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형!
이제 은수사를 향해 내려갑니다.
은수사는 그다지 크지 않은 사찰입니다.
은수사라는 이름 역시 이성계와 관련이 있군요.
이성계가 왕조 창업을 위해 기도를 하던 중 마신 샘물이 銀같이 맑아 銀水寺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샘물 옆에 있는 청실배나무는 이성계가 기도를 마친 증표로 심은 것이라고 하는데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사방을 둘러보면 이곳은 대단히 큰 뜻을 품지 않은 저도 기도를 드리고 싶어지는 공간입니다.
우뚝 솟은 두 바위봉우리 사이에 있어 신성한 느낌이 드는 곳이라 어떤 기도이든 이루어질 것 같다니까요.

샘터에서 은같이 맑은 물로 물통을 채우고 일어서니 샘터 옆에 섬진강 발원지라는 안내문이 보입니다.
아하! 여기가 그런 곳이었군요.
주변을 돌아보는데 무언가 포근하면서도 간지러운 느낌이 들어 올려다보니 만발한 배나무꽃이 저를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꽃그늘이 정말 깊습니다.
만개한 청실배나무 꽃그늘 아래 안락의자 하나 놓고 앉아 있노라면 세월 가는 줄 모르겠다 싶네요.
전에 왔을 때는 탑사만 다녀갔습니다.
탑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있는데도 이렇게 예쁜 이름을 가진 사찰을 그냥 지나쳤군요.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다음 일정이 있어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자연휴양림에서 하룻밤 묵어갔는데 용담호 둘레를 드라이브하고, 시장을 보고 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납니다.

타박타박 얼마나 걸었을까요?
정말 대단한 돌탑군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塔寺입니다.
돌탑이 많아 탑사라는 이름이 붙었겠지요.
탑사는 전라북도 기념물 제35호로 지정이 되어 있습니다.
돌탑群을 보고는 전에 왔을 때도 몹시 놀랐었는데 다시 보아도 새삼스레 경이롭습니다.
얼마나 많은 시간, 얼마나 많은 손길이 가야 가능한 일일까요?
보통 사람은 돌탑을 쌓으려는 염원을 갖기조차 어려울 듯 합니다.

탑사는 이갑용 처사가 쌓은 돌탑으로 유명합니다.
이갑용 처사가 25세에 마이산에 입산하였는에 임오군란이 일어나고 전봉준이 처형되는 등 뒤숭숭하고 어지러운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세속을 한탄하며 백성을 구하겠다는 구국일념으로 기도하며 탑을 쌓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천지탑, 오방탑, 월광탑, 약사탑, 일광탑, 중앙탑 등등 탑마다 다 의미가 다르다고 하는군요.
이 탑은 석재를 다듬어 쌓은 탑이 아니라 자연석 그대로 접착제 없이 차곡차곡 쌓아 올려 만든 탑이라고 합니다.
그런데도 태풍에 무너지지 않는다고 하니 놀라울 따름입니다.
처음에는 108개의 돌탑을 쌓았다고 하는데 지금은 80여기가 남아 있다고 하네요.

돌탑은 높이도, 모양도 다양합니다.
곳곳에 돌탑에 손을 대지 말라는 안내문이 보이는군요.
간혹 사람들의 손길에 무너지기도 하는가 봅니다.
현재 탑사는 이갑용 처사의 자손이 관리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워낙 알려진 곳이다 보니 사람들이 정말 많습니다.
주차장에서 여기까지는 산책 삼아 쉽게 올라올 수 있겠지요.
좁은 길에서 앞에서 오는 사람들을 비켜서다가 혹시나 돌탑을 건드리지 않을까 긴장을 하게 될 정도로 인파가 몰렸네요.
마이산 주변은 전국에서 벚꽃이 가장 늦게 피는 곳이라고 합니다.
4월 중순이지만 벚꽃 꽃비를 맞으러 소풍 삼아 나선 사람들의 행렬이 이어집니다.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탑사를 둘러보고 발길을 돌립니다.
가는 길에 낯선 꽃을 만났습니다.
처음 보는 보랏빛 꽃이 무리지어 피어 있는데 잔털이 보송보송하군요.
바위 틈에 난 꽃을 한참 들여다보고 사진을 찍으며 잊지 말고 이름을 찾아보아야겠다 싶습니다.
금세 잊어버린다 해도 반복하다 보면 언젠가는 꽃 이름이 머리 한구석에 자리를 잡지 않을까요?
본격적으로 내려가는 길입니다.
시멘트로 포장된 길보다는 낫겠다며 계곡을 따라 난 데크길로 들어섭니다.
계곡에 뜬 벚꽃잎들이 세계 지도를 만든 것도 같고, 추상적인 무늬를 만드는 것 같기도 합니다.
살짜기 꽃비를 맞는, 운치있는 길이군요.
바람이
꽃잎 물고 다니더니
밤새 꽃비로 내렸구나
산길에서 밟히던
꽃잎들이
들길에서도 밟히네
사월아!
꽃으로 곱던
사랑
꽃잎을 쏟아낸
네 이별도
연둣빛으로 참 곱구나
허정인의 < 4월을 보내며 > 전문

가다 보니 탑영제를 돌아가는 데크길도 있습니다.
탑 그림자가 비친다고 그런 이름을 얻은 것 같은데 탑 그림자는 보이지 않고 꽃 그림자만 비치는 곳입니다.
일부러 그쪽으로 돌아갑니다.
오리배를 타는 사람들도 있군요.
이곳 오리배는 발로 페달을 밟는 것이 아니라 모터로 움직이나 봅니다.
오리배에서 한가롭게 이야기를 나누는 연인들이 정겨워 보이네요.
다시 포장도로로 접어들었습니다.
해가 길어져서인지 오후 3시를 넘겼는데도 올라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디선가 김광석의 노래가 들려오기에 흥얼거리며 따라 불렀는데 기타를 치며 버스킹을 하는 사람이 있었군요.
다사로운 날씨에 꽃잎은 바람에 날리고, 감미로운 음악이 있는 곳.
평화로운 풍경입니다.

상가들이 밀집된 곳에 도착했습니다.
버스 출발시간도 한참 남았고, 더위에 땀도 많이 흘려 친구는 시원한 것이 그립다고 합니다.
'정담'이라는 근사한 카페에 들어가 구슬 아이스크림을 주문했습니다.
층고가 높아 시원한 곳에서 여유있게 휴식을 취하며 오늘 산행을 돌아봅니다.
많이 힘들기는 했지만 암마이봉까지 다녀오고 나니 뿌듯하지요.
은수사에 탑사도 볼거리를 충분히 제공해 주고요.
언제 이곳을 다시 오게 될지는 모르지만 하루를 충만하게 보냈습니다.
카페에서 나와 주차장으로 가는데 안내산악회 대장에게서 전화가 옵니다.
출발시간이 가까웠다는 말이겠지요.
사실 일찍 출발할수록 서울에 일찍 도착할테니 빨리 출발하는 것이 좋기는 합니다.
마이산 금당사라는 일주문을 돌아보고 마이산에게 안녕을 고합니다.

예정시간보다 10분 일찍 출발했습니다.
일요일임에도 생각보다 도로가 많이 막히지 않아 다행입니다.
자다 깨다 하는데 버스는 서울을 향해 잘도 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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