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시

오늘의 시 - 여름밭

솔뫼들 2023. 8. 21.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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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밭

                                           문태준

 

여름에는 한두 평 여름밭을 키운다

재는 것 없이 막행막식하고 살고 싶을 때 있지

그때 내 마음에도 한두 평 여름밭이 생겨난다

그냥 둬보자는 것이다

고구마순은 내 발목보다는 조금 높고

토란은 넓은 그늘 아래 호색한처럼 그 짓으로 알을 만들고

참외는 장대비를 콱 물어삼켜 아랫배가 곪고

억센 풀잎들은 숫돌에 막 갈아 나온 낫처럼 스윽스윽 허공의 네 팔다리를 끊어놓고

흙에 사는 벌레들은 구멍에서 굼실거리고

저들마다 일꾼이고 저들마다 살림이고

저들마다 막행막식하는 그런 밭

날이 무명빛으로 잘 들어 내 귀는 밝고 눈은 맑다

그러니 그냥 더 둬보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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