밤 9시에 문을 닫는다고 했는데 시간이 얼마 안 남았군.

서둘러 내가 고른 물건을 정리하고 계산을 한다.

다른 친구들은 나보다 훨씬 많은 물건을 골랐다.

가족에 형제, 친구들 것까지 챙기다 보면 그렇게 되겠지.

 

 쇼핑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오는 걸 본 인솔자가 슈퍼마켓을 다 털어 왔냐고 농담을 한다.

이미 그런 걸 수없이 봤겠지만 중년 남자 입장에서는 우리 쇼핑 목록이 봐도봐도 재미있을지 모르겠다.

방으로 들어와 짐 정리를 한다.

병이 깨질까 봐 옷으로 둘둘 말기도 하고, 상자가 부서질까 봐 다른 짐 사이에 조심조심 넣기도 하고.

미야 짐이 많아 캐리어에 다 안 들어가면 내 캐리어에 넣어줄 수 있다고 했더니 미야는 낑낑거리며 겨우 쌌단다.

아무튼 큰 문제 없이 이번 여행의 마지막 밤이다.

 

 짐을 정리했으니 이제 와인 마시며 하루를 정리할 시간이지.

희야와 지야가 우리 방으로 와서 마지막 와인 병을 땄다.

아직 남은 사과와 오렌지에 망고, 간식으로 가져온 것까지 안주 삼아 먹으며 무사히 여행을 마치게 된 것을 축하한다.

마지막 날이라서 기분이 좀 달랐는지, 아니면 내일 평소보다 1시간쯤  늦게 출발한다고 해서 여유가 생겼는지 우리는 밤 12시를 넘기면서까지 와인을 마시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근래 없던 일이다.

 

 씻고 침대에 누우니 이번 여행이 파노라마처럼 머리 속을 지나간다.

아프지 않고 잘 다녔으면 성공한 것이겠지.

희야는 톨레도가 가장 기억에 남는단다.

생각해 보니 나는 알함브라 궁전이 기억에 남는다.

궁전도 멋지지만 시에라 네바다 산맥을 배경으로 안온하게 자리하고 있던 알바이신 지구가 참 보기 좋았다.

그런 곳에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뒤에 만년설을 인 산이 있다는 것이, 그렇다고 그 지역 날씨가 아주 춥지도 않다는 것이 더욱 마음에 든 것일지도 모르겠다.

산은 늘 나를 설레게 하고, 내게 가까이 오라고 손짓해 부르는 것 같으니까.

 

 늦은 시간까지 있었는데도 다행히 눈이 감기고 잠이 온다.

무슨 꿈을 꿀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